지난해 미·EU 무역합의 사실상 흔들…유럽 완성차 업계 긴장 고조EU 보복관세 카드 만지작…자동차 넘어 전 산업 통상전 번질 가능성
  • ▲ 도널드 트럼프ⓒ연합뉴스 / AP
    ▲ 도널드 트럼프ⓒ연합뉴스 / 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산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방침을 다시 꺼내 들면서 미국과 유럽 간 무역 긴장이 재차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어렵게 도출된 미·EU 무역 합의가 사실상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2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자신이 운영하는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EU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승용차와 트럭에 대해 다음 주부터 25%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EU가 이미 충분히 합의된 무역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조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미국 현지에서 차량을 생산하는 기업에는 관세를 면제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1000억달러를 웃도는 신규 투자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자동차·트럭 제조 역사상 최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미국 내 생산 확대 움직임을 자신의 통상정책 성과로 부각한 셈이다.

    이번 발표는 지난해 8월 미국과 EU가 체결한 무역 프레임워크를 뒤흔드는 조치로 평가된다. 당시 양측은 '상호적이고 공정하며 균형 잡힌 무역협정'에 합의했고, 미국은 EU산 자동차 관세를 27.5%에서 15% 수준으로 낮춰 적용해 왔다. EU 역시 미국산 공산품 관세를 사실상 철폐하는 방향으로 절차를 밟아왔다.

    다만 해당 합의는 양측 의회의 비준이 마무리되지 못한 채 장기간 지연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빌미로 다시 관세 인상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측이 문제 삼는 핵심 사안으로는 EU의 개별차량 승인(IVA) 제도 개편이 거론된다. 미국 자동차정책위원회(AAPC)는 지난해 12월 미 상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EU의 IVA 개정안이 지난해 미·EU 공동성명 정신에 어긋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행 제도 아래서는 포드 F-150, 쉐보레 실버라도, 램 1500 등 미국산 대형 픽업트럭이 통합 형식승인을 거치지 않고 일부 회원국 기준만 충족해도 유럽 판매가 가능하다. 2024년 약 7000대 규모의 미국산 SUV·픽업트럭이 이 경로를 통해 유럽 시장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EU가 2027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인 개편안은 안전 및 배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미국산 대형 차량의 유럽 판매를 사실상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미국 측 시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법적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단을 택했다는 평가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2월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한 일부 상호관세 조치에 제동을 걸었지만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국가안보 관세는 판결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자동차와 부품, 철강·알루미늄, 반도체, 의약품 등에 적용되는 232조 관세는 유지되고 있다. 이번 EU산 자동차 25% 관세 역시 같은 법적 틀 안에서 추진되는 만큼 법률 분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분석이다.

    EU 자동차 산업은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23년 기준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대미 자동차·부품 수출 규모는 560억유로로, EU 자동차 총수출의 약 20%를 차지했다. 미국은 유럽 자동차업계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민간 연구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25%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독일 자동차 부가가치는 5.3%, 이탈리아는 4.7%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에 따라 유럽 주요 업체들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27년부터 미국 알라바마 공장에서 주력 SUV인 GLC 추가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BMW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스파턴버그 공장 증설 및 교대 확대를 검토 중이며, 아우디 역시 일부 차종의 미국 생산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EU도 맞대응 수단을 준비해 둔 상태다. 미국산 제품을 대상으로 한 930억유로 규모의 보복관세 목록을 이미 마련했지만 전면 충돌 우려로 실제 발동은 미뤄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그간 "관세는 대서양 양안 관계를 훼손하고 위험한 하강 국면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자동차 산업에 그치지 않고 항공, 농산물, 디지털 서비스 등 광범위한 분야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