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법부 독립 훼손 '헌정 리스크'사실상 '자기 사건' 개입은 상식 어긋난 조치검사 퇴정 감찰은 법리·관행상 성립 불가그간 비판한 '제왕적 대통령제' 답습 지적
  • ▲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에서 벌어진 검사들의 전원 퇴정에 '엄정 감찰'을 지시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이 본인의 이해관계가 걸린 개별 재판까지 언급한 이례적 조치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형사법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수사·재판 과정까지 문제 삼는 방식은 삼권분립의 경계를 흐릴 수 있는 위험한 신호이자, 이 대통령이 그간 비판해 온 '제왕적 대통령제' 논란을 되살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李 대통령, '집단 퇴정 검사' 감찰 지시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26일 이 전 부지사 위증 혐의 재판에서 검사 4명의 재판부 기피 신청과 전원 퇴정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의 법관 모욕 논란 등에 대해 각각 엄정한 감찰과 수사를 지시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법관과 사법부의 독립과 존중은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헌정질서의 토대이자 매우 중요한 가치임을 강조하며, 법관에 대한 모독은 사법 질서와 헌정에 대한 부정 행위이기에 공직자인 검사들의 집단 퇴정과 같은 법정 질서를 해치는 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엄정한 감찰과 수사를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이러한 지시의 배경에 대한 질문에 "검사들이 일종의 집단 퇴정을 하면서 재판을 지연한다거나 이런 부분도 재판부와 사법부에 대한 존중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헌정질서의 토대이자 가치를 흔드는 행위라고 보고 지시를 내렸다"고 답했다.

    이어 "최근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용현 변호인이 재판부를 향해서 여러 무리가 있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고, 이런 사건들에 대해 사법부에 대한 존중이 매우 부족하다는 부분에 대해서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0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서울고등검찰청-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0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서울고등검찰청-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검사 전원 퇴정 배경은 재판부 … 신청 증인 64명 중 58명 기각

    검사 4명의 전원 퇴정 사건은 이 전 부지사의 '연어 술 파티 의혹'과 관련한 위증 혐의에 대한 재판이다.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으로 조사받던 이 전 부지사는 '2023년 수원지검 청사 안에서 연어회·소주를 제공받고 쌍방울 대북 송금과 이 대통령을 엮도록 검찰로부터 회유를 받았다'고 주장해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이 전 부지사의 국회증언감정법·정치자금법 위반 등 사건의 10차 공판준비기일이었던 지난 25일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송병훈)는 검찰이 신청한 증인 64명 중 6명만을 채택하고 나머지 58명을 기각했다. 

    이에 검사 4명은 "재판부가 채택한 소수의 증인만으로 공소사실을 입증하라고 한 것은 사실상 입증 활동 포기를 지휘한 것"이라며 재판부를 바꿔 달라는 법관 기피 신청을 내고 법정을 나갔다.

    ◆"삼권분립 정면 부정" … 이해관계자 개입의 헌정 리스크

    전문가들은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위증 혐의 재판의 성격을 대통령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으로 규정하며 대통령의 감찰 지시를 '재판 개입'이자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대북 송금 의혹과 직결되는 이 전 부지사의 위증 혐의는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 대통령과 연관된 사안으로 해석되곤 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헌법학)는 대통령의 감찰·수사 지시에 대해 "기본 상식에 어긋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대통령은 개별 사건을 물론이고 수사나 재판에 일절 관여하면 안 된다"며 "역할의 경계가 명확하다. 법무부 장관에게는 검찰에 대한 일반적 지휘권이 있지만, 개별 사건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총장에게만 있다. 대통령은 그조차도 행사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밑에 있는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하는 일을 왜 나는 못 하느냐'는 식의 접근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을 불러올 수 있다"며 "이 대통령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판할 때 사용했던 논리를 지금 그대로 답습하는 셈이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이번 사안이 단순한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위반을 허용하면 결국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개별 재판과 수사에 언급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물론 과거 군사정권 시절이라면 법원이 알아서 눈치를 보던 시대라 대통령이 따로 지시할 필요도 없었지만, 지금과 같은 체제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더욱이 삼권분립을 따르는 선진국이라면 사법부 독립이 전제되므로 재판 개입은 당연히 금지된다"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대통령 자신이 이해관계 당사자인 사건에서 대통령이 검찰을 직접 지휘하고 재판부를 압박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이 대통령이 최근 반복적으로 개별 사건에 대해 발언하는 양상이 '선출 권력 우위론'에 따른 사법 경시로 비칠 수 있다. 이해관계 당사자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검찰과 법원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도 이 대통령의 이번 지시를 두고 "정상적인 행정 운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언론에 보도된 대로 대통령 본인 사건과 직접 연관된 사안이므로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 말을 아껴야 할 상황인데, 대통령이 자신의 사건과 관련된 재판에 개입하는 모양새가 됐다"며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대통령이 행동하는 건 사실상 '재판 개입'이다. 형사사법 체계가 무너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공소 유지 활동'에 대한 감찰, 법리·관행상 성립 불가

    특히 법정에서 검사들의 전원 퇴정은 검사들이 재판 당사자로서 재판부 결정에 불만을 표시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대통령이 자신과 이해관계가 직접 얽힌 사건에 대해 검찰의 공소 유지 활동까지 문제 삼는 것은 헌정 원리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교수는 "검사들의 전원 퇴정은 법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 자체를 감찰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이 사건의 경우 검사가 신청한 증인 중에서 재판부가 10% 미만을 채택한 것은 실체 규명 의지가 의심될 정도로 비정상적"이라며 "그 상황에서 검사가 강하게 반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정에서의 의견 충돌은 재판 당사자의 권한에 속하는 행위인데, 그걸 일일이 감찰하겠다는 건 재판에 참여하지 못하게 겁을 주는 것과 같다"며 "피고인이 불만을 표시하며 퇴정한다고 해서 감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소를 유지하는 검사가 재판부에 문제 제기하는 걸 감찰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리로도, 관행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감찰의 범위에 대해서는 "감찰은 공무원이 직무상 비위를 저지르거나 투서 등 제보가 있을 때 이뤄지는 것"이라며 "법정에서 재판 진행에 불만을 표시한 것을 감찰 대상으로 삼는 건 감찰 제도의 취지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지금 같은 사례로 감찰이 이뤄진 적은 없고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차 교수는 "검사들의 퇴정이 설령 적절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판단을 대통령이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이 '본인 사건'에 대해 검찰의 공소 유지 방식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재판 개입'"이라고 했다. 

    차 교수는 또 "대통령이 문제 삼았으니 검찰은 공소 유지를 소홀히 하라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무죄 판결이라도 나오면 검찰에 항소도 포기하라고 할 것인가. 이런 방식이 어떻게 헌정 질서와 양립하는가"라며 "'선출 권력 우위론'을 주창하며 사법 절차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 ▲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변호인 이하상, 유승수 변호사가 6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심문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변호인 이하상, 유승수 변호사가 6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심문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진행 중인 재판 개입 … 변호인 수사 지시도 '압박' 논란

    대통령실이 함께 거론한 '일부 변호인의 법관 인신공격'에 대한 수사 지시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사건은 이미 법원행정처의 고발과 대한변협의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대통령이 나설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건 재판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하상·권우현 변호사는 최근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원색적인 표현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재판장(이진관 부장판사)을 비난해 법원행정처로부터 고발당했다. 대한변협은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감치·제재 등 법정 질서 유지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재판장에게 있다. 이미 법원행정처가 고발해 절차가 가동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엄정 수사'를 지시하면 재판부와 수사기관에는 압박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개별 사건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는 방식은 삼권분립 원칙과 어긋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