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마크롱, 패배 인정…조기 총선 발표獨 슐츠도 좌파 참패에 정치적 타격伊 멜로니 등 중도우파 등 '우파' 득세'우향우' 바람, 미 대선 영향 '예의주시'
  • ▲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럽의회 선거를 마친 한 남성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240610. AP뉴시스 ⓒ뉴시스
    ▲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럽의회 선거를 마친 한 남성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240610. AP뉴시스 ⓒ뉴시스
    9일(현지시각) 종료된 '제10대 유럽의회 선거'에서 예상대로 중도우파 세력이 약진하면서 유럽 27개국의 정치·경제 연합체인 유럽연합(EU)의 정치 지형 전반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이번 선거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주요국 집권당이 사실상 패배한 것이다.

    프랑스는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고, 벨기에 총리는 사임을 발표했다. 독일 총리 역시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일각에서는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유럽의 '우향우' 바람이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날 유럽의회가 발표한 각국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 인구 규모가 큰 주요국에서 극우와 포퓰리즘 계열 정당이 의석수를 눈에 띄게 늘리면서 지금까지 중도파가 이끌던 EU 정치 지형의 대격변을 예고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720석을 거느린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현재 다수당인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이 약 184석을 얻어 1위 자리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의석 176석보다 8석 늘었다.

    잠정치는 마지막으로 투표를 마감한 이탈리아를 포함해 EU 27개국 각국 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출구조사와 선거 전 여론조사, 일부 개표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최종 결과와 공식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는 며칠 더 걸릴 예정이다.

    유럽의회 제2당이자 EPP의 기존 협력 파트너인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과 중도 자유당그룹(Renew Europe)은 각 139석(19.3%)과 80석(11.1%)으로 예상됐다. S&D는 현재 의석과 동일하고 자유당그룹은 22석 줄어든 수치다.

    이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속한 강경우파 정치그룹 '유럽보수와개혁(ECR)' 73석(10.1%) △유럽의회 내 극우 정치그룹(교섭단체)인 '정체성과민주주의(ID)' 58석(8.06%)으로 잠정 집계됐다. ECR은 현재 69석에서 4석, ID는 49석에서 9석 덩치를 키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현재 71석으로 네 번째 규모인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52석(7.22%)으로 쪼그라들면서 6번째 규모 그룹으로 밀렸다.

    좌파연합(The Left, GUE/NGL)은 5.0%, 36석으로 전망됐다. 현재 37석보다 1석 줄었다. 이 외에 무소속 45석(6.25%), 기타 53석(7.36%)이다.

    투표율은 51%로, 30년 만에 최고치로 잠정 집계됐다.
  • ▲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집행위원회 본부 건물 앞에 농민들의 트랙터가 집결해 있다. 240226 ⓒ연합뉴스
    ▲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집행위원회 본부 건물 앞에 농민들의 트랙터가 집결해 있다. 240226 ⓒ연합뉴스
    이번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돌풍을 일으킨 것은 경제난과 이민자 급증, 안보 불안, 환경규제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이 표로 드러난 것으로 분석된다. 치솟는 물가로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데 경제 현안을 해결하지 않고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친환경 정책, 불법 이민 지원 등을 고집하는 현 집권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경고인 셈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 등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회를 해산, 조기 총선을 발표했다.

    숄츠 총리 역시 좌파 성향의 연립정부 '신호등(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이 보수 야당에 참패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알렉산더르 총리는 선거 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반면 극우 성향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I)'은 2019년 선거 때보다 의석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CNBC 방송은 극우와 포퓰리즘 세력의 입김이 커지면서 향후 유럽의회의 '우향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민 문제에서부터 환경,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방 정책은 물론, 산업과 EU 몸집 확대 등에 이르기까지 EU 주요 정책 전반에 극우 진영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 매체는 특히 국경 통제 강화, 역외 이민자 강경 단속 등을 추구하는 우파가 득세함으로써 차기 유럽의회가 활동하게 될 향후 5년 동안에도 이 문제가 EU 의제의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역외 이민자들의 유입을 단속해야 한다는 데에는 폭넓게 공감하면서도, 단속 방식을 놓고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역외 이민자들의 관문 역할을 하는 EU 남부 국가들과 독일, 북유럽 등 북부 국가들 사이에 뚜렷한 이견이 있는 만큼 이주민 단속을 어떻게 이행할지가 향후 논의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물가 등급과 지지부진한 경제 성장으로 이미 압박을 받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도 이번 선거로 추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르미다 판 리즈 선임연구원은 유럽의회가 이미 우파 성향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부 기후정책 관련 법안에서 후퇴하는 등 EU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탄소중립 정책이 "진짜로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올 들어 수개월간 유럽 곳곳을 휩쓴 '트랙터 시위'에 놀란 EU는 이미 농가에 대한 환경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한 바 있다.

    CNBC는 이번 선거 결과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2035년까지 내연 기관 차량 판매를 금지하려는 계획이 철회되고, 재생에너지 중시 정책이 후퇴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친러시아, 친중 성향인 극우·포퓰리즘 정당의 득세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 차원의 공동 지원 기조가 불투명해지고, EU 공동 방위비 부담 확대에 대한 이견이 분출될 소지도 있다고 CNBC는 예상했다.

    안보 분야에 있어 긴밀한 우방인 미국과 핵심 교역 상대국인 중국이 첨예한 무역전쟁을 벌이는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가운데 이번 선거 결과로 EU가 최첨단 산업과 친환경 산업 등에서 보호주의와 개입주의를 더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이 매체는 소개했다.

    이밖에 EU에 회의적인 극우 세력의 급부상으로 EU의 확장 정책에는 제동이 걸리면서 차기 유럽의회가 이끌어갈 2029년까지 EU 회원국은 현재와 같이 27개국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도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에 약진한 ECR과 ID가 대러시아 입장 등 여러 분야에서 이견을 보이는 만큼 유럽의회에서 연합 세력을 결성해 협력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면서도 이들 극우 세력들이 이민 정책부터 기후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제에 있어 EU의 전반적인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는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 극우 인사들이 유럽의 이민·환경·젠더 정책 변화에 압박을 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도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