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소송이 형사재판 둔갑… 비자금 논란 키워SK그룹 역사·근간 부정… 부도덕한 기업 낙인1998년 SK그룹 자산 32조… 300억으로 성장 기여?최 회장의 오너십이 질적·양적 성장 이뤄
  • "항간의 소문대로 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성격 차이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한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노 관장과 부부로 연을 이어갈 수는 없어도, 좋은 동료로 남아 응원해 주고 싶다."

    지난 2015년 12월 최태원 회장이 한 언론사에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별거설, 이혼설 등 그동안 제기됐던 소문들이 사실임을 본인 스스로 공개한 것이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최 회장은 1조38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노 관장에게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달 30일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이 같이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노 관장 측에서 제시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순 여사가 보관해온 1991년 선경건설(SK에코플랜트 전신) 명의 약속어음과 비자금 메모를 증거로 채택하며 이번 판결의 주요 근거로 적용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판단하고 노 관장의 재산형성 기여도를 인정했다. 

    이번 결과를 두고 반론도 만만치 않다. 300억원이 오갔는지 구체적인 물증도 없고 약속어음도 통상 ‘주겠다는 약속’을 의미하기 때문에 '받았다'로 해석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기자는 법리를 해석하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터 이번 소송을 취재해 온 기자 입장에서는 재판부 판단에 고개가 갸웃거린다. 항소심 재판부가 최 회장 측 입장은 철저히 배제한 것은 물론 '비자금'이라는 단어로 논란만 키웠기 때문이다. 

    소송 중에서도 특히 이혼소송은 일반인도 감당키 어려운 소송이다. 이혼소송 진행 과정은 시간은 물론 온전했던 육제척·정신적 건강을 온통 탕진할 정도다.

    재벌 총수가 아무리 공인이라고 해도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가사소송이 갑자기 형사재판으로 둔갑해 구체적인 물증도 없는 비자금을 불법으로 단정지은 것도 문제다. 

    이에 최 회장을 향한 도덕적비난은 그룹의 정체성까지 흔드며 SK를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 찍고 있다. 이에 질세라 정치권까지 숟가락을 꽂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30년 전 일을 부각하며 정경유착이라는 프레임까지 씌워 공격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SK그룹을 국내 재계 2위는 물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최 회장의 삶은 물론 기업활동까지 폄훼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38세의 젊은 나이로 SK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현실은 최 회장에 슬퍼할 시간 조차 주지 않았다. 한국 경제가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이 그를 맞이했다. 

    대우그룹(재계순위 3위) 등 국내 재계 30위권 그룹 가운데 11곳이 부도 사태를 맞아 해체된 것도 그해 이뤄졌다. 당시 재계 순위 5위였던 SK그룹 회장 역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24년 만인 2022년 SK그룹은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재계순위 2위에 올랐다. SK이노베이션(정유)과 SK텔레콤(통신)에 이어 2012년 SK하이닉스까지 인수한 효과다. 

    SK그룹의 자산은 같은 기간 32조8000억원에서 기준 327조3000억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매출은 1998년 37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224조2000억원으로 6배, 영업이익은 2조원에서 18조8000억원으로 9배 이상 증가했다. 시가총액은 3조8000억원에서 137조3000억원으로 36배 이상 늘었다.

    수출도 8조3000억원에서 83조4000억원으로 10배가량 늘면서, 내수기업으로 인식됐던 SK그룹이 한국 총수출의 10%를 책임지는 글로벌 기업으로 환골탈태했다. SK그룹의 질적·양적 성장의 뿌리에 최 회장의 오너십이 있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은 밝혀진 것이 없다. 더욱이 비자금으로 회사를 키웠다는 주장은 당시 SK그룹의 자산 규모를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최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됐다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왔으며 검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는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변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도 표적이 되고 있다.  

    SK그룹은 이례적으로 재판부를 향해 강한 어조로 유감을 표한 상태다. 그만큼 최 회장을 비롯해 SK그룹의 역사와 근간을 부정하고 뒤흔들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치의 사법화에서 경제의 사법화하는 국가권력이 더는 기업인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