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 '공적 책임 수행 위한 공론조사안' 결의'조사위 운영' '숙의토론 생방송' 등에 8억 소요 전망2년 전처럼 공론조사 악용‥ '수신료 존치' 홍보 우려내부서 '예산 낭비' 지적 잇달아‥이사장 사퇴론 활활
  • ▲ 남영진 KBS 이사장. ⓒ연합뉴스
    ▲ 남영진 KBS 이사장. ⓒ연합뉴스
    2년 전 '수신료 인상'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취지로 '공론조사'를 실시해 '여론 왜곡' 논란을 일으켰던 KBS 이사회가 이번엔 수신료 분리징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8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공론조사를 실시하는 안건을 통과시켜 물의를 빚고 있다.

    KBS 내부에선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으로 연간 7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신료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 실효성도 없는 공론조사에 거액을 투입하는 건 다가올 '재정 위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KBS는 2021년 당시 국민참여단 209명을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실시한 뒤 "국민 10명 중 8명(79.9%)이 수신료 인상에 찬성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빈축을 산 바 있다.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는 무작위로 선정한 시민들에게 의제에 관한 전문가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학습과 토론 등 숙의 과정을 거쳐 결과를 도출하도록 하는 조사 방식이다.

    이 조사는 특정 이슈에 대해 잘 모르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은 여론조사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응답자들이 판단 근거로 삼는 숙의자료가 편향적이거나 왜곡됐을 경우 조사 결과도 왜곡될 수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남영진 "시청자 의견 충분히 수렴해야" 공론조사 강행

    KBS 이사회는 지난 19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공론조사 실시안을 의결했다. 이날 6명의 이사들이 이 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소수파(현 여권 추천)'에 속하는 이사 4명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공론조사 안을 제안한 남영진 이사장은 "수신료 납부자인 시청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며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닌 공론조사를 통해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공론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이사회는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로부터 각각 2명씩 추천받은 6명의 위원으로 공론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조사위 운영과 시민참여단 구성, 숙의토론 생방송 제작비 등에 소요되는 예산은 8억원대로 결정했다. 구체적인 조사 시기와 방법은 차기 이사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이 같은 안건이 이사회를 최종 통과하자 소수 이사 4명(권순범·김종민·이석래·이은수)은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8억원이 소요되는 공론조사가 웬말이냐"며 "남영진 이사장이 기어이 막판 자살골을 넣고 말았다"는 개탄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남 이사장이 마지막까지 이사장으로서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분간 못하고 있는 점이 답답함을 넘어 측은할 따름"이라며 "이번 안건은 이미 사내·외에서도 비판이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남 이사장, '공론조사 헛발질'로 막판 자살골"


    이들은 "첫째, 이미 '수신료 분리징수'가 시작돼 직원 월급 지급 지연과 월급 삭감, 제작비 감소 등 심각한 '재정 위기'가 곧 올 수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 8억원이 넘은 돈을 들여 공론조사를 실시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는 쓰나미가 닥치는데 조개 줍자는 행위"라고 비꼰 소수 이사들은 "이사회는 당장에 닥칠 재정 위기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그에 더해 왜 KBS가 이러한 위기에 처했는지를 살펴보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의무"라고 충고했다.

    "둘째, 남 이사장은 김의철 집행부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비판한 이들은 "이 공론조사는 남 이사장 본인이 김의철 집행부에서 추진하던 일을 넘겨받아 진행하는 것이라고 지난 12일 이사회에서 스스로 밝힌 바 있다"며 "공론조사를 굳이 해야 한다면 김의철 사장 등 집행부가 하면 된다. 승률 제로라는 헌법소원도 거액을 들여 하는 무도한 집행부가 아닌가? 이사회는 그에 대한 감독·관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셋째, 이미 사내의 비판에서도 언급됐듯, 공론조사는 이미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검증됐다"고 단정했다.

    "우리 이사 4명도 당면한 수신료 분리징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소수 이사들은 "그러나 지금 공론조사를 하는 건 아니"라며 "속된 말로 헛발질이다. 그런 의미 없는 행위를 이사회가 직접 나서 실행하고 예산까지 낭비한다는 데 우리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영진 관리·감독 소홀에, 법카 부당 집행 의혹까지"

    이들은 "남 이사장은 KBS 정관과 경평 지침을 위반하면서 경영평가보고서를 멋대로 변경한 행위를 주도하는 등 이사회 의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여러 번 했다"며 "남 이사장은 이미 이사회 의장으로서 자격을 상실했고, 오늘 당장 해임돼도 이상하지 않다. 그 와중에 사측의 하청을 받아 공론조사 의결을 주도하는 모습에 우리 4명의 이사들은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저희 4명은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현 사태를 극복할 물꼬를 트기 위해 이사진 총사퇴를 주장했고, 그것이 번번이 다수 이사들의 외면으로 무산됐다"고 밝힌 이들은 "우리는 수신료 분리징수 사태를 초래한 경영진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 등에 더해, 집행부의 하청을 받아 공론조사를 발의한 남 이사장은 지금의 자리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남 이사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거듭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게다가 남 이사장은 이미 업무추진비를 집행하면서 법인카드를 부당하게 집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권익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다"며 "우리 4명의 이사는 우리의 이러한 의견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전달하고, 남 이사장에 대한 즉각적인 해임 절차를 시작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들은 "남 이사장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한다"면서 "KBS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물러나시기 바란다. 이미 쌓인 해임 사유만으로 남 이사장은 해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것이 이사장 본인과 KBS를 위해 최선"이라고 성명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