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이고, 돼야 할 것인가?'자유 진영이 사느냐 죽느냐'는 '신주류'가 제시할 '윤석열 독트린'에 달려 있어
  • 윤석열(오른쪽)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박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뉴데일리DB
    ▲ 윤석열(오른쪽)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박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뉴데일리DB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이고, 돼야 할 것인가?

    1950~60년대 미국 정치는 이걸 트루먼 독트린(doctrine, 주의, 원칙), 아이젠하워 독트린, 케네디 독트린, 존슨 독트린...하는 식으로 불렀다.  

    뭔가를 계승하면서도 그때그때 대통령의 고유성을 천명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자유민주 대한민국의 대원칙은 계승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윤석열 시대만의 고유한 방향성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의 ‘윤석열 독트린’은 무엇일까?  

    누가 이런 질문을 던지기 전에 실은 그쪽 팀이 “이게 윤석열 독트린‘이다 하고 진작 운을 뗐어야 한다.

    여러 가지 정책적 사항들은 물론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보다 상위에 있어야 할 지향성, 특히 이명박·박근혜 시대와 다른 윤석열 시대의 차별화 된 지향성이 뭔지에 관해선 알려진 게 없다. 실용이란 말이 나왔지만, 실용은 이명박 대통령 이후 누구나 다 한다고 말한다.

    이에 관해 그 어떤 거창하고 추상적인 논의는 피하기로 한다. 다만 4월 12일에 있었던 윤석열-박근혜 만남, 또는 윤석열 당선인의 박근혜 대통령 예방, 또는 박근혜 대통령의 윤석열 당선인 맞이가 시사(示唆)하는 바에 따라, 윤석열 시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스펙트럼(색깔 띠)이 국내정치 면에선 어떻게 정립될 것인지, 어떻게 정립돼야 할 것인지를 가늠해보려 한다.

    그 만남이 함축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윤석열 대통령의 신주류(新主流) 형성, 신주류의 기본노선 설정, 윤석열 시대 한국 자유·민주·공화 진영의 정치적 위상 선택과 관련해 심상찮은 함의(含意)를 갖는다.  

    박근혜-윤석열 만남의 한쪽 당사자인 박근혜는 누군가?

    범(汎) 탄핵세력의 대척점에 있는 인사다. 그런 인사가 왕년의 특검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당선인을 긍정적으로 응대했다. 그리고 그 만남의 또 다른 한쪽 당사자인 윤석열 당선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 정책과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아 명예회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윤석열의 유감 표명, 박근혜의 관용은 무얼 뜻하는가?

    범 탄핵세력이 바라는 것과 달리, 윤석열 당선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강성 친박‘이 바라는 것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윤석열 당선인에게 ’가(可)‘라고 말한 셈이다. 이건 범 탄핵세력과 일부 ’강성 친박‘엔 썩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러나 그 둘과 생각을 달리하는 다른 많은 자유·민주·공화 인(人)들은 그걸 썩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예컨대 ’중도로 외연 확장‘이란 광폭 행보(coalition building)엔 공감하면서도 탄핵엔 공감하지 않은 입장, 그러면서 일부 ’강성 친박‘과는 다른 포용적인 입장에선, 박근혜-윤석열 만남에서 한 줄기 새로운 활로랄까, 새로운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스펙트럼은 정통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한미동맹의 원위치에 먼저 확고히 선 다음, 그 문화적 인력(引力)으로 ’중도‘를 동맹군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국민의 힘 안팎에 도사린 기회주의 중간파처럼, 원위치 자체를 아예 빈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른바 중도실용주의라는 것)과는 방법이 다르다. 그러면서, 나라를 걱정해 잠 못 이룬 중~장~노년 부부가 손잡고 참여한 순수 아스팔트 충정도 껴안는다.

    이 윤석열 신주류는 586 극좌 전체주의 일당독재에 맞서 싸우는 대한민국 수호진영의 세대교체, 시대정신 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586 극좌 엘리트나, 그 상대인 비(非) 좌파 엘리트나 다 규격화된 입시세대다. 이와 달리 79학번 윤석열과 그 일행은 뺑뺑이 세대다. 그들의 약점도 있겠지만 그런 점에서 그들은 한결 개인화한, 자유로운 세대일 수도 있다.  

    이 특성은 윤석열을 산업화, 민주화, 진보라는 요지부동한 규격에 갇히지 않은 채 그 셋을 재빨리 가로질러 지도층으로 부상하게 만든 장본 아닐지?

    실제로 그는 산업화 시대에서 자라, 민주화를 체험하고, 진보에서 발탁돼, 산업화·자유민주주의와 재회했다.

    이제는 그런 그가 ’윤석열의 스펙트럼‘을 창출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이 새 스펙트럼은 아직 확실하게 정립된 건 아니다. 그리고 그 길을 중심으로 윤석열 신주류가 모여든 것도 아니다.

    윤석열 당선인에겐 여전히 범 탄핵세력의 ’가두리양식‘ 작전이 집요하게 압박하고 있다. 윤 당선인에겐 당 안팎에 자기 세력이랄 것도 없다.

    그러기에 이준석을 내세운 탄핵세력이 저렇듯 세(勢)를 과시하지 않는가?  

    다가오는 지방선거, 교육감 선거, 그리고 ’검수완박‘ 혈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 리더십을 잘 발휘하느냐에 따라 그의 신주류가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신주류 될 사람들이 만약 이런 ’노선 문제‘에 충분히 계몽돼있지 않으면 권력을 탐한 출세 파가 아무리 몰려들어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윤석열 당선인, 새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

    그는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자유 진영, 사느냐 죽느냐?

    윤석열 대통령은 튼튼한 신주류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야 할 적실(適實)한 지향성, 윤석열 독트린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