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美 경제학자 허쉬만의 '불균형성장이론' 도입해 '성장거점' 육성朴, 경인·경부고속도로 이어 호남·영동·남해고속도로 차례로 착공朴, 1973년엔 호남·남해고속도로 준공식서 "지역 간 융화 공고화"이재명, 경상도에선 "朴이 경제대국 만들어" 전라도가선 朴 맹비난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27일 오후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이종현 기자(사진=이재명 캠프)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27일 오후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이종현 기자(사진=이재명 캠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라도를 소외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정치권에서 지역 감정 조장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자기 통치 구도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경상도에 집중 투자하고, 전라도는 '고의'로 소외시켰다는 게 이 후보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관계와 틀리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이재명, 광주서 "박정희가 전라도 소외"

    이재명 후보는 지난 27일 오후 광주광역시 충장로 거리 연설에서 "13살에 공장에 갔더니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며 "(제가) 경북 안동 사람인데 초등학교를 마치고 성남 공장에 취직했더니 관리자는 경상도 사람인데 말단 노동자는 다 전라도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정권이 자기 통치 구도를 안전하게 만든다고, 경상도에 집중 투자하고 전라도는 일부 소외시켜 싸움시킨 결과란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정희)이 국토 및 경제 발전에 있어 고의적으로 호남을 차별하고 지역연고성에 기인해 정책을 펼쳤다는 인식은 이 후보뿐만 아니라 사실상 많은 국민의 평균적 인식이다. 그러나 이는 왜곡된 시각과 오해라는 것이 그간의 연구적 노력을 통해 밝혀져 왔다.

    우선 지역 불균형 성장정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역 차별 정책의 소산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산업화 과정에서 호남의 발전 속도가 영남에 비해 다소 더디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하와 같은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국토개발, 美 경제학자 허쉬만의 '불균형성장이론' 배경

    널리 알려진대로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 전략은 미국의 경제학자 허쉬만(Albert O. Hirschman)의 '불균형성장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1958년 허쉬만은 대중인기영합주의 혹은 포퓰리즘이 판을 치던 남미에서 자신이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한 것을 교훈 삼아 '성장지역 집중형' 공공투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허쉬만에 의하면 서구와 달리 제3세계의 경우 나눠먹기식 '분산형 공공투자'나 '낙후지역 발전 촉진형' 공공투자는 장기적으로 투자의 비효율적 낭비와 저성장의 지속을 초래한다. 때문에 허쉬만은 상당 기간 양극화를 용인하더라도 특정 지역 주도의 '추진력(forward thrust)'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이른바 '성장거점(growth pole)'의 육성을 강조했다.

    즉 장기적으로 소위 '누수효과(trickling-down effect)'를 통해 낙후지역으로도 성장의 효과가 파급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 전상인, 기파랑, 2018 인용)
  • 1971년 대전~전주(79.1km) 간 호남고속도로 준공식(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준공식에서 호남 주민들과 악수하고 있다(아래).ⓒ영상역사관 영상 캡처
    ▲ 1971년 대전~전주(79.1km) 간 호남고속도로 준공식(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준공식에서 호남 주민들과 악수하고 있다(아래).ⓒ영상역사관 영상 캡처
    '성장거점 육성' 이론…경인·경부고속도로 이어 호남도 도로 개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상징적 사업인 '고속도로' 개발 중 경인·경부고속도로가 먼저 건설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건설부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63%가 살고 있는 서울·경기·충남북·경남북 지방에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 국민총생산의 66%, 공업생산액의 81%에 해당하는 양대 중추적 지역을 연결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고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지역에서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보유대수의 81%가 운행되며 그 증가율도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높고 ▲수송능력이 한계에 이른 경부철도의 수송 부담을 줄이게 되고 ▲우리나라 해상수송량의 55%를 담당하는 부산·인천 2대 항을 고속도로로 연결함으로써 수출입 효율화를 제고하게 된다는 등 설명했다"고 회고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김정렴, 랜덤하우스, 2006)

    이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우리나라의 제2항구요, 서울의 관문인 인천항의 하역시설 확충과 서울로 이어지는 도로의 고속화를 위해 경인고속도로를 개통했다. 이어 1970년 우리나라 2대 경제권의 중심인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를 완공했다.

    뒤이어 1967년 5월2일 선거 공약으로 발표한 '대국토건설산업' 계획대로 호남·영동·남해고속도로 등을 차례로 착공해갔다.

    박정희 정권이 울산, 포항 등에 대규모 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한 것도 외국으로부터 원자재를 들여오고 수출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박정희 5> 조갑제, 조갑제닷컴, 2006) 울산의 경우 이미 일제시대에 공업단지 조성계획을 마련해 놓았을 정도로 조건이 좋은 곳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불균형성장이론만 집착하지 않았다…지역 균형 노력"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허쉬만의 불균형성장론에만 집착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 전상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저서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에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도농 간 공간적 균형 발전을 국가적 차원에서 진작한 사회운동 캠페인이었으며, 1978년에 국토개발연구원을 설립하면서 핵심 사명으로 국토균형개발을 지시한 것 역시 불균형성장론이 박정희 대통령의 유일한 공간철학 혹은 궁극적 공간사상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상인 교수는 또 "박정희의 발전국가가 시종일관 불균형성장론에만 집착했다면 지속 가능한 고도 경제성장도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박정희 시대의 장기집권 또한 어려웠을 것"이라며 "무작정 내지 무한대의 불균형 성장은 정치적으로도 불리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박정희를 둘러싼 9가지 왜곡에 대한 진실을 규명한 저서 <박정희 바로 보기>에서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는 "영남지역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 수립·건설된 제2석유화학공업기지는 전남 여천(여수)에, 1980년대에 건설된 포철 제2제철소는 전남 광양에 들어섰다. 광양은 박정희 정권 시절 여천석유화학공업기지의 확장 예정지로 잡아 놓았던 땅이었다"고 했다. ("제8장 지역감정을 조장했다고?" 배진영, <박정희 바로 보기>, 송복 외, 기파랑, 2017)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권 말기에 "충남 서산과 태안 사이에 있는 가로림만 일대를 싱가포르 2배가량의 항만·공업단지로 개발하겠다"는 오원철 경제 제2수석비서관의 구상을 받아들여 개발 계획을 추진했다. 오원철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장차 우리나라의 공업지구는 서부공업벨트와 동남공업벨트로 양분될 것이며, 이로써 호남이나 충청도의 소외감도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김정렴은 회고록에서 "호남·남해고속도로는 호남과 영남의 양대 세력권을 하루생활권으로 순환시키면서 전주·광주의 공업단지, 이리수출자유지역과 군산외항 개발, 여수·광양지역의 중화학공업기지화, 옥포·죽도의 대단위 조선소 건설, 창원기계공업기지 조성, 낙동강 및 영산강 유역개발 등 노선 경유지 주변을 대규모 대상(帶狀)공업권역으로 조성하는 데 동맥 구실을 했다"고 평가했다.

    "일제시대 때 이미 경부선 철도 건설… '역사적 우연'도 겹쳤다"

    영남과 호남의 발전 속도가 차이가 난 것은 일제시대 때 이미 건설된 경부선 철도의 영향이 컸다는 연구도 있다.

    일제는 1901년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장 가까운 부산과 서울을 잇는 경부선을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했다. 이에 따라 "대구·대전과 같은 신흥도시들이 등장했고 이 지역들은 훗날 거점도시로 상공업의 일익을 담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에 "간선(幹線)철도 노선에서 제외된 호남 지역은 이미 일제시대부터 미곡(米穀)의 집하지(集荷地)인 목포나 군산 등지를 제외하고는 발전에서 소외되기 시작했고, 결국 호남 지역이 개발에서 소외된 것은 박정희 정권의 의도적 정책 때문이라기보다 경부선 철도의 '역사적 우연'에 기인했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사>, 이영훈, 일조각, 2016; <한국의 지역감정과 역사적 배경 - 호남 포비아를 중심으로> 신복룡, 한울아카데미, 1996)

    산업화의 동력은 결국 중화학공업이었고, 극빈했던 경제개발 초기의 대한민국은 기존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산업 육성을 촉진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로 귀결되는 셈이다.

    박정희, 1973년 호남서 "지역 간 융화·국민총화 공고화"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3년 11월14일 광주공설운동장에서 거행된 호남·남해고속도로 준공식에서 치사를 통해 "이 고속도로는 비단 물량의 수송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총화단결의 대동맥이다. 지역 간 거리가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우리의 마음의 거리 또한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이 고속도로가 모든 지역 간 융화와 국민총화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재명 후보는 지난해 11월엔 "산부인과는 일제 잔재"라고 발언한 바 있다. 당시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재명식 접근이라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일제 잔재다" "터무니없는 선전 선동으로 2021년의 국민들을 자신의 정치적 도구로 쓰려 하다니 참 못난 정치인이다"라는 등 비판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