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영장심사서 녹취록 재생 제지당해… 법원 "김만배 구속 필요성 소명 안 돼" "영장 기각되자 성남시 압색, 주변인 조사도 없이 김만배 영장… 수사 순서 엉망"수사팀장 김태훈, 대형 특수수사 경험 없어… 전대협 출신, 민자당 점거 이력도 도마
  • ▲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오고 있다. ⓒ뉴시스
    ▲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오고 있다. ⓒ뉴시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규명할 핵심 인물로 꼽히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의 영장이 14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김씨의 구속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를 두고 김씨 등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이 영장 기각을 자초했다는 '무능론'이 제기됐다.

    문성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김씨를 대상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큰 반면에,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기각 이유였다.

    김씨 혐의 입증 부족, 영장 기각에 결정적 영향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김씨 영장에 기재한 배임과 뇌물공여 혐의 입증 부족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 외에는 별다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데다, 김씨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곽상도 의원 아들에게 건넨 뇌물과 관련해서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씨 측은 실제로 영장심사에서도 이런 부분을 집중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씨가 유 전 본부장과 공모해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소수 민간사업자에게 수천억원대의 초과이익이 돌아갔고, 그 결과 성남도시개발공사에 그만큼의 손해를 입혔다고 봤다.

    이에 김씨 측은 이례적인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민간 사업자의 몫이 늘었을 뿐 공사에 손해를 끼친 것은 없다며 이는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민·관 합동 개발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됐는데도 검찰이 이런 사업 구조에 대한 분석이나 유사 사례들과 비교도 없이 성급하게 배임으로 단정지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측은 검찰이 곽 의원 아들에게 퇴직금 등 명목으로 50억원을 준 것이 뇌물에 해당한다고 한 것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따졌다.

    핵심 증거 '정영학 녹취록'은 재생도 못해

    영장심사에서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곽 의원이나 곽 의원 아들을 검찰이 한 번도 조사하지 않은 점도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그간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드러난 자금 흐름 내역 등도 증거로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영장 심사에서 검찰은 정 회계사의 녹취파일을 재생하려다 김씨 측 반발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결국 검찰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녹취록 요지를 설명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김씨 측은 녹취록을 미리 들려 주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법률상 보장된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김씨 변호인은 녹취록이 "증거능력이 확인되지 않은 파일"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검찰, "신속 수사" 文 지시에 성급한 영장청구

    문재인 대통령이 "대장동 사건 실체를 조속히 규명하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수사팀이 성급하게 영장을 청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장동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적극 협력하여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달라"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하루 전인 11일 김씨를 소환해 다음날까지 조사한 검찰은 문 대통령의 견해 발표 후 4시간 만에 김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조계에서는 김씨 영장 청구 과정에서 검찰이 부실수사와 무능력을 그대로 노출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수원지검·서울서부지검 출신 김광삼 변호사는 15일 통화에서 "김만배 씨 구속영장 기각은 검찰 부실수사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며 "보통 영장 청구는 어차피 재판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완벽할 정도로 입증해야 하는데 검찰이 너무 녹취록에만 의존해 급박하게 영장을 청구해 결과적으로는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녹취록은 일방적 진술… 대질조사도 없이 허술한 영장청구" 

    김 변호사는 "특히 뇌물 배임죄에서는 대장동 개발사업의 구조나 사업협약서 등을 심층적으로 검토해 혐의 구성을 잘했어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못했다. 뇌물죄 역시 직무 관련한 대가성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검찰이 의존한 녹취록은 일방적 진술이기 때문에 대질조사를 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이뤄지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허술한 영장 청구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 김만배 씨가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이다. ⓒ뉴시스
    ▲ 김만배 씨가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이다. ⓒ뉴시스
    형사전문 김기윤 변호사는 "녹취록 외에 범죄 혐의를 보강 또는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대장동 사건에 대해서는 성남시청의 결재서류 등에 대한 확보를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데, 영장이 기각된 이후에야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대통령 지시에 의해 4시간 만에 영장을 청구한 것은 졸속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주변인 조사도 없이 김만배부터 소환… 순서 엉망"

    서울고법 판사 출신인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보통 영장을 청구하려면 김씨 주변인물부터 조사한 다음 김씨를 불러 수사하는 것이 수순인데, 지금 검찰은 김씨의 진술만 듣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영장을 친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변호사는  "영장이 발부되면 20일 이내에 기소하면 검찰 입장에선 수사하기 편하겠지만, 일반적인 수사 룰을 벗어난 상황이라 충실한 조사도 없이 서둘러 영장을 청구했어야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수사팀장 김태훈, 특수수사 경험 없어… 운동권 이력에 민자당 점거농성도

    여기에 검찰 전담 수사팀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과 수사팀장인 김태훈 검사를 비롯해 담당 검사의 '운동권' 이력도 도마에 올랐다.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전담 수사팀'을 지휘하는 김태훈 4차장검사는 법무부 검찰과장을 지내다 올해 검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받았다. 김 차장검사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박범계 법무부장관을 거치며 법무부 검찰과장으로 검찰 인사를 총괄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직 시절에는 징계 실무를 담당하는 등 지금까지 대형 특수수사에 참여한 경험이 없다.

    김 차장검사는 또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 출신으로, 1991년 5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으로 '민주자유당 해체와 공안통치 반대' 등을 외치며 서울 여의도 민자당 중앙당사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구속된 바 있다. 집시법 위반 혐의를 받은 그는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 차장검사는 1994년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이후 비주사파 학생운동 조직으로 꼽히는 '21세기 진보학생연합'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다. 박주민·이탄희 민주당 의원도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같은 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경제범죄형사부를 지휘하는 유경필 부장검사는 해양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로, 기업·경제분야 수사에 정통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 부장검사는 문 대통령의 친구인 송철호 울산시장의 사위이자 이정수 지검장의 측근으로 꼽힌다.

    "영장 기각되자 비로소 성남시청 압색"

    시민들 사이에서는 결국 특혜·로비 의혹 규명을 향한 검찰 수사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검찰을 향한 '무능론'이 들끓는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김모 씨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도 안 해놓고 영장을 청구한 것은 그냥 보여주기였다고 생각한다"며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에야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수사 순서가 엉망인지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라고 질타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최모 씨는 "성남시민으로서 이번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이 누구보다 크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뉴스에 나온 내용보다도 부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검찰은 김씨의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겠다는 의견이다. 서울중앙지검은 15일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 향후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수사팀은 공정하고 엄정하게 이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