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일대는 상업지역… 보행공간으로 만들 이유 없어""선거 코 앞인데, 권한대행이 800억 세금 집행… 시민소통은 요식행위"
  • ▲ 17일 광화문광장 재정비 공사현장. 서정협 서울시장권한대행이 공사를 강행하는 것을 두고 혈세낭비와 권한 남용이란 비판이 나온다. ⓒ권창회 기자
    ▲ 17일 광화문광장 재정비 공사현장. 서정협 서울시장권한대행이 공사를 강행하는 것을 두고 혈세낭비와 권한 남용이란 비판이 나온다. ⓒ권창회 기자
    서울시 시장권한대행이 서울시장보궐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두고 광화문광장 재정비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서정협 시장권한대행은 서울시 공식 블로그에 "광화문광장 사업은 4년간 300회가 넘게 시민과 소통하며 만든 결과물"이라며 "서울 도심 심장부인 광화문광장이 회색을 벗고 녹색의 생태문명거점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했다.

    광화문광장 조성 전 세종대로는 왕복 20차로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로 알려지며 대한민국의 위용을 과시했다. 차로가 대폭 축소된 지금도 광화문을 중심축으로 남북으로 곧게 뻗어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현재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서쪽 도로를 없애 광장으로 만들고 차로는 주한미국대사관이 있는 동쪽에만 둔다는 것이다.

    "시장권한대행이 보궐선거 5개월 앞두고 800억 예산 투입해 강행"

    세종대로를 반쪽으로 만들면 우선 교통체증이 예상되고, 광화문을 기점으로 대로가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어 현재의 세종대로의 위용을 상실하게 된다. 이보다 더 의아한 건 코로나19로 위축된 경제와 과도한 추경 책정 등 국민의 불만과 고통 속에 그간 논란이 계속되어온 불요불급한 공사를 시장권한대행이 시장선거를 5개월 앞두고 800억원의 예산을 들여가며 성급하게 강행하는 이유이다.

    서울시는 박원순 전 시장이 광화문광장 확장을 집요하게 밀어붙이다 행정안전부와의 갈등 등 여러 논란이 일자 당초 계획의 '원점 재검토'를 선언하고 "시민과 더 소통하겠다"고 했었다. 그런 상태에서 지난 11월16일 서울시장권한대행이 돌연 공사 착공을 강행한 것이다.

    시장권한대행은 "지난해 9~12월 시민·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공청회 등을 61차례 열었고, 지난 2월 추진 방향도 대외적으로 공개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 토론회·공청회에 어떤 시민들이 얼마나 참석했는지는 알 수 없는 채 착공을 강행한 날 여러 시민단체들이 "시민소통이 요식행위가 됐다"며 반발했다. 

    시장권한대행은 "4년간 300회가 넘게 시민과 소통하며 만든 결과물"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2016년 구성된 '광화문포럼'에 이어 2018년 '광화문시민위원회'가 활동을 이어가면서 시민소통이라는 명분으로 박원순 시장의 어용기구 역할만 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재의 광화문광장은 말이 광장이지 온갖 잡동사니 행사와 시위로 난장판인 콘크리트 벌판 좌우로 안전시설도 없이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어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을 받는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서의 시위를 금지하고 광장 사용은 '허가제'로 조례를 제정했지만, 상위법인 집시법(集示法)이 '신고제'를 규정하고 있는 가운데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광화문 일대는 상업지역… 보행광장으로 만드는 건 모순"

    세종대로를 광화문의 중심축에 벗어나게 배치하고 서쪽으로 광장을 넓히는 안 자체도 논란의 핵심이다. 세종문화회관을 서울시 문화의 중심축인 양 내세우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이 매일 방문하는 박물관이나 유명 미술관도 아니고 연중 거의 닫혀 있으면서 일주일에 며칠 주로 저녁에만 공연이 있는 공연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장된 광장에 100여 종의 꽃나무를 심는다고 광화문광장이 '녹색의 생태문명거점공간'이 될지도 의문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광화문광장의 최종 종착은 전면적인 보행광장으로, 차가 다니지 않는 온전한 광장이 돼야 한다"며 "결국은 미래 시점에 전부 광장으로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시지역 토지는 주거지역·상업지역·공업지역·녹지지역으로 크게 구분된다. 광화문광장 일대는 상업지역 중 '일반적인 상업기능 및 업무기능을 담당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역'으로 지정된 '일반상업지역'이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시행령' 제30조). 주거지역이나 녹지지역이 아닌 도심의 업무·상업지역을 '생태문명거점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도심은 도심 나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상업지역인 광화문 일대는 업무를 위한 차량 통행과 업무·상업시설 이용자들의 통행이 우선이지 일반 시민들의 산책을 위한 '보행광장'이 아니다. 산책 공간은 고궁들과 사직공원·삼청공원·인사동길·삼청동길 등 광화문 인근에도 여러 곳이 있다. 조금 멀리는 '서울 성곽길'과 '둘레길', 국립중앙박물관·용산공원·용산가족공원·한강고수부지 등도 있다.

    "사유재산권 침해도 논란… 굳이 세종대로 망치는 이유 뭔가"

    더욱이 서울시는 사유재산권 침해까지 서슴지 않으며 광화문 인근의 대한항공 부지를 공원화하겠다고 압박하면서 굳이 세종대로를 망쳐가면서 광화문광장을 넓히려는 저의가 무엇인가?

    이런 점들을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광장 조성 10년 만에 800억원의 혈세를 써가며 다시 갈아엎어야 할 당위성이 있는지, 그리고 시장도 공석 중이고 시장선거를 5개월 앞둔 시점에 시장권한대행이 돌연 공사를 착공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광화문에서 서울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대로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으로 이어지는 '샹젤리제'를 비교해보자. '샹젤리제'는 좌우에 잘 보존된 옛 건물들에 명품상가·호텔·식당·카페·극장·은행과 항공사 사무실 등이 즐비하여 전 세계 관광객들로 일년 내내 붐비는 거리이다. 그럼에도 중앙분리대도 없이 대로 중앙을 택시정류장으로 활용하면서 '프랑스혁명기념일'과 같은 국가행사 때는 도로 전체를 행사광장으로 이용하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산책과 휴식공간 될 수 없어"

    세종대로 일대는 어떤 모습인가? 옛 모습은커녕 정부종합청사·대사관·언론사·고층오피스빌딩들과 몇 개의 상업시설들 외에 일반 시민들이 한가롭게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러니 시위 장소 외에 별다른 쓸모가 있겠는가? 이런 삭막한 땡볕 벌판에 나무 100여 그루를 심어 얼치기 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각종 관제 행사 외에 별 쓸모도 없는 서울광장에 철마다 잔디와 스케이트장을 깔았다 엎고, 연중 무대시설과 행사 텐트들을 세웠다 철거하기를 반복하며 엄청난 예산을 써댄다. 파리 시내 한복판의 '콩코르드' 광장은 넓은 차도와 보도로 되어 있으며 오벨리스크와 분수대가 있는 작은 공간이 로터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광화문광장을 확장하겠다는 서울시의 막무가내에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시장도 공석 중인 서울시가 시장권한대행이 나서서 서울시장보궐선거를 5개월 앞두고 돌연 도로를 가로막고 땅을 파헤치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이리 조급하게 공사를 착공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