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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20만원짜리 선물 사나"… '김영란법 완화'도 반갑지 않은 상인들

정부, 이달 10일부터 10월4일까지 농축수산물 선물금액 10→20만원 상향… 법조계 "김영란법 원칙과 취지 붕괴"

입력 2020-09-10 16:07 수정 2020-09-10 17:08

▲ 8일 서울 가락농수산물시장에서 시민이 과일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추석 기간 동안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농축수산물의 선물 금액 한도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일시적으로 완화된다. 정부는 장기화하는 코로나 사태에 따른 농축산 업계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통시장 상인들은 "불경기에 시장에서 비싼 물건을 살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법조계에서는 "법의 원칙과 기준을 무시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9월 10일~10월 4일 '김영란법' 일시 완화

권익위는 지난 8일 추석기간 동안 김영란법의 농축수산물과 농축수산 가공품의 선물 금액한도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일시적으로 높이는 내용을 담은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10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리는 임시 국무회의 통과 후 곧바로 시행된다. 당장 이날부터 추석 연휴가 끝나는 다음달 4일까지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농축수산물과 가공품의 선물 금액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2배 늘어나는 것이다.

기존 청탁금지법은 음식물과 선물, 경조사비 상한액을 각각 3만원, 5만원, 5만원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3·5·5 규정'을 두면서도 농축수산물만 예외적으로 10만원까지 허용해왔다.

개정안에 명시된 농축수산물에는 한우와 생선, 과일, 관상식물 등이 포함됐다. 농축수산 가공품은 농수산물을 원료나 재료의 50% 이상 가공한 제품으로 홍삼과 젓갈, 김치 등이 해당한다.

권익위는 김영란법을 일시 완화한 이유에 대해 "장기화하는 코로나 사태로 따른 농축산 업계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장 크게 고려한 것"이라며 "추석 고향 방문 및 성묘 자제 등의 방역대책, 태풍 등으로 인해 농축수산업계가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을 고려한 일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국난극복위 상임위원장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같은 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들을 위로하며 추석 연휴 기간에 이동을 자제하는 대신 '추석 선물 보내기 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선물 보내기 운동이 코로나로 몹시 위축된 전통시장에 도움을 주고 수해로 시름에 잠긴 농축수산인에게도 작은 위안을 드렸으면 한다"며 "부모님에게는 효도상품, 자식에게는 지역 농축산물을 보내 정을 나누는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불경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선물 가능 금액을 20만원으로 올리는 것이 시장을 찾는 서민들과 무슨 관계가 있냐는 이유다.

상인들 "시장서 누가 20만원짜리 선물 사나"

서울 동대문구 소재 경동시장에서 인삼류를 판매하는 강모씨(56세)는 "솔직히 홍삼이나 인삼을 20만원 한도에 맞춰 선물하려는 사람들이 시장을 찾겠느냐"며 "그런 고급 물건은 농협이나 백화점 등에서 되려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에서 인삼이나 홍삼을 찾는 사람들은 선물보다는 자기 건강을 위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요즘은 물건을 사려는 손님보다 구경꾼이 더 많은 상황인데 이번 대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 9일 서울 의 한 유명 백화점에서 모델들이 추석을 맞아 준비한 '싱싱 수산물 선물세트'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구모씨(45세)는 "그나마 태풍이 지나고 날씨가 선선해지니 시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긴 했지만 대부분 구경을 나온 노인들"이라고 했다. 그나마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시장에서는 그렇게 고가의 한우세트가 팔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오히려 한도가 오르면 가까운 가족에게 선물하려는 경우가 아닌 이상 백화점에 가서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을 사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강동구 암사시장 내 상인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암사시장에서 수년째 과일 전문적으로 팔아왔다는 최모씨(60세)는 "선물한도가 10만원이던 20만원이던 물건이 팔려야 할 것 아니냐"며 "장사가 안돼 물건도 함부로 갖다놓지 못하는 상황인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 상황을 보면 10만원짜리 과일 세트만 팔려도 감사할 일인데 20만원으로 한도를 올리면 뭐가 달라지냐"며 "정부가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정책을 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타했다.

젓갈과 김치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장모씨(55) 역시 "누가 시장에서 파는 젓갈을 20만원 어치나 사가겠냐"며 "시장에서 그 금액에 맞춰 포장을 고급스럽게 해주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백화점에 가보면 유명 회사에서 판매하는 젓갈과 김치가 고급스러운 포장으로 파는데 어차피 잘 보이려는 선물이면 그런 걸 사지 않겠냐"고 했다.

SNS 등에서도 이번 김영란법 완화에 대해 "정부가 법을 오남용하고 있다"는 등의 강한 질타가 이어졌다.  네티즌 didwld****는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들과 아무 관련없는 XX. 대기업만 배불리겠구만"이라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 2e****는 "친척들끼리 선물 주고 받는데 김영란법은 왜 완화시키나. 제정신인가"라고 비난했다.

또 "뇌물받기 위해 김영란법 완화시키는 규제완화에 기겁한다"(pik****), "친목이나 가족모임은 취소하고 상사에게 추석선물은 보내란거냐?"(quer****), "선물을 주고 싶은거냐 받고 싶은거냐. 낙하산 인사들의 폐해같다"(hanu****) 등의 글도 올랐다.

"한우 먹고 싶었나" 비아냥 쏟아져… 법조계 "법 원칙과 취지 무시"

전문가들 역시 이번 김영란법 일시 완화가 소상공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김영란법을 시행할 때부터 소상공인들은 타격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김영란법이 추석 같은 명절 때 소상공인들의 매출을 저하시켰던 부분이 있는데 이런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알겠으나 너무 일시적인 면이 있다"면서 "수산물이나 농축산물들은 아무래도 김영란법 한도인 10만원 이하를 사려 했더라도 늘어난 한도 20만원 내에서 더 좋은 물건을 사려는 현상도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정부가 김영란법 기준을 일시 완화한 것에 대해 "법을 그런 식으로 기준을 바꾸게 되면 법의 원칙과 취지가 붕괴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황 평론가는 "법을 그런 식으로 기준을 바꾸게 되면 법의 원칙과 취지가 붕괴되는 것"이라며 "이번 김영란법 완화로 소상공인을 살리기는 커녕 국회의원들만 신나게 생겼다"며 "참치나 햄 통조림이 지겨우니 한우가 먹고 싶은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법조계에서도 김영란법의 입법 목적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검찰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법의 잣대를 바꾸게 되면 10만원의 기준이 뭐냐 20만원의 기준이 뭐냐 하게 돼 법이 우스워 보이게 된다"며 "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인데 이렇게 개정안을 통해 기준이 바뀌게 되면 향후 다른 법의 취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되는 굉장히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홍세욱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노무변호사회 회장)는 "김영란법을 만들 때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지금 경제가 안좋다는 이유로 추석 명절에 한해 기준을 완화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김영란법이 상황에 따라 기준 달라져야 한다면 법을 만들 당시의 공익적 목적이 사라진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아예 김영란법을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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