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측 "본죄 없어 증거인멸 성립 불가" 주장… 삼바 재판부 "본죄, 증거인멸 성립과 무관" 실형 선고
  • ▲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58)씨측이 법정에서
    ▲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58)씨측이 법정에서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두달 전 같은 법원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재판에서 "본죄의 혐의 입증과 무관하게 증거인멸은 성립한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있어 법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데일리DB
    '조국 일가'의 각종 비위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55)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 정경심(58) 씨 측이 법정에서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법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씨 측 주장은 "본죄(本罪)가 없기 때문에 증거인멸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이지만, 불과 두 달 전 같은 법원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재판에서 "본죄의 혐의 입증과 무관하게 증거인멸은 성립한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씨 측 변호인은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 심리로 열린 4차 공판기일에서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한 증거인멸은 근본적으로 죄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려면 증거를 인멸하려는 본죄가 무엇인지 먼저 기소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씨는 지난해 9월 조 전 장관의 청문회를 앞두고 사모펀드 의혹을 은폐할 목적으로 관계자와 자산관리인 등에게 지시해 조국 일가가 14억원을 투자한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PE)의 자료들을 인멸하거나 위조·은닉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삼바' 재판부 "본죄, 증거인멸 성립과 무관"

    정씨 측에 따르면, 검찰은 증거인멸 혐의와 관련해 "정씨가 △코링크PE 실사주가 친족인 조범동인 사실 △블루코어밸류업 1호가 가족들만 출자한 가족펀드인 사실 △피고인이 블루펀드의 투자처를 사전에 알았던 사실 등이 밝혀질 경우 청문회에서 논란이 일 것을 염려해 이를 은폐하기로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정씨 측은 "이 같은 사실에 대한 증거인멸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각 사실들이 형사범죄에 해당함을 검찰이 먼저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부터 문제가 되는 '형사사건'이 없는 만큼 증거인멸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씨 측 주장과 달리, 그동안 법원은 "증거인멸 의도로 검찰 수사 가능성과 재판에서 다퉈질 것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증거인멸이 성립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왔다.

    지난해 12월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사건 1심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소병석)는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부사장급 임직원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해당 재판의 쟁점도 본죄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이 기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직원들이 벌인 증거인멸을 유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사건의 검찰 수사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었고, 본안재판에서 치열하게 다퉈질 거라 인식한 것만으로도 증거인멸 혐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 충분하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유죄로 확정되지 않은 분식회계 의혹사건을 불리한 양형요소로 고려하지 않았고, 오로지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방해했다는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삼성바이오가 스스로 떳떳했다면 자료를 숨길 것이 아니라 해명하는 것이 정당했다"고도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도 "본죄의 성립 여부는 증거인멸죄의 성립과 무관하다"며 정씨 측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고위 법조인은 본지와 통화에서 "본안인 분식회계와 관련해서는 영장도 기각되는데, 삼성전자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증거인멸 혐의로 유죄판단이 내려졌다"며 "재판부가 증거인멸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나 재판에서 다퉈질 부분을 '인식'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정씨의 경우에도 검찰 수사를 인식했기 때문에 증거인멸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경심 측, 지지층 결집 노린 '정치적 주장'"

    일각에서는 증거인멸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정씨 측 주장이 '정치적 노림수'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총선을 앞두고 검찰을 비난하는 주장을 펼쳐 조 전 장관과 여권 지지층의 결집을 노린다는 분석이다. 최근 법원 판결을 모를 리 없음에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법정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정씨 측 변호인단은 검찰 수사 과정도 "무리한 수사이며 기소"라며 비판했다.

    이헌 한변 부회장은 "본죄가 없으니 증거인멸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법정에서 법리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전혀 없고, 조국 지지자들을 향해서 하는 말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총선을 앞두고 '검찰은 나쁘다'는 프레임을 씌워 다시 한번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것"이라며 "공직을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썼던 최고 권력자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