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직원 "박근혜 정부, 강제징용 판결 뒤집기 시도" 주장… 양승태 "판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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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지난 2월 기소된 양승태(71·사법연수원2기)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일 27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현직 외교부 직원이 '재판 개입이 있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박근혜 청와대와 외교부가 2012년 '일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해 대법원 측 고위 인사들과 접촉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양 전 대법원장 재직시절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은 판결도 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6일 311호 법정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61·12기)·고영한(64·11기) 전 대법관의 27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정모 외교부 사무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정 사무관은 2012년 12월부터 외교부에서 근무했다. 2013년 8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꾸려진 외교부 한일 청구권협정 대책 태스크포스(TF)에서 일했다.정 사무관은 이 TF에서 일하며 청와대·외교부 고위 인사들의 지시사항을 메모·문건으로 작성했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의 함의와 국가적 부담(2013년11월1일)'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관련 검토(2013년11월21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 대법원 심리진행상황 보고(2014년6월18일)' 등이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관한 문건들이 대부분이다.앞서 대법원(주심 김능환 대법관)은 2012년 5월24일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검찰 측은 청와대·외교부가 이 판결을 번복하기 위해 대법원 측 고위 인사들과 접촉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은 해외공관 법관 파견 등을 두고 '재판 거래'를 한 의혹을 받는다."'대법원 재판 개입 설마 되겠어?' 생각했다"이를 입증하려는 검찰 측은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법률전문가 간담회 결과 보고' 제목의 문건 내용을 두고 정모 사무관을 신문했다. 이 문건에는 '대법원 판결 확정 시 예상되는 문제점을 적절한 채널을 통해 알리고 최대한 신중한 판결을 유도해야 한다' '재판연구관에게 정보 전달 등 현실적 대응방안이 필요하다' '최대한 신중한 판결 내리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다.정 사무관은 검찰 측의 "청와대와 외교부에서 (대법원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이러한 내용이) 결정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조사 과정에서 말한 적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모 사무관은 이러한 생각이 경험이 아닌 '추측'이라고 양 전 대법원장 반대신문 과정에서 말했다.그는 또 "이 문건 중 대응방안은 청와대와 외교부에서 대법원 재판에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내용인데, (사법시험을 통과한) 법조인으로서 위법성과 부당성을 상급자인 이모 과장이나 강모 국장에게 이야기한 적 있는가"라는 검찰 측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검찰 측은 2013년 12월1일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 황교안 법무부장관, 차한성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 등이 참석한 '소인수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신문했다. 정 사무관은 "(대법관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 '되도 않는 이야기'라며 상급자에게 불만을 토로했다"고도 인정했다. '대법원 재판에 관여하는 게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만 "법무부는 당시 대법원 판결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부연했다."정작 양승태 시절 강제징용 재상고 판결 나오지도 않아"양 전 대법원장 측은 "객관적 사실을 정리하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시키기 위해 외교부 의견서를 내는 등 여러 문건이 작성되고 압수수색을 당했지만, 정작 재판부가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건 외교부가 의견서를 제출하기 전"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의 결정이 청와대·외교부 등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위해 청와대·외교부와 대법원 간 커넥션의 실체가 없다는 취지의 설명도 이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 내에 마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정작 역사적 사실은 양 전 대법원장 재직 동안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은 판결도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앞서 4일 26차 공판에는 최건호 김앤장 변호사,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당시 김앤장 고문)이 증인으로 나왔다. 최 변호사는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이 대법원을 설득하기 위함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신문 과정에서 대부분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유 전 장관은 피고인 측 반대신문 과정에서 "한상호 변호사와 둘이 만난 적은 거의 없고 현홍주 전 주미대사와 같이 만났는데, 둘 중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원합의체 갈 가능성이 있다는 건 제 인식에 남아있다"면서 "미국 같이 사법자제 원칙에 따라 판결을 안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나 '재판 개입'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는 "외교사안이라면 삼권분립 하에서 입장 전달하면서 최종 판결 시 참고하도록 하는 건 외교부로서 해야 할 조치라고 생각한다"며 "그걸 간섭이다,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건 조금 앞서나간 해석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한편 2015년 1월 민사소송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도 대법원에 참고인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민사소송규칙이 개정됐다. 외교부는 이로부터 1년이 더 지난 2016년 11월께 의견서를 제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