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요구한 게 직권남용?… 이런 소장 처음"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도 부인
  • ▲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 등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핵심 인물들은 29일 오전 첫 공판에 나와 공소사실을 부인했다.ⓒ박성원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 등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핵심 인물들은 29일 오전 첫 공판에 나와 공소사실을 부인했다.ⓒ박성원 기자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핵심 인물들이 첫 공판에서 모두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공소장 일본주의' 등 공소장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일부 변호인들은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사본·출력물 등의 증거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검찰과 신경전까지 벌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29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제35형사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 이야기는 모두 근거가 없고, 어떤 부분은 소설·픽션 같은 이야기”라며 “모든 것(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이에 앞서 이 공소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 "공소 자체가 부적법…재판거래 안 나와"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2시 속개된 재판에서도 “(공소장) 첫머리는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마지막 결론에 이르러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몇 가지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것에 대해 ‘직권남용’이라고 하고 끝냈다”며 “재판거래라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실제 조사해보니 재판거래라고 하는 게 안 나왔다”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어 “법관생활 42년 하면서 이런 공소장은 처음 본다”며 공소장의 결점을 중심적으로 거론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과 관계 없는 내용을 넣은 공소장 일본주의 문제 △공소사실 혐의인 직권남용 관련, 공모관계 불명확성 △공소장에서 범행 갯수를 특정하지 않는 등 죄수 구분의 불명확성 등 공소장 문제 세 가지를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고영한(64·연수원 11기)·박병대(61·연수원 12기) 전 대법관 역시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고 전 대법관은 모두진술을 통해 “직무를 수행하던 것 모두 직권남용으로 적시했다”고 주장한 데 이어 “(이번 재판으로) 자신을 천천히 돌아봤고 책임 있다면 누군가에게 전가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죄를 지겠다는 생각으로 법정에 섰다”며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했다. 박 전 대법관 역시 공소사실 중 법리문제를 다투는 취지의 변호사 의견서와 같은 의견이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의 핵심 쟁점은 ‘검찰의 사본 출력물 증거능력’이었다. 박 전 대법관 측은 검찰이 임종헌(60·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를 통해 확보한 일부 사본·출력물에 대해 증거능력 여부를 의심했다.
  • ▲ 29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는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정상윤 기자
    ▲ 29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는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정상윤 기자
    이 사본·출력물은 △강제동원 배상판결 관련 보고 △강제동원 관련 외교부 의견 반영 법관 검토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원세훈 전 국정원장 선고 관련 각계 동향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집행정지 관련 문건 △국정원 선거개입사건 항소심 선고 보고 등이다.

    핵심 쟁점, 검찰 사본·출력물 증거능력 여부

    재판부는 박 전 대법관 측의 의견을 반영, 검찰에 다음 공판 때까지 증거능력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임종헌 USB 사본· 출력물이 출력 과정에서 편집이나 수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종헌 USB 출력물의 동일성·무결성 부분이 증명되면 해당 보고서가 증거물로 인정될 것”이라며 “출력물에 기재된 내용과 작성자의 (기재 내용에 대한) 진정성 등도 (사실과 다르다면) 다툴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공판 전 두 명의 변호사가 직접 임 전 처장의 USB 사본·출력물에 대해 동일성(원본 파일과 동일하다는 것) 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검찰 측은 “기소된 지 4개월이 다 돼가고 증인신청 계획도 있었다”며 “이미 준비절차가 됐다고 해서 본안(공판)으로 왔는데, 변호인 측이 말한 것은 정당한 논쟁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이어 재판부는 박 전 대법관 측의 의견이 나왔을 때 중간에 제지했어야 한다면서 이와 관련된 의견서를 제출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지난 2월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은 △부당한 조직 보호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집행 △대내외적 비판세력 탄압 △상고법원 추진 등을 위해 재판 개입 등 크게 4가지 혐의를 받는다. 양 전 대법관과 달리 불구속 재판을 받는 박 전 대법관은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집행 등, 고 전 대법관은 부당한 조직 보호 등 혐의가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다음 공판기일은 오는 3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