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사진 찍어놓고 증거물 전달해 파기 유도"…재판부, 검찰 강압적 자세 경고
  • ▲ 이병모 전 청계재단 사무국장이 2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속행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을 마친뒤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정상윤 기자
    ▲ 이병모 전 청계재단 사무국장이 2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속행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을 마친뒤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정상윤 기자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를 위해 관련자인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에 대해 함정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국장은 20일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 항소심 속행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체포 과정을 경험했다"며 "한 달간 몸무게가 10kg이 빠질 정도의 강압적인 수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조서에 기록된 내용은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검찰이 원하는 대로 한 허위진술"이라고 증언했다.
     
    이 국장은 지난해 2월 영포빌딩 경비로부터 건네받은 장부를 파쇄해 '증거인멸'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이후 이 국장은 자신의 혐의보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와 관련해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같은 해 7월 횡령과 증거인멸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검찰 이병모에 ‘함정수사’ 의혹 공방
     
    장부를 파쇄한 경위를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이 국장은 “경비가 6시 이후쯤에 사무실로 왔다”고 전제한 뒤 “기자가 와서는 '중요한 서류가 있는데 청계재단이나 다스 사무실에 갖다 주라고 했다'면서 장부를 가져왔다. 장부를 보니 겁이 나서 파쇄했다”고 답했다.
     
    그런데 문건이 파쇄된 뒤 해당 기자가 다시 찾아와 문건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이 국장이 이미 파쇄한 문서를 제시하지 못하자 검찰은 그를 증거인멸 혐의로 체포했다.
     
    변호인은 해당 장부의 사본을 보여주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파쇄한 장부를 제시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국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변호인은 “증인이 파쇄한 장부의 사본을 검찰이 어떻게 확보한 것이냐”면서 “파쇄 전에 검찰이 미리 장부의 사진을 찍어 두고, 기자가 경비를 통해 증인에게 장부를 전달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 국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변호인은 이 국장에게 “함정수사 의혹이 있는데 왜 항소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 전 국장은 “파쇄한 건 죄라고 생각했고, 변호사비용이 부담됐으며, 재판부에 나오고 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 항소를 안 했다”고 답변했다.
     
    검찰 강압수사와 이병모의 자포자기식 허위진술
     
    변호인은 또 “지난해 2월 집중적으로 조사를 받지 않았느냐”며 “28일 중 20일을 조사받고, 설연휴 마지막 날부터는 8일 동안 매일 조사를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이 국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변호인이 “조사를 받고 새벽에 들어왔고, 아침에 다시 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또 새벽에 들어온 날도 여러 번 있다"면서 "그런 경우 수면시간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이 국장은 “3시간 정도 된다”고 답변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진술을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 국장은 “체포된 뒤 한 달 동안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며 “어금니가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해 정신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도 너무 억울했다”고 말했다. 홍은프레닝 대표 김재정 씨가 사망한 후 부인인 권영미 씨가 대표가 되어 월급을 받아갔는데, 그 월급을 자신이 횡령한 것이 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홍은프레닝 대주주인 다스에서 다온에 40억원을 빌려주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배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검찰 조사에서 김재정 씨 소유의 재산이 이 전 대통령 소유라고 답변한 것에 대해 “그저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검찰이 원하는 답변을 했다”고 증언했다.
     
    검찰, 법정에서 재판부에도 강압적 자세
     
    이날 검찰은 변호인 측의 증인신문에 끼어들어 “증인이 함정수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변호인이 함정수사를 전제하고 묻고 있다”며 “재판부가 지난번에 (검사가) 잘못된 전제하에 물은 것을 제지한 적이 있는데 그걸 지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누구에게 지적하는 것이냐? 재판부에게 지적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검찰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재판부는 “검사로부터 지적받은 적은 처음”이라며 “재판부의 소송지휘권을 흔들지 말라”고 검찰에 경고했다. 이어 “앞서 원세훈 국정원장 증인신문 과정에서 그때는 증인이 ‘A가 아니다’라고 증언했는데, 검찰이 뒤이은 질문에서 ‘증인은 A가 맞다고 답변했는데...’라며 신문을 이어가 이를 제지한 것”이라며 이날 내용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반대신문에서 검찰 진술에서 허위진술을 한 배경을 설명하려는 이 국장을 가로막으며 “그렇게 진술했는지 아닌지만 대답하라”는 식으로 강압적인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자 재판부는 “증인의 답변을 모두 들은 후 다음 질문을 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권고를 무시했다.
     
    검찰은 “기자나 검찰이 장부를 파쇄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느냐”고 이 국장에게 물었다. 이 국장은 “그런 일은 없다”면서 "장부를 경비에게 건넨 기자를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사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고 해당 고소장은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