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관에서 '박정희' 이름 떼고, '새마을 공원' 완성됐는데도 개관 안해구미시 '박정희 지우기' 식은 땀 흘려도… 30만 시민들 해마다 생가 찾아
  •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생가. 평일이었던 지난 5일 낮 시민들이 생가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뉴데일리
    ▲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생가. 평일이었던 지난 5일 낮 시민들이 생가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뉴데일리

    '산업 도시' 혹은 '우파의 심장부'로 알려진 경상북도 구미시. 산업화·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구미에서 그간 쉽게 볼 수 없던 풍경이 잇따르고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벌어지는 우파단체 관계자들의 '삭발시위'나 구미시청을 찾아 시장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대표들의 모습이다. 구미시에서 진행하던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업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벌어진 상황이다.

    5일 찾아간 경북 구미시 상모사곡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인근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지난해 12월 인근 부지에 건립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8개월이 지나도록 '개관 준비중'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공사가 한창인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에선 '박정희' 이름을 빼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구미 내부의 극심한 대립을 불러온, 해당 사안들은 최근 두 달 사이 급작스레 불거졌다. 지방자치제 실시 23년 만에 대구·경북(TK) 지역 내에서 첫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미 시장이 탄생한 것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 경북 구미시 상모동 일대에 건립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지난 7월 23일자로 모든 사업이 완료됐으나 여전히 미개관 상태다.ⓒ뉴데일리
    ▲ 경북 구미시 상모동 일대에 건립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지난 7월 23일자로 모든 사업이 완료됐으나 여전히 미개관 상태다.ⓒ뉴데일리

    900억 들여 사업 완료됐는데도 '준비중'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지난 2006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위치한 상모동 일대 부지에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과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사업을 벌여왔다.

    이 중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구미시 상모사곡동 인근 부지 25만㎡에 조성됐다. 지하1층~지상3층(연면적 2만8,414㎡)의 전시관을 포함해 총 5개 건물로 조성된 테마공원은 경상북도와 구미시가 공동으로 907억을 투자해 만든 문화·교육연구시설이다.

    건물 자체는 지난해 12월 완공됐다. 공식적으로 '도시계획시설사업'이 완료된 것은 지난 7월 23일. 사실상 사업이 완료된만큼 개관을 해야하는 상황이나 테마공원의 부속 건물들엔 '개관 준비중'이라고 적힌 안내문만 붙어 있다. 문은 잠겨 있다. 출입구는 장애물로 막혀 있고 공원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다.

  •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전시관' 내부 전경.ⓒ뉴데일리
    ▲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전시관' 내부 전경.ⓒ뉴데일리

    취재를 요청했다. 전시관 내부의 테마는 '근면-자조-협동', 새마을운동 그 자체다. 1960~70년대 생활상을 알리는 각종 물품들이 전시돼 있고, 아프리카 등 해외 개발도상국에서 '요즘 새마을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VR 체험실도 마련돼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평가도 볼 수 있다.

    아직 개관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발걸음이 닿으면 자동 센서로 인해 영상물과 음악이 흘러나온다. 기자에게 전시관을 안내하던 구미시 관계자는 "적절한 온도와 조명이 닿게 해야 전시품들이 관리가 된다"고 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개관준비 상태'로 관리 및 청소에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10억원이다. 경북도와 구미시가 반반씩 부담하고 있다.

    이처럼 잘 관리되고 있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이 개관을 미루고 있는 이유는 뭘까. 운영비를 담당할 운영주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테마공원의 개관 후 예상 연간 운영비는 21억이다. 구미시는 "공원 조성 및 사업 발주를 경북도에서 했다"면서 "운영은 경북도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북도는 "도시공원의 관리주체는 구미시가 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경상북도 새마을봉사과의 한 관계자는 5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구미시와 계속 협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계획법에 보면 해당 지역은 도시공원이고, 도시공원은 구미가 운영을 맡게 돼 있다"면서 "당연히 관리는 시에서 해야한다는게 도의 입장이고, 하루빨리 개관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미시는 어떤 정치적인…"이라며 말을 끊더니 "명확한 입장을 모르겠다"고 했다.

  •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현재 일반 관람객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뉴데일리
    ▲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현재 일반 관람객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뉴데일리

    해외 88개국이 롤모델로 채택한 사업인데…

    장세용 구미시장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새마을운동 폐지'를 언급했었다. 논란이 일자 그는 "연간 운영비 문제로 인해 남는 공간에 경북민족독립기념관 등 시설을 넣자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지, 테마공원 전체를 바꾼다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 흔적 지우기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해당 사업에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애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제안해 시작된 사업이다. 일각에서는 "새마을운동은 단순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유산을 뛰어넘어선 한국을 상징하는 대외원조 사업 브랜드"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농촌 개발에서 한국식 '새마을운동' 모델이 큰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전병억 박정희 대통령생가보존회 이사장은 "새마을운동은 동남아, 아프리카 등 해외 88개 국가들이 사업 모델로 채택하고 있는 모델"이라며 "해외 각국에서 대구 영남대 등을 방문해 3개월 코스 교육을 받고 가는 자랑스런 우리 대외원조 사업인데, 이를 두고 우리끼리 왜 말이 많은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경북 구미시 상모동 일대에 지어지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공사 현장. 해당 박물관 명칭에서 '박정희'가 빠지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뉴데일리
    ▲ 경북 구미시 상모동 일대에 지어지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공사 현장. 해당 박물관 명칭에서 '박정희'가 빠지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뉴데일리

    여야 합의해 추진… 시장만 바뀌었을 뿐인데

    새마을운동 테마파크 부지 인근에는 또 다른 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2020년 상반기 개관 예정인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이다. 3만㎡ 부지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다. 192억원의 사업비를 들인 역사자료관은 현재 공정률 25%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돌연 '구미 근현대사 박물관' 혹은 '구미 공립 박물관'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자료관 건립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시각이 있다"는 게 이유다. 구미지역 참여연대를 비롯한 좌파 시민단체가 지난 8월 극렬한 시위를 벌이자 장세용 시장이 이를 수용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개명 논의'가 본격화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물의 범위도 달라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 유품 뿐 아니라 구미공단에 들어선 LG·삼성 등의 기업 제품도 함께 전시한다는 방침이다.

    구미시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6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내부적으로 의논 중인 사안이라 확실히 뭔가를 말씀드리긴 어렵다"면서 "확정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답했다. 그는 명칭 변경이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서는 "장세용 시장 취임 공약이 (후보 시절) 나오면서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 경북 구미시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위치한 민족중흥관 내부 모습.ⓒ뉴데일리
    ▲ 경북 구미시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위치한 민족중흥관 내부 모습.ⓒ뉴데일리

    박물관 건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 전시를 목적으로 추진된 사업이다. 여야 합의 하에 이뤄진 일이다. 2014년 초, 민주당과 새누리당 경북·전남 국회의원 25명이 '영호남 화합'을 위해 구미시 박 전 대통령 생가와 전남 신안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번갈아 방문했다. 신안군 하의도 연도교 건설과 구미 역사자료관 건립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면서, 사업이 본격화됐다. 그 자리에는 국회의원이었던 이낙연 현 국무총리,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도 참석했다.

    현재 상황을 두고 '형평성'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여야가 합의해서 김대중 관련 사업은 추진해놓고, 구미 박정희 사업은 안되냐"는 반문이다.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신안 하의~신의를 잇는 삼도대교(길이 550m, 폭 14.5m)는 지난해 6월 개통됐다. 전액 도비를 투입해야 할 사업이었으나, 여야 합의로 국비까지 투입됐다. 다리 건설에 총 719억원(국비 195억, 도비 524억)이 들어갔다. 

    우파 시민단체들은 "정권이 바뀌고 구미시장마저 바뀌고 나니, 촛불 단체가 앞장서고 중앙언론·민주당이 힘을 실어 조직적으로 박정희 지우기에 나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 추세라면 명칭 변경은 불보듯 뻔하다. 이렇게 되면 박정희 체육관, 박정희로(路), 새마을도서관 등 경북 전체에서 박통 흔적 지우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항의한다.

    김종열 경북애국시민연합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역사 자료관은 영호남 화합장소를 만드는 차원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태클을 건다고 취소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게 무슨 박정희 신격화냐, 그러면 당시 전남 신안군에 다리를 건설한 것도 김대중 신격화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장세용 시장은 취임 후 우리와 면담할 때, 역사자료관을 폐지하지 않겠다는 답을 내놨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취소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구미 시민들과 너무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공론화위원회에 우리도 참여시켜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명확한 설명을 듣기 위해 <뉴데일리>는 5~6일 장세용 구미시장과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5일 저녁 "30분 뒤 다시 전화를 달라"던 답변이 끝이었다. 더 이상 아무말도 들을 수 없었다.

  • 지난 6월 10일 경북애국시민연합 회원들이 '새마을 폐지' 공약을 내세운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구미시장 후보를 규탄하기 위해 구미시 상모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삭발식을 진행하는 모습.ⓒ뉴시스
    ▲ 지난 6월 10일 경북애국시민연합 회원들이 '새마을 폐지' 공약을 내세운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구미시장 후보를 규탄하기 위해 구미시 상모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삭발식을 진행하는 모습.ⓒ뉴시스

    생가 방문객 연 30~40만명

    구미는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국가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내륙 최대의 산업도시이다. 박 전 대통령이 일궈놓은 일이니 만큼, 구미시가 그간 펼쳐 왔던 생가 정비와 동상 조성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구미=산업화의 성지(聖地)'라는 별칭은 그래서 붙었다. 

    실제 연간 50만명 이상이 박 전 대통령 생가를 다녀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첫 해에는 100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생가에 위치한 민족중흥관 직원에 따르면, 탄핵 사태를 거치며 방문객이 줄었으나 최근 3년 동안만 해도 연 3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 곳을 다녀갔다. 

    5일 낮 찾아간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평일이어서인지 한산한 편이었지만, 생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시민들이 여전했다. 생가 입구 '보릿고개 체험장'에도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막걸리와 콩죽 등 간단한 식사를 하며 '보릿고개' 시절을 추억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 50대 여성은 최근 박정희 박물관 명칭 논란과 관련해 "언론에서 '논란'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제 길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면, '박통' 기리자는 데 이견 있는 구미 시민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국민을 잘먹고 잘살게 해준 대통령의 고향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자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반문이다. 

  • 구미시청 전경.ⓒ뉴데일리
    ▲ 구미시청 전경.ⓒ뉴데일리

    그런데도 구미시는 "박정희 박물관이라는 명칭에 대한 시민 반응이 안좋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구미시청 한 관계자는 "시장이 민주당 소속으로 바뀌니까, 아무래도 구미시가 눈치를 좀 보는 것 같다. 기존의 한국당 소속 시장이었다면 진짜 여론탓에라도 절대로 이렇게 정책을 엎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구미시청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세용 시장은 행정경험이 전무한 사람이다. 행정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구미시민들이 '박정희'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도 구미시가 먹고살려면 박정희라는 브랜드는 필수적이다."

    전병억 박정희 대통령생가보존회 이사장 역시 "박정희를 빼고 나면 구미에 뭐 볼 게 있나. 삼성도 LG도 줄줄이 빠져나가는 판국에 도시 브랜드가 있어야 구미시민들도 먹고 살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조만간 이사회 차원에서 구미시청을 직접 찾아갈 예정"이라고도 했다. 대구·경북 지역 대표 종합일간지인 '매일신문', '대경일보'도 연일 '박정희 지우기에 대한 우려'를 담은 사설을 싣고 있는 상황이다. 

    기자가 구미를 방문했던 5일, 백승주 자유한국당(경북 구미갑) 의원은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역사 지우기를 당장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박정희'란 이름이 빠진 '박정희 역사자료관'의 탄생을 우려하며, 장세용 구미 시장을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