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치·IT 등 이해관계 엇갈리며 이견 충돌… 권력 주도권 싸움으로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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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가상화폐를 둘러싼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부처간 이견이 여기저기 표출되면서 청와대조차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국정혼란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청와대는 꿀먹은 벙어리다. 내부적으로 방향 설정조차 이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 결정권을 쥔 주요 실세들의 의견이 갈리면서 권력 주도권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는 얘기도 솔솔 흘러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부처간 엇박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개 질타한 것은 이같은 우려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방증이다.가상화폐에 대한 정책 방향은 크게 3가지다. 먼저 가상화폐를 대안화폐로 인식해 세금을 매기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는 가상화폐를 장기적으로 시장경제에 편입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난달 28일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발표한 '가상통화 투기 근절 특별 대책'이 유사한 맥락이다. 계좌실명 확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양도소득세와 거래세를 부과하는 방향이다.이 방향과 정반대 방식은 가상화폐를 도박과 투기로 인식해 철폐하는 쪽이다.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골자로 하는 강경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박 장관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는 도박과 비슷하다"며 "법무부는 기본적으로 거래소를 통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법무부는 '가상화폐'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정확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가상증표' 정도로 부르는 게 정확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제도화도 철폐도 아닌 일단은 양성화까지만 시키고 지켜보자는 관망 입장도 적지 않다. 박 장관 '철폐 발언'으로 처음 가상화페 논란이 시작됐을 때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법무부가 준비해온 방안 중 하나이기는 하나,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고 물러섰다. 청와대 내 온건파가 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 경제통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 경제파트에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관망 입장은 지난 15일 정부가 경제조정실을 통해 발표한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정기준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은 "향후 범정부 차원에서 충분한 협의와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며 "가상통화 채굴, 투자, 매매 등 일련의 행위는 자기 책임 하에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당부드린다"고 했다. 가상화폐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되, 적절한 규제를 통해서 리스크만 관리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부처 간 이견이 이어지면서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결정권자들의 엇갈린 의견도 표출됐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언급이 서로 달랐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 15일 나온 정부의 발표를 재확인한 반면,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강경한 대응의 가능성을 재차 예고했다.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통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도 살아있는 옵션"이라며 "조속히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다만 김 부총리는 "암호화폐에 대한 비이성적인 투기가 많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유념하고 있고 어떤 형태로든 진정시키는 합리적인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규제 방안도 만들면서,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기반기술로서 4차산업 혁명이라든지 선도사업으로서 하려는 것을 따로 균형 잡히게 하겠다"고 말했다.정부의 정책방향이 일관돼 보이지 않자,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제동을 걸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여러 부처가 관련된 정책일 경우, 각 부처의 입장이 다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다만, 부처 간 협의와 입장조율에 들어가기 전에 각 부처의 입장이 먼저 공개돼 정부부처 간 엇박자나 혼선으로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시다시피 민감한 시기"라며 정부가 계속 갈팡질팡하다가는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세간의 시선을 우려했다.문제는 정부의 가상화폐 갈팡질팡 속에서 건전한 토론이나 과학적 근거를 기반한 정책결정보다, 정무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다. 가상화폐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지지율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다, 집권 후 처음 맞닥뜨린 민감한 이슈에서 누구의 정책이 채택되느냐는 향후 권력구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변곡점이기 때문이다.청와대 안팎 소식을 종합하면, 대통령 경제정책을 보좌하는 김현철 경제보좌관과 부처를 이끄는 김동연 경제 부총리가 서로 의견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국 민정수석도 이번 문제에 수시로 분명한 소신을 밝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보좌관의 경우 가상화폐를 수면 위로 떠올려 양성화 시키고 적극적으로 관리하자는 인식인 반면, 김 부총리는 좀더 보수적인 접근을 지향한다는 평가다.야권 고위관계자는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있었던 '바다이야기' 사태를 기억하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문제에 너무 극단적이고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며 "국민들의 재산이 직접 연계되는 경제정책은 진영논리나 정치적 판단보다 좀더 세밀하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