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전당대회 낙선한 사람 힘보태야" 발언에 정병국·주호영 격노
  • 이정현 대표의 '버티기'에 집권여당 새누리당이 '심리적 분당(分黨)' 상태에 빠졌다. 향후 상황의 전개에 따라, 야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불씨를 당긴 '하야 정국'에 동조하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분열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가 열린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는 아수라장이었다. 비박계 의원들이 이정현 대표를 향해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가운데, 친박계 의원들은 엄호사격에 나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4선 이상의 다선 의원들만 참석할 자격이 주어지는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는 선수(選數) 분포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비박계 의원들이 작심한 듯 대거 참석했다. 그간 당의 공개 회의석상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해 심재철 국회부의장과 정병국 신상진 조경태 이군현 유승민 주호영 중진의원 등이 자리했다.

  • ▲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이정현 대표를 바라보며 지도부 퇴진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이정현 대표를 바라보며 지도부 퇴진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비박계 "거취 깔끔해야" "이정현 발언 사려깊지 못해" 퇴진론 총공세

    이날 간담회에서 김재경 의원(4선·경남 진주을)은 "국민들의 눈높이가 해체 아니면 재창당 수준의 변신을 하라는 것"이라며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거취는 깔끔한 게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다"고 포문을 열었다.

    정병국 의원(5선·경기 여주양평)은 "재보선에만 패배해도 사임을 했는데, 지금은 그런 단순한 사건도 아니다"며 "상황이 엄중해 지금의 지도부는 사임을 하고 비대위를 구성해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거들었다.

    주호영 의원(4선·대구 수성을)은 "이정현 대표의 '사랑하는 동생도 청와대에 안 들여놓는다' '나도 연설문 쓸 때 도움받는다'는 표현은 전혀 사려 깊지 못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한 사람들이 전부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 이정현 대표도 그 한 축"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나경원 의원(4선·서울 동작을)도 "(지도부 퇴진론을) 계파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당의 신뢰 회복을 위해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친박계 "몰아내려는 듯이 하면 누가 나가느냐" 언성 높여

    이에 대해 친박계 의원들은 로드맵 제시를 통한 '질서 있는 후퇴'가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김정훈 의원(4선·부산 남갑)은 "비대위 구성이 필요하다고 해도 모양 좋게 서로 협의해서 해야지, 어떤 세력이 다른 세력을 몰아내려는 듯이 하면 누가 나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발언을 마친 뒤에도 "지금 목소리를 안 높일 수가 있느냐"고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정우택 의원(4선·충북 청주상당)은 "지도부 사퇴는 이뤄져야 한다고 보지만, 등 떠밀리듯이 밀어내는 모습은 결코 좋지 않다"며 "이 사태에 대해서 이정현 대표가 어느 단계까지 정리해놓고, 그 다음에 다시 (자신의 거취에 대한) 의견을 묻겠다는 일정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정갑윤 의원(5선·울산 중)도 "연판장을 들고 지도부를 사퇴하라고 하고 의총을 소집하라고 하는 모습 속에서 누가 지도부가 돼서 새누리당 129명 의원을 함께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며 "많은 의원들이 말했듯이 로드맵을 통해 지도부가 박수를 받으면서 사퇴를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 도중 정병국 의원의 발언 내용에 그를 손으로 가리키며 반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 도중 정병국 의원의 발언 내용에 그를 손으로 가리키며 반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정현 "당대표는 선출된 권력… 낙선한 사람은 힘 보태야"

    비박계의 거센 '지도부 퇴진론' 속에서 거취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날 간담회 마무리 발언을 통해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다시금 분명히 했다.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의 모두발언에서부터 이정현 대표는 최근 지도부 퇴진론을 밀어붙이고 있는 비박계 중진의원들을 향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경험과 경륜 있는 중진의원들이 예전에 비해서 오늘 참석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는 모두발언은 8·9 전당대회 직후 새 지도부가 출범했을 때에는 비박계 중진의원들의 출석률 저조로 간담회가 무산될 때마저 있었는데, 당이 어렵고 지도부가 위기에 빠지자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을 비꼬았다는 분석이다.

    이정현 대표는 간담회 마무리발언에서 "부족한 나와 정병국·주호영 중진의원이 지난 여름 28만 당원과 국민들에게 각자의 당 운영과 개혁 방안에 대해서 제시하고 경선을 했다"며 "이렇게 했던 이유는 주호영·정병국·이정현이 다 완벽하지 않지만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권력인 당대표를 뽑고, 낙선한 사람들은 힘을 보태서 극복해나가자고 한 게 아닌가"라고 정면으로 맞받았다.

    아울러 "(전당대회에서의) 당원의 선출권을 묵살할 권한은 당헌·당규에 없다"며 "선출된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구하고 위기를 수습해 나간 뒤에, (거취에 대한) 요청을 한다면 그 때 가서 상황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친박계 중진의원들의 '로드맵' 엄호사격 뒤로 몸을 숨겼다.

    ◆퇴진론 공방 와중에 "도둑질을 하셨느냐" 설전까지 벌어져

    지도부 퇴진 요구를 일축하는 것을 넘어서, 지난 8·9 전당대회의 과정과 결과까지 거론하며 '패자는 입을 다물라'고 요구한 것이다. 분당까지도 각오한 강경 발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정현 대표의 마무리발언 도중 "말씀을 좀 아껴달라"고 불편한 심정을 표출한 주호영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현 대표가 지난 8·9 전당대회 관련 발언을 이어가자 먼저 자리를 박차고 퇴장하기도 했다.

    간담회 와중에 이정현 대표와 정병국 의원은 공개적인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정병국 의원이 발언 도중 "안타깝지만 사태를 수습하는 것은 지도부가 사임하고 비대위 체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정현 대표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던 부분까지 거론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자, 듣고 있던 이정현 대표가 발끈했다.

    이정현 대표는 정병국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발언을 자청해 "이정현이가 뭘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있는 그대로 말씀을 하시라"며 "도둑질을 하고 누구와 연관된 것처럼 그렇게 말을 해서 괜히 오해를 사게 하지 말고 거론을 해달라"고 다그쳤다.

    이에 정병국 의원이 "지금 싸우자고 모인 것인가"라며 "굳이 (과거에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모시며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했다는) 그 말씀을 드려야 하느냐"고 하자, 이정현 대표는 "국민 앞에 이야기하시라"며 "무슨 도둑질을 했다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두 사람 사이의 설전이 "도둑질을 하셨느냐"(정병국 의원) "하지 않았다"(이정현 대표)의 수준에까지 흐르자, 이를 듣고 있던 주호영 의원은 참지 못하고 "좀 그만하시라"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 ▲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이정현 대표의 발언이 사려깊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사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이정현 대표의 발언이 사려깊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사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비박계 비분강개… "이정현, 마치 훈계하듯이"

    이날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를 마치고 나온 비박계 중진의원들은 비분강개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정병국 의원은 간담회 직후 본지 취재진을 만나 "그 대통령에 그 대표"라며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분개했다.

    주호영 의원도 "'잘 참고해서 상의하겠다'고 하고 (간담회를) 끝내면 되는 것을 우리를 앉혀놓고 (전당대회 결과까지 거론하며) 훈계하듯이 하면 누가 가만히 듣고 있겠느냐"며 "(8·9 전당대회에서) 당원이 (이정현 대표를) 뽑았다고 하는데, 당원들을 모아놓고 다시 한 번 물어보면 뭐라고 할 것 같은가"라고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파국으로 끝난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와 이 간담회 도중 나온 국무총리의 전격 지명을 계기로 새누리당 내의 친박계와 비박계는 사실상 '심리적 분당' 상태에 돌입했다는 관측이다.

    ◆금요일 의원총회가 분당 현실화 여부 가르는 분수령될 듯

    이를 입증하듯 전날 의원회관에서 모여 현 지도부의 퇴진과 재창당 수준의 인적 쇄신을 강조했던 당내 대권 주자들은 이날 총리 지명에 대해서도 비판 일색의 반응을 보였다.

    4일 오후 2시에 비박계 황영철 의원을 필두로 한 '지도부 퇴진론' 의원들이 요구한 의원총회의 소집이 예고된 가운데, 이날 의총이 '심리적 분당'이 실제 분당으로 이어지는 방아쇠가 당겨질지 여부를 결정짓는 새누리당 내홍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비박계 의원들이 의총에서도 지도부 퇴진을 관철해내지 못하면, 그간 집권여당 의원으로서 언급을 자제해왔던 부분들에 대한 심리적 금기가 해제되면서 정국은 급격한 '집권여당 분당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비박계 의원들은 그간 일부를 제외하고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적 이탈과 관련한 언급을 삼갔는데, 일정 시점이 지나면 이와 관련한 언급이 표출될 수 있다"며 "야권이 '하야 정국'의 불씨를 당겼는데, 향후 국민의 여론 동향에 따라 선도 탈당과 함께 이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는 의원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