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콘크리트' 승계에 '충청대망론' 결합 시나리오 '노란불'
  •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에선 비박비문(非朴非文)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타격을 입게 되면서, 친박계의 입지가 좁아지리라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목도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게도 독(毒)이 될 개연성이 높다.

    문재인 전 대표를 둘러싼 비선 논란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한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유세차에 우리 당 국회의원들을 오르지 못하게 했다"고 성토했다. 대선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당 소속 국회의원이라는 공조직보다 친노 비선(親盧 秘線)에 의존했던 모양새다.

    당대표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병헌 전 최고위원이 "대선 실패를 했던 정무적 판단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대표를 보이지 않게 보좌하고 있다"며 "정무적 판단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하자가 있는 판단이 어디선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선 실세의 존재를 개탄했을 정도였다.

    문재인 전 대표가 혹여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심각한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 이뤄질 수 있는 셈이다. 결국 국민들이 비선의 농단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비박비문(非朴非文)이 불가피한 까닭이다.

    이에 본지 〈뉴데일리〉는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서 커져갈 '비박비문' 외침의 수혜를 받을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향후 예상 행보를 살펴본다.


    국민의당 이용호 원내대변인이 정치부 기자 시절을 담아 저술한 〈권력의 탄생〉은 노태우정부 말기,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를 쟁취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용호 대변인은 이 책에서 노태우 대통령까지가 권력을 '승계'받은 형태였다면, 김영삼 대통령부터는 권력을 '쟁취'한 사례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미래 권력'이 '현재 권력'과 선을 긋고 권력을 쟁취해내는 사례는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박근혜 대통령까지 계속됐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에는 예외일 것이라고 점치는 정치권 관계자들이 있었다. '콘크리트'라 표현되는 굳건한 지지층이 그 근거였다. 차기 대통령을 결정하는 것을 넘어서, 퇴임 후에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 중진 국회의원도 있었다.

  •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4자 구도 대선으로 '권력 승계' 시나리오 '노란불'

    이와 관련해, 정치권 관계자들은 역대 대선을 △양자 구도 △3자 구도 △4자 구도로 치러진 사례로 나누어 분석해왔다.

    △양자 구도로 치러진 대선은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이었다. 각각 이회창 대 노무현,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로 치러졌는데, 이 때는 집권여당 후보가 승리했다.

    범여권 후보가 단일화되고, 범야권 후보도 다시 한 번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로 단일화돼 양자 구도로 치러지면 반드시 문 전 대표가 패배한다는 '문재인으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이에 근거한다.

    △3자 구도 대선은 1992년·1997년·2007년 세 차례 있었다. 김영삼~김대중~정주영(1992년), 이회창~김대중~이인제(1997년), 이명박~정동영~이회창(2007년)이라는 유의미한 세 후보가 대결을 펼쳤다.

    세 차례 중 두 차례(1997년·2007년)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집권여당의 후보가 승리했다는 1992년 대선도 군인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과 문민(文民) 민주화 야당 출신인 김영삼 후보 사이의 단절성을 감안하면 사실상 정권이 교체됐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측이 반기문~문재인~안철수가 맞붙는 3자 구도에 대해 '3자 필승론'이라며 유독 자신감을 갖는 것은 지난 4·13 총선의 사례와 함께 역대 대선의 3자 구도 결과에 고무된 것으로 보여진다.

    △4자 구도로 치러졌던 대선이 1987년 대선이다. 민정당 노태우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평화민주당 김대중·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라는 이른바 '1노3김'이 출전해 각축전을 벌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승계'받은 사례였던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옹위한 친박계의 노골적인 '권력 승계' 기도에 반발한 비박계 일부가 분당(分黨)을 결행해 독자 후보를 내더라도, 반기문~비박(非朴)후보~문재인~안철수의 4자 구도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경북(TK) 콘크리트 지지 기반을 물려받고 충청권 연고를 장악할 반기문 총장이 승리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이에 기반했다.

  •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사진 왼쪽)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유엔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 나란히 앉아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사진 왼쪽)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유엔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 나란히 앉아 있다. ⓒ뉴시스 사진DB

    ◆'권력의 승계' 시나리오에서 '권력의 쟁취'로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급격히 허물어지면서 이 시나리오는 그대로 가져가기 곤란하게 됐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의 재선 의원은 "요즘 지역구에 가보면 대통령과 우리 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가장 분노하고 있다"며 "원래부터 발목잡고 딴죽 걸었던 야당 지지층은 '그러려니' 하는데, 우리 당을 항상 지지해줬던 사람들의 이반 현상을 걷잡을 수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의원이 "청천벽력"이라고 표현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14%까지 폭락했다. 야당은 의도적으로 혼란의 수습을 방해하면서 하야 정국으로 상황을 몰고가고 있다. 여당이 수습책으로 구상한 거국중립내각 구상은 궁극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는 길이지만, 외견상 단기적으로는 대통령의 탈권(脫權)을 피할 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을 정한다"는 둥 "퇴임 후에도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둥 하는 말은 다 덧없는 소리가 됐다. 이런 말을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던 중진 국회의원은 새누리당의 공천 작업을 그르쳐 4·13 총선을 망쳐놓고 정치적 폐족(廢族)이 되고 말았다.

    '친박의 꽃가마를 탄다'는 말이 세간에 회자될 정도로 '권력 승계'의 유력한 대상이었던 반기문 총장도, 이제는 전혀 가망이 없어진 '권력의 승계' 시나리오로부터 눈을 돌려 '권력의 쟁취'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한층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평생 관료 생활을 한데다, 선거로 선출돼본 경험이 없는 반기문 총장이 '권력의 쟁취'를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정치권 안팎에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반기문 총장이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친박(親朴)과 얽혀 회자돼 왔는데,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박힌 친박계로부터 벗어나 빈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듯 자유롭게 정치적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갈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반기문 총장은 재작년(2014년)까지만 해도 권노갑 고문의 출판기념회에서 출마설이 언급될 정도로 범야권(汎野權)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느냐"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중도 지대를 선점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올해 5월 경북 안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념식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올해 5월 경북 안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념식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제3지대 창당설… 창당 완주냐, 중도 통합이냐

    유엔사무총장 임기를 마친 뒤 내년 1월 중순에 귀국할 것으로 알려진 반기문 총장의 이후 정치 행보와 관련해서는 △제3지대 창당설 △무소속 출마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당초 가능성 중의 하나로 언급되던 새누리당 단순 입당은 현 시점에서는 현실성이 낮아졌다는 관측이다.

    제3지대 창당설과 관련해서는 다시 두 가지 시나리오가 나뉘어진다.

    내년 1월 중순에 귀국한 뒤 대국민보고 형식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지지층을 정비하고 대학 특강 등으로 정견을 알려가다가, 특정 시점에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창당 움직임을 그려간다.

    한편 이 무렵 새누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인적 쇄신을 단행하는 등 '거듭나는' 절차를 밟는다. 그리고 새누리당이 비대위 체제에서 탈출해야 할 때쯤 '반기문 신당'과 통합 전당대회를 치른다는 예상이다.

    2014년초 가칭 '새정치연합'의 창당을 준비하다가 김한길 전 대표의 민주당과 전격 통합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걸었던 정치적 궤적과 유사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안철수 전 대표가 김한길 전 대표와 통합해 만든)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친노·친문과 같은 극렬 패권 세력이 있어 끊임없는 '흔들기'에 배겨낼 수가 없었다"면서도 "새누리당에는 유력한 대권 주자가 결정되면 그 밑으로 일사불란하게 줄을 서는 당풍(黨風)이 있기 때문에 반기문 총장이 당을 장악하기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제3지대에서 창준위 단계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으로 창당의 깃발을 들어, 새누리당 내의 원심력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새누리당 비박(非朴) 및 온건 친박 일부를 당밖으로 끌어내고, 민주당 비문(非文) 일부와,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의당 일부까지 포섭하는 '제3지대 빅텐트'를 구축한다는 시나리오다.

    이후 내년 12월 대선으로 치달아갈수록 점차 지리멸렬해질 새누리당 친박계를 선별적으로 입당시키면 '범여권 빅텐트'로 발전하게 된다는 복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자기 당을 만드는 게 보다 확실하게 대선 정국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신당 창당이 그리 쉽지 않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뭣보다 신당(新黨)은 큰 선거를 앞두고 있어야 만들기도 쉽고 성공 가능성도 높은데, 내년 4월 재보선은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지방선거나 총선은 모두 대선 이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현실정치의 경험이 없는 반기문 총장이 신당의 깃발을 들었을 때, 현역 의원이 몇 명이나 가담할지 의문"이라며 "'안철수 신당'도 창당했을 때 가담할 예상 의원이 4명(안철수·송호창·박주선·강동원)에 그쳤기에 빨간 불이 들어왔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올해 5월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올해 5월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무소속 '국민후보' 플랜은 현실성 '제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종의 '국민후보' 플랜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큰 타격을 입은 새누리당이 대선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할 반기문 총장을 측면 지원해 자연스레 '범여권 대표 후보'로 '국민 추대'된다는 설명이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그 실현 가능성에 지극히 회의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무소속 대선 후보가 좋은 결과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당내에 대권 주자가 많은 새누리당이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없다"고 일축했다.

    확실한 것은 그 어떤 시나리오를 통하더라도, 반기문 총장에게 든든한 기반과 지지층이 절로 주어질 리는 없다는 것이다.

    내년 1월 중순에 귀국한 뒤, 어떠한 형태로든 정국에 화두를 던지고 이를 주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 화두는 개헌론(改憲論)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전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월에 반기문 총장이 귀국할 무렵에는 새누리당의 친박 지도부가 무너지면서, 정진석 원내대표가 당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개헌론자인 정진석 원내대표와 보조를 맞추면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원내에서, 반기문 총장은 원외에서 개헌으로 '이슈몰이'를 하는 그림이 적절해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