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전문교수 "구두합의한 사람 정확히 밝혀야‥국가 세금 중앙정부와 합의 거치는 게 맞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 백수들에게 매월 돈을 나눠주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된 '청년수당' 논란이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지난 20일 서울시가 실업 상태인 청년들에게 매월 50만 원 씩을 '사회참여활동비' 명목으로 나눠주는 '청년활동지원사업'을 7월부터 강행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보건복지부가 "서울시 정책에 합의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터졌다.

    서울시 측은 지난 20일 오후 3시 무렵, '청년수당' 정책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보건복지부가 지난 14일 서울시에 '수용 동의 형태로 공문이 시행될 것'이라고 통보했고 보도자료를 어떻게 낼지도 합의했다"며 "복지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불수용 의사를 밝히며 합의를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이어 "여러 정보와 기사를 통해 확인된 구체적인 정황으로 볼 때 보건복지부의 합의 번복은 외부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강한 의혹이 있다"며 그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은 서울에서 1년 이상 거주 중인 만 19~29세 미취업 청년 3,000여 명에게 매월 50만 원씩 최장 6개월 동안 교육비, 교통비, 식비 등의 명목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보건복지부는 더 이상 자체 판단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다"며 "서울시는 보건복지부와의 수정안을 최종안으로 삼고, 구두합의를 근거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 시장 또한 지난 16일 오후 팟캐스트 방송 '원순씨 엑스파일'에서 "복지부가 청년수당을 수용하기로 했는데 외부에서 그것을 뒤집도록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외부가 청와대인지, 국정원인지 밝혀주길 바란다"며 ‘외압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일 긴급 브리핑을 갖고 “서울시와 실무적 협의를 해왔지만 사업 시행에 합의하거나 동의한 적은 없다”며 “실무적인 검토 과정을 서울시가 수용 합의로 예단한 것일 뿐”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보건복지부는 이어 "서울시가 청년수당을 강행하면 시정조치를 내리고 지방교부세 감액도 검토하겠다"며 청년수당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의 대립에 대해 학계는 "법과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박인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시 주장대로라면 구체적으로 누가 구두로 합의를 했는지, 합의한 사람이 정책 시행을 결정할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인환 교수는 "복지는 국가 세금을 쓰는 문제기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조율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복지 혜택은 꼭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쓰여야 하지만 평등하지 않은 정책에 쓰일 우려도 있기 때문에 문제 소지를 줄이기 위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간의 대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11일 서울시는 '청년수당' 정책의 구체적 시행안과 계획 일정을 발표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서울시가 정부와 구체적인 협의도 마치지 않은 정책을 갑자기 발표한 데 대해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에도 서울시에 재협의를 권고하며 '부동의' 의견을 최종 통보했다.

    당시 보건 복지부는 "대상자 선정 객관성이 미흡하고, 급여항목 가운데 공공 재원으로 지원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순수 개인활동이나 NGO 등 단순 사회참여활동 등의 항목이 포함돼 있어 해당 사업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보건 복지부는 또 "서울시는 급여 지출에 대한 모니터링 없이 정책을 시행할 계획인데 이 경우 청년 수당은 무분별한 현금 지금에 불과하다"며 "사업 효과를 평가할 수 없는 등 전반적으로 사업 설계와 관리 체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후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는 실무 협의를 진행했지만, 서울시가 정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돌연 "6월 말 대상자 모집을 위한 정식 공고를 낼 예정"이라고 발표하면서, “보건 복지부의 반대 배후에는 청와대가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서울시와 복지부는 사회보장기본법 상의 '사회보장 신설·변경 협의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사회보장 신설·변경 협의제도'에 따르면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 중앙정부는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 체계에 미치는 영향 및 운영방안 등을 살펴보고 양측은 제도에 문제가 없는지 협의하도록 돼 있다.

    서울시는 청년수당이 사회보장 신설·변경 협의제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면 보건 복지부는 ‘협의제도’ 대상임에도 서울시가 정부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사회보장기본법 위반을 이유로 대법원에 제소한 상태다. 서울시 또한 맞소송을 제기, 현재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시중 여론도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을 가리켜 '사회적 용돈' '청년 로또'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업자'라는 이유만으로 청년들에게 매달 5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돈의 사용처를 전혀 확인하지 않는다면 부적절한 용도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서울시는 '청년수당'을 받는 사람들의 활동계획서의 내용을 복지부 지적대로 취업과 창업을 준비하기 위한 활동으로 제한하되, 취업과 관련된 사회활동의 폭은 넓게 인정해 시민운동, 동아리, 취미활동 등 개인 활동 또한 자기소개서에 넣어 청년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해놨다.

    서울시는 또한 보건 복지부가 급여지출 모니터링의 방안 마련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주요 활동'에 대해서는 카드 명세서나 현금 영수증을 제출하도록 했지만, 지원금 전체에 대한 영수증은 첨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청년수당'의 대상인 청년층으로부터도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