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권 역량 과시하면서 연립 대비한 양당 압박 포석DJP 연립 선례 삼아 '호남에서 표만 받고 인사 홀대 안된다' 선긋기
  • ▲ 국민의당 지도부 등 주요 인사들이 지난 2월 2일 대전에서 열린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참석자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지도부 등 주요 인사들이 지난 2월 2일 대전에서 열린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참석자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민의당 내부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독자수권·연립수권 등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비해 '섀도 캐비닛'(그림자 내각)을 구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두고 △국민 △호남 △당내 △당 외부 등 여러 방향을 향해 각각 특정한 목적을 담은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최근 취재진과의 오찬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국민이 우리에게 집권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라며 "수권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캐비닛 내각을 구성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섀도 캐비닛, 영국 등에서는 이미 일상화

    섀도 캐비닛은 선진 의회정치를 실시하는 국가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제도다. '우리 당이 집권할 경우, 이런 사람들이 내각에 들어가 장관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밝혀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정권교체시 펼칠 정책에 대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은 보수당이 집권 중이지만 차기 총선에서 노동당이 다수당이 될 경우 입각할 사람들이 이미 섀도 캐비닛 형태로 다 구성돼 있다.

    현재 영국의 최대 국정 쟁점인 EU 탈퇴(브렉시트)와 관련해 노동당 섀도 캐비닛의 법무장관인 도로턴 남작 찰스 팔코너 경은 강경한 EU 탈퇴 반대론자이기 때문에, 노동당이 집권할 경우 영국이 EU에 잔류하게 될 것임을 유권자와 시장이 쉽게 내다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에 의한 '깜짝 인사'가 일상화돼 있어, 섀도 캐비닛과 같은 선진적인 제도가 지금껏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인재 풀 빈곤한 더민주와 차별화… 수권역량 과시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당 일각의 섀도 캐비닛 구성 제안은 △독자적인 수권 비전 제시 △호남 민심 안정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양당 압박이라는 세 가지 의미에서 제시된 것으로 분석된다.

    야권 관계자는 24일 본지와 통화에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이나 지방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친노·친문·운동권·486들로 가득한 '아마추어' 정당이 아니냐"며 "거듭된 물갈이로 인재 풀이 약화된 더민주에 비해 (섀도 캐비닛을 구성하면) 국민의당에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더민주는 법조·행정·안보 전문가가 거의 없다. 4성 장군 출신으로 안보 전문가인 백군기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가 만들어놓은 '시스템 공천'에 의해 컷오프되는 등 '내부 총질'을 당한 끝에 4·13 총선에서 낙선했다. 경제 전문가도 비주류인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정도를 제외하면 찾기 힘들다.

    반면 국민의당에는 각료 출신 인사가 풍부하고, 지방행정을 통해 성장해온 인재들도 많다.

    야권 관계자는 "박주선 최고위원은 검찰에 몸담았을 때부터 검찰총장·법무장관 0순위로 꼽혀왔던 인재 중의 인재인데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전격 발탁했다"며 "검찰 개혁의 적임자이기도 하고, 4선으로 정치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국무총리도 가능하다"고 평했다.

    그밖에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장병완 정책위의장과, 여천군수~초대 통합여수시장을 역임하고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을 맡았던 주승용 원내대표, 정읍시장을 지낸 3선의 유성엽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충분히 입각할 수 있는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 ▲ 국민의당은 독자 수권 혹은 연립정권 구성시 광주·전남북을 대표해 내각에 들어갈 인재 풀이 풍부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표=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국민의당은 독자 수권 혹은 연립정권 구성시 광주·전남북을 대표해 내각에 들어갈 인재 풀이 풍부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표=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호남 인사 포함시켜 더민주 '호남 홀대' 부각?

    호남 민심을 안정시키고 호남에서의 우세를 완전히 굳히겠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다. 4·13 총선에서 호남 민심이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를 심판하고 국민의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준 것은 사실이지만, 대선까지 1년 7개월여나 남은 상황에서 향후 호남 민심의 향배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야권 관계자는 "안철수 대표가 '호남의 사위'일 뿐 '호남의 아들'은 아니지 않느냐"며 "안철수도 똑같더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호남은 언제든 다시 돌아설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국민의당에서는 총선이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호남당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등의 '호남당' 논란이 나오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호남 민심은 더민주가 호남에서 표만 받아가고, 선거만 끝나면 '호남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배신하는 통에 국민의당을 지지했던 것인데, 국민의당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구심을 불식시키려면 국민의당은 인사에서 호남 차별이 결코 없을 것이라는 신뢰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에 섀도 캐비닛 구성만큼 적절한 수단이 없다. 박주선·주승용·장병완·유성엽 등 광주와 전남북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집권시 입각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부터 보여주면 마냥 추상적인 '호남 주도의 정권교체'라는 게 뭔지 직관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DJP 연립내각 전례 삼아 더민주 압박 의도도

    한편에서는 섀도 캐비닛 구성 제안에 대해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더민주 양당을 압박한다는 측면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만일 양당 중 어느 한 쪽이 국민의당과 편을 이뤄 2017년 대선에서 정권 창출에 나서려면 호남을 대표하는 국민의당에 일정 부분 연립의 대가를 할애해야 한다는 점을 미리부터 압박하고 나섰다는 분석이다.

    지난 4·13 총선 과정 중 국민의당 일부 인사는 "호남 자민련이면 어떻고, 호남당이면 어떠냐"며 "국민의당은 지역의 실리를 챙기며 호남이 주도적으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997년 김종필 총재(JP)의 자민련이 DJ의 새정치국민회의와 '연립'해 정권을 창출하고, 이듬해 3월 3일 발표된 1기 내각에는 자민련 출신 인사가 대거 포진했다. 국무총리를 김종필 총재가 직접 맡았으며, 주양자 부총재가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이정무 원내총무가 건설교통부장관으로, 강창희 사무총장이 과학기술부장관으로, 김선길 의원이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입각했다.

    호남을 대표하는 국민의당의 득표력 지원을 통해 정권을 창출하는 세력은, 대선 때 표만 긁어가고 이후 인사·예산에서 '호남 홀대'를 할 것이 아니라 JP의 자민련 때의 사례에 준해 호남에 적절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의 정치 협상 과정에서도 활용 가능

    이는 더민주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을 향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일보〉는 지난 21일자 사설에서 이번 4·13 총선의 결과로 "새누리당은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어 당을 수습해갈 중심 세력이 형성되지 못하는 처지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제하면서도 "권력의 상당 부분을 야당에 내주고 연정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의를 환기했다.

    1988년 총선에서 참패했던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 정부는 당내에 마땅한 차기 대선 주자조차 없어 극심한 동요에 빠졌다. 결국 1990년, 평생 야당 정치인이었던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를 여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끌어안는 대신 민주당·공화당과 합당하며 정치권의 판 자체를 뒤바꾸는 대형 정계개편을 촉발시켰다.

    지금 정국에서 마땅한 대권 주자가 없는 새누리당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로 들어앉으면서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합당해 연합정권을 꾸리는 '양당제 회귀'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할 경우,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원내에서의 안정 의석 확보를 위해 정부·여당이 검토할 수 있는 카드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이 경우에도 국민의당 섀도 캐비닛은 향후 다양한 정치 협상의 과정에서 하나의 지렛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