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 개정안 직권상정 거부..여수 등 호남 출마설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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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지 않는 국회에 대한 국민적 지탄이 하늘을 찌르고 있음에도, 칼자루를 쥔 정의화 국회의장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민생경제 법안 처리를 애타게 기다리던 국민들이 보다 못해 입법촉구 서명운동에 나선 상황을 고려하면, 정치권이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의화 의장은 21일 국회선진화법 개정안과 주요 쟁점 법안들에 대한 직권상정을 거부했다. 이번에도 역시 '의회민주주의 확립', '여야 합의 우선' 등의 명분을 내세웠다.

    자당 출신 의장의 끝 모를 배신에 새누리당은 허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고, 야당은 "존경한다"며 극찬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이날 정 의장의 기자회견 직후 브리핑을 갖고 "정의화 의장의 국회선진화법 개정안 직권상정 거부는 의회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너무나 당연한 노력이다. 의회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국회의장의 진심어린 선택에 존경을 표한다"고 치켜세웠다. 

    앞서 정 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을 비롯해 여러분들이 의장이 결단을 해서 직권상정을 하면 될 텐데 왜 안 하느냐고 요구할 때 여당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인간적으로 어찌 곤혹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국정을 뒷받침해야 하는 여당의 고충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화 의장은 이어 "하지만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지키는 국회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못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국회법 개정안과 쟁점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은 적법한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특히 "법안 제정 당시에도 제가 반대했다"며 "이 법이 통과되면 우리 국회가 무기력한 식물국회가 될지 모른다는 당시의 제 걱정이 기우(杞憂)가 아니었다"고 했다. 과거 국회선진화법 제정 당시 반대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 의장은 이날 여당에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선진화법의 문제점을 잘못 짚고 있어 이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현재 국회선진화법에서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인 과반수의 틀을 무너뜨리고 60%가 찬성해야 법안이 통과되도록 한 점"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특히 그는 "선진화법에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한 것을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해법은 신속 처리 제도가 실제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현행) 60%를 과반수로 개선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새누리당은 최근 다수결의 원리와 과반의석을 무력화하는 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강하게 추진했다. 개정안은 국회의장의 심사기간 지정(직권상정) 요건에 재적의원 과반수가 본회의 부의를 요구하는 경우를 추가했다. 정 의장이 이 개정안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직권상정 거부를 표명한 것이다.

  • 정 의장은 또 "국회의장 직권상정은 국회의 정상적인 심의 절차에 대한 예외 규정으로, 그 요건은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게 규정되고 해석돼야 한다. 직권상정이 남용된다면 여야 간 대립을 심화시키고 상임위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은 국회 운영에 관한 틀을 바꾸는 것으로 여야의 충분한 협의가 필수적이다.", "현행 선진화법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면서 여야가 공히 수용할 수 있는 선진화법 중재안을 마련,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논의를 시작하겠다"며 여야 합의가 우선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국회선진화법과 경제활성화법 등 쟁점 법안을 설 이전에 해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연이은 탈당 여파로 사실상 제1야당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야당의 법안 통과 협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장이 여야 합의 등의 원론적 입장만 고집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런 의장의 의도를 두고도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개인 정치에 매몰된 정 의장이 야심 때문에 선진화법과 경제살리기 법안 등의 직권상정을 거부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운 의회주의자' 이미지를 굳혀 야권 대선 후보 쪽에서의 출마를 염두한 행태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동안 여당 내부에서는 정 의장이 20대 총선에서 호남 등지에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이 무성했다.

    지난해 말 한 친박계 의원은 "그도안 정 의장은 여수 광주 등 호남에서 명예시민 등의 각종 타이틀을 갖고 여러 강연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총선에서 여수에 출마한다는 설이 당 내부에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 의장이 당 요청과 상관없이 광주 지역 출마를 고려 중이라는 주장이 나돌고 있다. 이와 함께 정 의장이 '안철수 신당'인 국민의당 입당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정 의장은 이 같은 설을 일단 부인하고 나섰지만, 지금까지의 정 의장의 행보 등을 고려하면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국회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광주 출마설 등에 대해 "그건 코미디다. 아직까지는"이라며 아리송한 단서를 달았다. 그는 당 요청이 있을 경우 생각해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아직 그런 가정은 하지 말자"며 역시 애매한 입장을 표명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날 국회선진화법 개정 작업에 제동을 거는 여당 출신 정 의장에 대해 "도대체 어디서 온 분"이냐며 강하게 성토했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이 모두 선진화법 개정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데 국회의장은 이런 몸부림에 대해 하나도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합법적인 결과를 문제삼는 의장을 이해할 수 없으며 과연 의장은 어디서 오신 분인가 하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인제 최고위원 역시 "국회의장이 국회법 개정 처리를 거부하면 국회의장의 자격이 없다"며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직권상정에 대한 여당의 간곡한 요구에 정 의장이 "위법하다"며 정면 반박 입장을 밝힘에 따라 정 의장을 향한 새누리당의 비판 여론은 극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친박계를 중심으로 해임건의안을 다시 꺼내들고, 서명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거듭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