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장 시절부터 "정무적 보좌하겠다" 선언… 날개 활짝 펼칠 수 있을까
  • 난세는 영웅호걸을 부른다. 하나의 체제가 끝장나고 새로운 체제가 수립될 때만큼 영걸이 등장하기에 적기는 없다. 그간 신당 추진 세력에 대권주자급 인물이 없음을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박주선 의원이 "신당을 만들어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대권주자는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라고 일갈한 것은 이를 함축한 말이다.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分黨) 국면에 돌입했다. 오랫동안 한국정치사를 억눌러온 친노패권주의·486 세력을 일소하고,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중도개혁·민생실용을 지향하며 국민들로부터 널리 수권 능력을 인정받는 새로운 신당을 출범시킬 절호의 기회다. 국민의 기대도 높다.

    "친노를 척결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길에서 누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도드라진 활약을 보일까. 내년 4월 13일, 친노 문재인 체제라는 구태의연한 체제가 허물어져 내릴 때, 국민은 누구의 업적이 가장 컸다고 손을 들어줄까. 〈뉴데일리〉는 새정치연합의 분당 국면을 맞이해 신당십이걸(新黨十二傑) 기획 연재를 통해 이를 조명해 본다.

    ① 안철수와 선시어외(先始於隗)
    ② 김한길과 기인지우(杞人之憂)
    ③ 박주선과 성중형외(誠中形外)
    ④ 박지원과 백척간두(百尺竿頭)
    ⑤ 천정배와 계명구도(鷄鳴狗盜)
    ⑥ 문병호와 수어지교(水魚之交)
    ⑦ 주승용과 삼인성호(三人成虎)
    ⑧ 유성엽과 일파만파(一波萬波)
    ⑨ 이윤석과 화룡점정(畵龍點睛)
    ⑩ 황주홍과 기렵우인(期獵虞人)
    ⑪ 정대철과 신기묘산(神機妙算)


  • ▲ 신당십이걸 기획열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신당십이걸 기획열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내년에 내가 배지를 달고 대선에서 지는 길과, 배지를 못 달고 대선에서 이기는 길이 있다면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문병호 의원이 17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뒤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지역구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자 천명했다고 한다.

    23일 임내현 의원이 탈당하면서 현역 국회의원으로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의원이 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문병호 의원은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여전히 비(非)호남 지역구의 유일한 탈당 의원이다. 지역구에서 탈당했을 경우 내년 총선의 향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안 나왔을 수가 없다. 그러나 문병호 의원이 저렇게 답하자, 핵심당원 모두가 뜨거운 박수 갈채로 화답했다고 한다.

    "총선에서 내가 당선되는 것과 대선에서 당이 승리하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전자"라는 것은 여의도 정치권의 금언이다. 이를 거스른 것이 문병호 의원이다. "용기 있는 결정"이라는 감탄이 자자하다. '의리의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하지만 내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리(義理)라는 사사로운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더 큰 그림이 자리하고 있다.

    문병호 의원과 안철수 의원 사이의 인연은 지난해 초,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 세력의 통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의 결단으로 전격적인 통합이 이뤄졌고,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연합의 공동대표가 됐다. 이 때 안철수 의원이 대표비서실장으로 지명한 이가 문병호 의원이다.

    파격적인 인선이었다. 초선 대표가 재선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지명했다. 게다가 나이도 문병호 의원(59년생)이 안철수 의원(62년생)보다 많다.

    문병호 의원은 당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와서 '안철수 대표가 (대표비서실장으로) 지명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기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하고 주변에 자문을 구했더니 다들 '맡는 게 좋다'고 했다"며 "그러던 차에 안철수 대표가 직접 전화를 해서 '좀 도와달라'고 하기에 바로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친노(親盧) 일각에서는 문병호 의원이 이번에 '선도 탈당'하자, 원래 지난 대선 때부터 안철수 의원과 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주류로 분류되는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그 사람(문병호 의원)은 예전 민주통합당 시절부터 안(安)바라기였다"고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병호 의원은 "통합 전까지 안철수 대표와 차 한 잔 마신 적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 ▲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안철수 의원과 함께 독자적인 신당 창당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문병호 의원(사진 왼쪽).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안철수 의원과 함께 독자적인 신당 창당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문병호 의원(사진 왼쪽).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오히려 문병호 의원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던진 사람 축에 속한다. 문병호 의원은 안철수 의원이 지난 21일 개최한 정치세력화의 원칙과 방향을 설명하기 위한 기자간담회에 배석한 이후 취재진과 문답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신당 합류 가능 여부가 화두가 되자 문병호 의원은 "기소만 되면 공천 배제라고 하면 나도 안 되지 않느냐"며 "나도 폭력사범으로 기소돼 있다"고 농을 던졌다.

    농담이지만 사실이다. 문병호 의원은 폭처법상 공동감금 혐의로 재판에 계류 중이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에 앞장 선 결과다. 당시 당의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표를 위해 몸을 던져 기소된 4명의 현역 국회의원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왜 친노패권주의를 문제삼고 나섰을까. 심경의 변화가 비롯된 것은 어디서부터였을까.

    2·8 전당대회에서 문병호 의원은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그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당내 계파패권주의를 문제삼았다. 엄연히 패권주의로 전횡하는 친노 계파가 당내 최대 세력인 상황에서 결코 당선이나 득표에 유리한 전략은 아니었다.

    고전을 거듭하던 그의 지지율은 전당대회 레이스 후반으로 갈수록 솟구쳤다. 친노 계파가 당권 장악을 위해 '여론조사 룰 해석'을 경선 도중 변경하고, 단체장들을 줄세워 문재인 후보 지지 문자를 보내게 하는 등 무리수를 잇따라 두자 대의원들과 권리당원들도 친노패권주의의 심각성에 경각심을 갖게 된 결과였다.

    안철수 의원의 지원 유세도 한몫했다. 안철수 의원은 자신이 공동대표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문병호 의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전남대의원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을 함께 돌아다니며 문병호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덕분에 막판에 가서는 문병호 의원은 득표 순으로 5위까지 선출되는 최고위원에 당선권이라는 분석이 유력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핵심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면 "막판에 모든 게 뒤집혔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맹추격으로 대표 경선의 승패가 혼미한 양상에 빠지게 되자, 친노 계파와 범주류인 다른 계파가 '정치적 거래'에 나섰다는 것은 거의 정설이다. 특정 계파 출신의 최고위원 후보에게 친노 계파가 표를 몰아주는 대신, 해당 계파는 대표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는 내용의 거래다.

    이 지저분한 거래는 '여론조사 룰 해석 변경'과 함께 대표 경선의 결과를 뒤바꿔놓았다. 뿐만 아니라 최고위원 경선의 순위까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놨다. 그 과정에서 문병호 의원은 6위로 밀려나면서 희생됐다. 계파패권주의 청산을 내걸고 출마한 후보를 계파패권주의 세력이 희생시킨 셈이다.

  • ▲ 문병호 의원(사진 가운데)이 지난 17일 유성엽·황주홍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문병호 의원(사진 가운데)이 지난 17일 유성엽·황주홍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렇다면 문재인 대표를 향해 몸을 던져 이른바 '잡범'으로 기소까지 된 그는 왜 애시당초 계파패권주의를 문제삼고 나서는 '가시밭길'을 향했을까.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그만큼 친노 그들만의 이너서클이 공고하다는 증거"라며 "캠프 언저리에서 뛰어봤던 사람이라면 친노패권주의에 반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게 돼 있다"고 추측했다.

    친노 계파에 속한 후보의 캠프에서 뛰어본 야권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캠프에 핵심 친노들로 구성된 '이너 서클'이 따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선거전의 중요한 정보는 그 안에서만 공유된다"며 "아무리 열심히 선거를 뛰어도 '이너 서클'에 들어갈 수 없고, 정보에도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저절로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폐쇄성'과 '배타성'으로 철옹성을 쌓는 친노 계파다운 특징이다. "문병호 의원도 문재인 후보를 위해 뛰면서도 그 점을 절감했을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그런데도 친노들은 지난 대선에서 당 의원들이 제대로 안 뛰어서 졌다고 불평불만을 한다"며 "한마디로 적반하장"이라고 혀를 찼다.

    이러한 계파패권주의 행태로는 어떠한 선거에서도 절대 승리할 수 없다. 친노가 선거마다 연전연패하는 이유다. 김동철 의원은 지난 20일 탈당하면서 "두 번의 총선과 두 번의 대선 패배는 물론이고 지난 10년간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1승 30패라는 치욕적인 기록을 당했다"고 헤아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친노로는 총선 승리는 물론 대선 승리도 불가능하고 정권교체도 안 된다. 문병호 의원은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지역구가 수도권이라 탈당하면 당장 자기자신의 금배지가 떨어져나갈 수 있지만 그래도 탈당했다. 정권교체할 수 있는 후보를 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소산이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해야 문병호 의원의 "내년에 내가 배지를 달고 대선에서 지는 길과, 배지를 못 달고 대선에서 이기는 길이 있다면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는 발언의 의미와, 이를 들은 핵심당원들이 일제히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낸 이유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안철수 의원이 공동대표 시절 대표비서실장으로 임명해줬고, 2·8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지원해줬기에 탈당한다'는 개개인 간의 사사로운 의리와 사정(私情)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 ▲ 문병호 의원(사진 왼쪽)이 지난 17일 유성엽·황주홍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선언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문병호 의원(사진 왼쪽)이 지난 17일 유성엽·황주홍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선언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제갈량은 큰 뜻은 숨기고 있었을지언정 융중에서 평안하게 잘 살고 있었다. 유비가 세 번에 걸쳐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면서 동생인 제갈균에게 "나는 대업을 이룬 뒤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 조용히 살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결국 생전에 다시는 그러한 평안한 생활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오장원에서 피를 토하며 객사하고 말았다. 자신이 험난한 길을 걷게 될 것을 알면서도 출려(出麗)하는 제갈량과 같은 비장미가 느껴진다.

    안철수 의원과 문병호 의원의 관계를 이렇게 빗대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초선인 안철수 의원의 최대 약점은 정무 감각으로 평가된다. 지금보다 대중적 인기와 지지도가 훨씬 높았던 지난해 초에 독자 신당 창당에 실패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문병호 의원은 안철수 의원이 공동대표였던 시절 대표비서실장을 제안받았을 때부터 이미 "수행이나 일정 관리 이런 것을 하려고 (비서실장을) 하는 게 아니다"라며 "정무적인 보좌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유비 밑에서 이른바 '간손미(간옹·손건·미축)'처럼 단순한 업무를 맡으려는 게 아니라 군사(軍師)로서 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문병호 의원이 대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이라는 큰 바다를 만나 교룡입해(蛟龍入海)하는 모양새다.

    때마침 안철수 의원이 "확 달라졌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이러한 '안철수의 변신'에는 문병호 의원의 숨은 공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과제는 남아 있다. 안철수 의원에게는 '진심캠프'와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라는 기존의 가신(家臣) 그룹이 있다. 나름대로 간난고초(艱難苦楚)를 함께 겪었던 사람들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들 또한 친노 못지 않은 '이너 서클'적인 배타성과 폐쇄성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독자적인 신당 창당을 추진해던 지난해 초와는 달리 문병호 의원을 위시해 김동철·유성엽·임내현·황주홍 의원처럼 새정치연합 탈당파 의원들과 함께 하게 되는 지금, 안철수 의원은 과연 기존 세력의 불만을 잘 다독여갈 수 있을까.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파열음이 나지는 않을까.

    유비는 제갈량을 얻고난 뒤 기존에 의형제로 함께 다니던 관우와 장비가 불평하자 "내가 공명을 만난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水魚之交)"고 말해 이들의 불만을 일축했다. 안철수 의원에게도 반드시 비슷한 어려운 상황이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문병호 의원과의 관계를 '수어지교'로 생각해, 그가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도록 해줘야 본인도 신당의 대표로서, 또 대권 주자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