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행동, 비상기구~통합전대 로드맵 제시… 수습안 백가쟁명할 듯
  •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지난 12일 문재인 대표 독대와 사퇴 요구로 촉발됐던 당내 위기가 문재인 체제 붕괴로 정리돼가는 흐름이다. 사진은 지난달 13일 본회의장에서 주승용 최고위원, 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과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는 박지원 전 대표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지난 12일 문재인 대표 독대와 사퇴 요구로 촉발됐던 당내 위기가 문재인 체제 붕괴로 정리돼가는 흐름이다. 사진은 지난달 13일 본회의장에서 주승용 최고위원, 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과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는 박지원 전 대표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요지부동으로 버티던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 문재인 체제가 마침내 몰락 전야를 맞이했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12일 독대에서의 사퇴 권유, 김동철·유성엽 의원 등 민주당집권을위한모임(민집모)의 16일 사퇴 촉구 기자회견 연기에 이어 같은 날 민병두·조정식·정성호 의원 등 통합행동의 세대혁신비상기구 구성 요구 등 일련의 흐름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미 문재인 대표 체제는 끝장났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포스트-문재인 체제'에 관한 논의가 백가쟁명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박지원 전 대표는 12일 문재인 대표와의 독대에서 "결국 (문재인) 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문재인 체제가 계속된다면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지난 주말에는 민집모 의원들이 16일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 소속 현역 의원들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의사표현을 기자회견이라는 형태로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우윤근 전 원내대표도 16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기자회견 형태로 (사퇴 요구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날 오전 기류가 급변했다. 박지원 전 대표는 YTN라디오에 출연해 "프랑스 테러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당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비록 명분을 지난 14일의 프랑스 파리 테러에서 찾기는 했지만, 국제 문제와 국내 정치 문제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모종의 다른 이유 때문에 기자회견이 시기상조라는 뜻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전병헌 최고위원도 같은 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사전 조율하기 전에 각자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천명부터 하는 것은 당이 파열음을 보일 수 있다"라며 "좀더 내부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서 이야기가 됐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역시 '사전 조율' '내부 조정'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그러더니 급기야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돼 있던 민집모 기자회견이 연기됐다. 문병호 의원은 이날 민집모 오찬 회동 직후 취재진과 만나 "문재인 대표도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당내 여러 정파들이 나름대로 수습을 위해 고민 중이고 대안을 만드는 상황이라 일단 지켜보고 재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 새정치민주연합 최원식·김동철·문병호·유성엽 등 민집모 소속 의원들은 16일 여의도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갖고 이날 오후 2시로 예고했던 문재인 대표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9월 16일 중앙위원회에서의 만장일치 박수 의결에 반발해 집단 퇴장하고 있는 민집모 소속 의원들의 모습. ⓒ뉴시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최원식·김동철·문병호·유성엽 등 민집모 소속 의원들은 16일 여의도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갖고 이날 오후 2시로 예고했던 문재인 대표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9월 16일 중앙위원회에서의 만장일치 박수 의결에 반발해 집단 퇴장하고 있는 민집모 소속 의원들의 모습. ⓒ뉴시스 사진DB

    하지만 김동철 의원은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에서 "문재인 대표에게 결단을 위한 시간을 좀 더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 등 당 내외의 상황을 반영해 며칠 연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며 문재인 대표 사퇴 촉구 의사가 결코 '취소'되거나 '철회'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병호 의원도 "실질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당의 지도 체제를 바꾸어야 할지에 대해 내용이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결국 민집모가 당초 예정됐던 문재인 대표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연기한 것은,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긴박한 물밑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문재인 대표 체제는 끝장났다는 것을 전제로, 당의 지도 체제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를 놓고 여러 계파 사이에서 '사전 조율'과 '내부 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대에서 먼저 사퇴를 촉구했다고 스스럼 없이 밝혔던 박지원 전 대표가 돌연 "당내 문제를 거론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회한 것은 더 이상 공개적으로 사퇴를 압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황이 정리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병헌 최고위원이 "바깥으로 떠들기 전에 내부적으로 더 의견을 모아가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라고 한 것은, 국왕이 붕어(崩御)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기에 앞서 왕위를 물려받을 후계자가 내부적으로나마 인선돼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민집모도 대안을 지켜보기 위해 문재인 대표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연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찌보면 사퇴 촉구 기자회견이 강행된 것보다 연기된 것이 문재인 대표 체제의 사망 증명을 보다 공고히 한 셈이다.

    민집모 기자회견이 연기되자, 당장 '포스트-문재인 체제'에 대한 대안 제시가 이뤄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새정치연합 조정식 전 사무총장과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 정성호 민생본부장 등 이른바 '통합행동' 멤버들은 같은 날 오후 3시 국회에서 "문재인~안철수 협력을 기초로 세대혁신비상기구를 구성해 야권통합을 이뤄내자"는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민병두 원장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문안(文安) 협력 복원이 중요하다"며 "안철수 전 대표가 제시한 부정부패 척결과 낡은 진보 청산, 수권비전위 구성 등은 공론화돼고 수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안 협력을 통해 세대혁신비상기구를 구성하고, 이 기구가 당내 통합을 기초로 전당대회 등을 포함한 범야권 통합을 이뤄내 새누리당과 1대1 경쟁을 통해 국민들이 희망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9월 20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된 한명숙 전 대표의 제명을 촉구하는 '부정부패 척결' 혁신안을 내놓은 데 이어 '낡은 진보 청산'도 요구했으나, 문재인 대표는 일축 내지 묵묵무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조정식 전 사무총장,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 정성호 민생본부장 등 통합행동 소속 의원들이 16일 국회에서 포스트 문재인 체제에 적용할 3단계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조정식 전 사무총장,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 정성호 민생본부장 등 통합행동 소속 의원들이 16일 국회에서 포스트 문재인 체제에 적용할 3단계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에 안철수 전 대표는 문재인 대표에 대한 불신감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자 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야권 일각에서 제기한 것처럼 안철수 전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든, 그렇지 않고 원탁회의 형태로 하든 조기 선대위나 비대위 구성 자체가 난망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통합행동'이 나서서 문안 협력 복원을 부르짖음으로써 양자 사이에서 신뢰를 담보하는 역할을 맡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구성되는 세대혁신비상기구라는 것은 결국 조기 선거대책위원회나 비상대책위원회와 다르지 않은 기구이지만, 자칫 외부에 '계파 나눠먹기' 식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세대혁신'이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이른바 당의 대주주(大株主)라 불리는 계파 수장들의 참여를 제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나아가 이 세대혁신비상기구를 통해 범야권 통합을 위한 전당대회를 소집한다는 것은 '통합행동'의 일원인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지난달 5일 주장했던 통합전대 안(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통합행동'이 이날 제안한 당 내홍 수습안은 결국 그간 당내에서 제시됐던 '조기 선대위 내지 비대위 발족'과 '통합 전당대회'를 뭉뚱그려 수용하고, 그 전제로 문재인~안철수 협력의 복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통합행동'이 이날 자신들의 수습안에 대한 당내 반발을 우려해 디테일한 측면에 있어서는 언급을 삼갔음에도 일부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후 당내 여러 의견 그룹들이 백가쟁명으로 수습안을 제시한 것으로 예견되는 이유다.

    새정치연합의 재선 의원은 "문재인 대표는 그 자신이 친노 계파의 수장인데, 세대혁신비상기구에 문재인 대표는 문안 협력을 기초로 들어가고 다른 계파 수장들은 '세대혁신'을 이유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형평에 맞지 않는다"며 "세대혁신비상기구가 일종의 선대위나 비대위를 뜻하는 것이라면, 문재인 대표가 들어가면 정세균·김한길·박지원 대표 등 다른 분들도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아니면 안철수 대표만 들어가고 문재인 대표는 빠져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또다른 새정치연합 의원은 "천정배 의원이 이번 주에 창당추진위를 발족하고 박주선 의원도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모양이던데, 만들던 당을 관두고 모두 다시 새정치연합으로 뭉치자는 통합 전당대회가 실현될 수 있겠느냐"며 "현실성이 희박한 제안보다는 빨리 문재인 대표 체제 하에서 이뤄졌던 선출직공직자평가위의 하위 20% 공천 배제안 따위를 백지화하고, 당이 통합·단결된 상황에서 빠르게 총선 준비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