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서 무죄판결 나온 시국사건 강조..이정희·이석기는 거론 안 해
  • ▲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 조선닷컴
    ▲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 조선닷컴

    좌파 지식인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이른바 ‘반헌법행위자 열전’(가칭)을 만든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내란, 민간인 학살, 고문과 용공조작, 부정선거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파괴·유린한 인물들의 명단과 주요 활동상 등을 수록한 일종의 사전적 형태의 책자를 발간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표면적인 내용만 보면 근사하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유린한 자들의 면면을 자세하게 수록해 후세에 전하겠다는 발상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이들이 밝힌 대로만 사업이 이뤄진다면,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건국을 음해· 왜곡하며,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수치스런 국가라고 폄훼한 이들의 이적행위를 후세에 정확하게 전할 수만 있다면, 앞장서 사업 추진을 지지하고 응원해야 할 일이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짓밟고 훼손한 반국가인물들을 선별해 이들의 해악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역시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비록 이 사업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인물들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처럼 그간의 발언과 강연과 책자를 통해 친북-반대한민국적 사고를 뚜렷하게 드러낸 이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사업의 취지가 바르고 목적이 분명하며, 절차가 투명하다면 이들의 행위를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이 반헌법행위의 예로 제시한 민간인 학살이나 고문 혹은 용공조작, 부정선거 등도, 그 실체가 명확하고, 엄정한 역사적·사회적 평가와 객관적 연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된 사안들이라면,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털고 간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다.

    물론 헌법 파괴의 대표적 사례인 내란을 반헌법행위의 하나로 제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12일 ‘반헌법행위자 열전 준비위원회’는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반헌법행위자 열전 만들기 1차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발제를 맡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누가 반헌법행위자인가?’라는 주제의 원고를 통해, “어떤 사람이 수록돼야 할지 그 기준을 논의하는 자리”라며, 이날 토론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홍구 교수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수십 차례의 토론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 한홍구 성공회대 고양학부 교수.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한홍구 성공회대 고양학부 교수.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러면서도 한홍구 교수는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수록될 인물 선정 기준으로 다음의 4가지를 제시했다.

    한홍구 교수가 제시한 반헌법행위자 선정 기준은 ▲반헌법행위를 지시 또는 교사한 자 ▲반헌법행위에서 주요 임무를 수행한 자 ▲반헌법행위를 방지하거나 고발할 책임이 있으면서 이를 적극 묵인 또는 은폐한 자 ▲반헌법행위 또는 행위자를 적극 비호한 자 등이다.

    특히 그는 사법부의 재심을 통해 무죄로 결론 난 사건들을 중요하게 다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역시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홍구 교수의 발제 내용을 풀이해 보면, 반헌법행위자 열전의 수록 기준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다. 동시에 좌파 진영이 이름조차 낯선 반헌법행위자 열전 사업을 벌이려는 속내도 엿볼 수 있다.

    한 교수의 발언을 기준으로 한다면, 주로 2000년대 들어 사법부의 재심을 통해 무죄선고를 받은 이른바 ‘민주화 유공자’들을 처벌하는 데 관여한 경찰과 검찰, 법관들이 ‘반헌법행위자 열전’의 맨 앞을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 수사기관 및 사법부의 장이나 청와대 민정라인의 핵심 인사들도 ‘헌법을 파괴하거나 유린한자라’는 낙인을 받을 유력 후보군이다.

    정리하자면 과거 검찰의 정통 공안 검사나 경찰 보안수사대 대원들, 주요 시국사건을 심리한 법관들 상당수가 반헌법행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처지에 몰렸다.

    한홍구 교수의 설명대로 사업이 진행된다면, 주요 공안사건을 적발하고 수사에 참여한 국가정보원의 수장과 핵심 요원들은, 반헌법행위자 열전 수록을 예약해 놓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헌법행위자 열전’의 기획의도가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과거 공안검사나 경찰 보안수사대 대원들, 국가정보원 요원과 당시 시국사건 심리를 맡은 법관, 법무부장관 등을 지낸 인물들에게 반헌법행위자라는 낙인을 찍겠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활동한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을 ‘반민주인사’로 폄훼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경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이들은 헌법을 파괴한 죄인이자 역적으로 단죄를 받고, 북한의 지시에 따라 대한민국의 체제전복과 사회혼란을 유도한 이들은 불의에 맞서 헌법을 지킨 영웅으로 칭송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홍구 교수는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이날 토론회에서,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은 진보가 보수를 욕보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보나 보수의 이념에 상관없이 대한민국에서 바로 세워야 할 헌법적 원칙에 관한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헌법파괴자들 뿐만 아니라, 헌법적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좌절하거나 피해를 입은 이들도 함께 기록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홍구 교수의 위 발언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친북적 인사들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전교조의 반국가적 성향과 통진당의 위헌성을 꿰뚫어 본 고영주 전 서울남부지검장은 역적이고 죄인이겠으나, 보수적 시각에서 본다면, 그는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혼란을 부추기려는 반국가세력에 맞서 국가의 안보를 지킨 의인이다.

    한홍구 교수의 주장대로 평가한다면, 고영주 전 감사장은 헌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피해를 입은(노무현 정부 당시 인사 불이익) 헌법 수호자로 이름이 올라가야 한다.

    내란선동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 ▲ 이정희 구 통합진보당 대표와 이석기 전 의원. ⓒ 사진 연합뉴스
    ▲ 이정희 구 통합진보당 대표와 이석기 전 의원. ⓒ 사진 연합뉴스

    ‘민중’과 ‘진보’라는 말에 매몰된 좌파 인사들은 국정원이 사건을 조작했다면서 이석기 전 의원의 무죄석방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신분으로 내란을 기도한 이석기 전 의원이야말로 헌법을 파괴한 반헌법행위자로 기록돼야 마땅하다.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해산결정으로 간판을 내린 옛 통진당 주요 구성원들,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출신으로 종북콘서트를 주도한 황선씨 등도 반헌법주의자 열전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상식에 맞다.

  • ▲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한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공개석상에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수치스런 나라“라는 망언을 쏟아낸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국민의 혈세 1억 달러를 국정원을 통해 북한에 헌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헌법행위자 열전‘ 앞머리에 이름을 올려야 할 헌법파괴자들이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죄과는 대단히 중하다.

    그는 북한 김정일과의 대화 도중, 국가 안보의 최전선인 서해 NLL 포기를 거론한 대한민국의 죄인이다. 주적인 북한 정권의 수괴를 만난 자리에서 서해 NLL 포기를 언급한 것만큼 심각한 이적행위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사건의 배후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헌법을 유린한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준비위원회는 가장 먼저,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헌법 파괴행위를 정리·수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들의 반헌법행위 당시 핵심 측근으로 있었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난 박지원·문재인 의원과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등도 한홍구 교수의 기준에 따른다면 반헌법주의자 선정을 피할 수 없다.

  •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참여정부 대통령 비서실장). ⓒ 사진 연합뉴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참여정부 대통령 비서실장). ⓒ 사진 연합뉴스
     
  • ▲ 박원순 서울시장. ⓒ 뉴데일리DB
    ▲ 박원순 서울시장. ⓒ 뉴데일리DB

    서울 광화문광장 한 가운데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건 표현의 자유라고 했던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이름을 올릴 후보군 중 한명이다.

    토론회에서 한홍구 교수가 한 말이 진심이라면, ‘진보나 보수의 이념에 상관없이 대한민국에서 바로 세워야 할 헌법적 원칙에 관한 문제’ 때문에 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라면, 먼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이정희·이석기 전 의원(옛 통진당), 박지원·문재인 의원(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등의 헌법파괴행위부터 조사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지난달 기자회견이나 이날 토론회에서, 한홍구 교수 등 좌파진영이 밝힌 선정기준은 철저하게 우파 원로와 지식인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제외한 과거 정권 주요 인사들만을 예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반헌법행위자에 포함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토론을 통해 결정하겠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어서 오히려 포함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한 한홍구 교수의 답변은, 반헌법행위자 열전이 보수우파 인물들을 욕보이는 주요 아이템으로 기획됐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좌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모여 반헌법행위자 열전을 만들겠다는 이번 사업은, 좌파의 입장에서 바라본 과거사 청산일 뿐이다.

    ‘헌법적 가치’를 자기 멋대로 해석해, 보수적 가치를 ‘파쇼 혹은 수고꼴통’으로 매도하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한홍구 교수의 발제 내용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사업은 좌파 지식인들의 요람이라 불리는 성공회대(민주자료관)과 좌파 학자와 시민단체 인사들이 성지처럼 여기는 평화박물관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앞서 성공회대 민주자료관과 평화박물관은 지난달 16일,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밝힌 편찬 제안자에는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장을 맡고 있는 ▲한홍구 교수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 ▲고광헌 한국인권재단 이사장(전 한겨레신문 사장) ▲김두식 경북대 법학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김명인 인하대 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 ▲김희수 변호사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외래교수)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 연구소장(참여정부 청와대 경제비서관) ▲주진우 시사IN 기자 ▲최강욱 변호사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등 좌파를 대표하는 학계·언론계·노동계·시민사회 주요 인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반헌법행위자 열전 준비위원회’는 내년 안으로, 1차 선정 명단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