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에 희망 버린 호남 민심 대변… 신당 창당 위한 선도 탈당 결행
  • ▲ 2007년 7월 16일, 통합민주당 김효석·이낙연·신중식·채일병 의원과 박광태 광주광역시장, 박준영 전남도지사 등이 열우당과의 대통합을 호소하며 민주당을 탈당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 2007년 7월 16일, 통합민주당 김효석·이낙연·신중식·채일병 의원과 박광태 광주광역시장, 박준영 전남도지사 등이 열우당과의 대통합을 호소하며 민주당을 탈당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7월 16일, 통합민주당 김효석·이낙연·신중식·채일병 의원 등과 함께 박준영 전남지사가 굳은 표정으로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다.

    이들은 "더 이상 통합민주당 지도부의 결단을 기다릴 수 없어 제3지대 창당준비위에 참여하기로 했다"며 "늦어도 24일에는 창당준비위가 구성돼야 하는 만큼 당적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탈당을 선언했다.

    통합민주당 박상천 공동대표를 향해서는 '대통합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박상천 대표는 "제3지대 신당 추진은 '도로 열우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이라며 "열우당과 합당 형식을 통해 통째로 합치는 일은 하지 않아야 대통합에 함께 할 수 있다"고 선을 긋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고,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친노는 폐족이 됐다"고 한탄할 정도로 열우당이 궤멸 위기에 몰려 있던 2007년 중엽, 박준영 지사의 통합민주당 탈당과 대통합 호소는 친노 세력에게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선거마다 연전연패하며 멸망의 운명만 앞두고 있던 열우당 친노 세력들은 '대통합'을 빌미로 제3지대 신당으로 스며들어가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날짜마저 8년 전 그날과 같은 2015년 7월 16일, 박준영 전 지사는 다시 국회 기자회견장 마이크 앞에 섰다.

    박준영 전 지사는 "8년 전 오늘을 생각하면, 민주당에서 8인회가 민주개혁세력이 하나가 돼야 한다며 열우당과 통합을 선언했던 그런 날"이라며 "불행하게도 내가 오늘은 새정치연합을 떠나는 그런 발표를 하게 됐다"고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8년 사이에 바퀴벌레처럼 다시 증식하며 세력을 회복한 친노 세력은 당권을 거머쥐었다. 이들의 당무 농단에 못 이겨 당을 떠나야 하는 박준영 전 지사로서는 물에 빠진 친노를 구해놨더니 보따리마저 빼앗긴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배신의 정치'를 한 친노 세력을 향해 일침을 날리며 이날 탈당한 박준영 전 지사는 김대중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과 대변인, 국정홍보처장을 역임하고 민선 전남지사를 3선한 '정통 DJ맨'이다.

    1946년 전남 영암군에서 태어나 목포중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호남 민심을 잘 파악하고 있는 정치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중앙일보 사회부와 국제부를 거친 언론인 출신인 박준영 전 지사는 뉴욕 특파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만나 연을 맺었다. 당시 DJ는 92년 대선에서 패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외유를 하고 있었다.

    이후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DJ가 97년 대선에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와 연립해 정권을 교체하자, 박준영 전 지사는 언론계를 떠나 정계에 입문했다.

  • ▲ 2015년 7월 16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가 친노의 적폐에 일침을 가하며 새정치연합을 탈당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2015년 7월 16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가 친노의 적폐에 일침을 가하며 새정치연합을 탈당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대중정부에서 청와대와 내각을 두루 거친 박준영 전 지사는 노무현정권에서 친노 세력에 의한 분당(分黨) 음모가 노골화되자 이를 저지하는데 앞장섰다.

    박준영 전 지사는 "민주당이 열우당으로 분당될 때 쫓아다니면서 말렸다"며 "김대중 대통령은 (열우당 분당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노패권주의 세력이 분당을 강행하자 박준영 전 지사는 2004년 6·5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직접 전남지사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민주당은 탄핵 광풍으로 4·15 총선에서 참패, 의석 수가 불과 9석에 불과할 정도로 당세가 급격히 위축돼 있던 상황이었다.

    위기의 민주당을 구원할 소방수로 전남지사 보궐선거에 나선 박준영 전 지사는 57.6%를 득표해, 열우당 민화식 후보(35.0%)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박준영 전 지사의 승리는 민주당 정통 세력 부활의 신호탄이었으며, 동시에 탄핵 광풍으로 국민의 눈을 가린 친노 세력 몰락의 첫걸음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준영 전 지사가 당선된 6·5 재보궐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4곳 중 4곳 전패, 전남 지역 재보선 4곳 중 4곳 전패라는 신기원을 쓴 열우당은 이후 열리는 선거마다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국민의 외면을 받았다.

    반면 박준영 전 지사는 2006년 5·31 지방선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낙승하며 전남지사 3선에 안착했다. 그러던 중인 2007년, 노무현정권 말기를 맞아 친노 세력이 궤멸 직전에 몰리자 박준영 전 지사는 '8인회'의 일원으로 대통합을 호소해 분당 원흉이던 친노를 살렸다.

    대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친노를 용서했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의 정치'였다. 2012년 갖은 수단을 통해 당권을 장악하고 '한명숙 지도부'를 세운 친노는 비노·호남 정치인들을 조직적으로 공천 학살했다. '선거 패배 DNA'를 갖고 있는 친노의 전횡 때문에 민주통합당은 이길 수 있었던 5·30 총선에서 또 패했고, 그 뒤를 이어 들어선 것은 친노 문재인 의원을 대권 후보로 옹립하기 위한 '이해찬 지도부'였다.

    이에 박준영 전 지사는 "(친노는) 지난 2007년 대선에서 530만 표라는 큰 차이로 대패하며 심판받았다"며 "참여정부 인사가 대선 후보로 나가서는 절대 새누리당을 못 이긴다"고 내다봤다. 그의 예언대로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했다.

    대선을 두 번 패배한 친노 세력은 책임론을 피해 잠시 물러나 있다가 올해 2·8 전당대회를 계기로 다시 당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선거 패배 DNA'에 충실하게 4·29 재보궐선거 4전 4패로 첫걸음을 내딛었다. 친노 지도부 하에서는 내년 총선, 후년 대선의 전망도 어둡기 때문에, 뜻있는 인사들은 신당 창당과 야권발 정계 개편을 논의하는 중이다. 이날 박준영 전 지사의 탈당은 이를 위한 선도 탈당이라는 평이 중론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준영 전 지사의 정치 역정은 호남인과 친노 사이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며 "호남은 선거마다 연전연패한 친노를 항상 밀어주고 살려줬지만, 친노는 번번히 호남의 등에 배신의 비수를 꽂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준영 전 지사의 탈당은 더 이상 친노에 농락당하지 않겠다는 호남 민심 그 자체를 대변한 것"이라며 "단순히 한 자연인의 탈당이 아니라, 호남이 친노를 버렸다는 정치적 상징으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