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11시 수유리 묘전에서 선생의 뜻 기려
  • ▲ 이승만 대통령(우측)과 신익희 선생.
    ▲ 이승만 대통령(우측)과 신익희 선생.

    국가보훈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직을 역임하고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해공 신익희 선생 58주기 추모식'이 오는 5일 오전 11시에 수유리 묘전에서 열린다고 2일 밝혔다.

    이날 추모식은 해공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박관용)주관으로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박유철 광복회 회장, 목요상 대한민국헌정회장, 유지수 국민대총장, 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사업회장의 개회사와 신상식 전 국회의원의 약력보고, 그리고 서울지방보훈청장․광복회장․대한민국헌정회장․국민대 총장의 추모사에 이어 헌화․분향의 순으로 진행된다.

    ◇신익희 선생 공적

    신익희선생(1892. 7. 11~1956. 5. 5)은 경기 광주(廣州)에서 출생해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漢城外國語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의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후 1913년 귀국하여 고향에 동명강습소(東明講習所)를 열었으며,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교수가 됐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해외 연락업무를 맡았으며, 그 해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조직을 위한 비밀회의를 갖고 임시의정원 회의를 열어 국호, 관제, 정부 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 선포함으로써 역사적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다.

    임시정부의 수립과 동시에 법무차장, 내무․외무차장, 국무원 비서장, 법무총장, 외무총장, 내무․외무․문교부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임시정부를 통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 초대학장을 겸하였고,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과 1948년 제헌국회의원 부의장을 역임하였다.또한 1949년 민주국민당을 결성해 위원장에 취임하였고,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에 피선됐다.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民主黨)으로 확대․발전시켜 대표 최고위원이 됐고,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유세 중 서거했다.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