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인권유린은 나치범죄 이상이다

    脫北여성 강제낙태·영아살해 증언들...

  • 김정은 정권을 끝내는 데 나선 이유가 이렇다.


金成昱 /한국자유연합 대표, 리버티헤럴드 대표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지난 17일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 대해
 국제사회 차원의 빠른 대응을 촉구했다.
필레이 대표는 성명을 통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정도의
심각하고 광범위한 북한의 인권 유린 사실이 드러난 만큼
더이상 행동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생존자들의 증언을 공개하며 북한의 인권 침해가 2차대전 나치범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인권유린은 나치범죄 이상이다. 북한은 전쟁이 아닌 평화 시기, 자국민을 이렇게 오랜기간, 집요하게 살육했다. 이런사악한 체제의 종식은 민족사의 필연인 것이다.
이 기사에 붙은 댓글을 첨부한다. 
  
  "대한민국이 이 참혹한 비극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지 않으면, 대한민국 자신이 망하리라."
  
  ■ 2011년 7월 북한인권정보센터 발간 ‘북한 구금시설 운영체계와 인권실태’
   
  ▲ “강제낙태 당한 뒤 3달 동안 계속 부엌일을 했습니다(2006년 신의주 집결소 여성A)”
  
  ▲ “강제낙태를 시키지만 따로 치료 같은 것은 없습니다(2009년 신의주 집결소 여성B)”
  
  ▲ “보안원이 중국아이라고 아이를 거꾸로 침대에 엎어놔 두 시간 만에 아이가 죽었습니다(2004년 만포 집결소 여성C)”
  
  ▲ “나는 딸이었는데 갸(다른 여성)는 아들이었습니다. 그 애도 엎어놔서 죽었습니다(2004년 만포 집결소 여성D)”
  
  ▲ “하루에 임신자들을 다 모아서 몇 개월 됐는지 조사를 하고는 애들은 그냥 죽였습니다(2004년 만포집결소 여성E)”
  
  ▲ “마취도 안 하고 무거운 추를 자궁에 달아서 자궁이 늘어지면 갈고리 같은 걸로 긁어냅니다(2003년 김책시 단련대 여성 F)”
  
  ▲ “한 호실에 6명이 있었는데 5명은 강제 낙태되고 한 명은 남편이 북한사람이이 살아남았습니다(2005년 신의주시 단련대 여성 G)”
  
  ■ 美國 데이빗 호크의 ‘감춰진 수용소(Hidden Gulag)’ 증언들
  
  ▲“박스에 아기 시체가 가득 차면 밖으로 버려졌다” : 남신의주 도집결소. 증언여성 A(66) A는 7명의 아이를 받아냈지만 7명 모두 죽음을 당했다. 첫 번째 아기는 중국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28세의 임(任)이라는 여성의 아이였다. 그 아기는 산모가 중국에서 임신을 해 양양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건강하고 몸집이 컸다. A는 출산 당시 아이의 머리를 잡아 빼주었고, 탯줄을 끊어 주었다. A가 아기를 받아내고 모포로 감싸주었을 때, 경비대원은 아기의 한쪽 다리를 잡아채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집어 던졌다. 박스에 죽은 아기 시체들이 가득 차면 밖으로 옮겨져 묻히게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산모가 보는 앞에서 수건으로 질식시켰다” : 남신의주 도집결소(2000년 5월). 증언여성 B(25) 구금자 중 10명의 임산부가 있었고, 이 중 3명은 임신된 지 8개월 이상 된 여성들이었다. B는 산모를 돕는 일을 맡았다. 산모들은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아기를 출산했다. 그러나 잠시 후 담당자들은 산모와 최(崔)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를 젖은 수건으로 질식시켜 죽였다. 산모는 실신하고 B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됐다. 다른 아기들도 산모 앞에서 죽음을 당했다.
  
  ▲“아기를 박스 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 남신의주 도집결소. 증언여성 A(66) 金이라는 여성의 출산을 도왔다. 산모는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A가 아기를 쓰다듬어 줄 때, 아기는 그녀의 손가락을 빨기도 했다. 경비대원이 와서 A에게 소리 지르며 아기를 박스 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A가 머뭇거리자 경비대원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고 이로 인해 A의 이가 부러졌다. 
  
  ▲“머리를 집게로 눌러 아기들이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 남신의주 도집결소. 증언여성 A(66) 이틀 후 강제 분만된 2명의 아기는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아기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록 얼굴은 노래지고 입술을 파래졌지만 아기들은 여전히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경비대원들이 와서 아직 두 명의 아기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 머리의 부드러운 부분을 집게로 눌러 아기들이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보고 A는 경비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비대원들에게 심하게 발길질을 당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비닐에 싸인 채 창고에 죽을 때까지 방치됐다” : 청진시 농포 집결소(1999). 증언여성 C(30대 중반) 집결소 구금자의 80%가량은 여성이었고, 그 중 12명가량이 임산부였다. 경비들이 임산부들의 경우 ‘배신자의 자식’을 뱃속에 가졌다는 이유로 음식이나 물을 잘 주지 않았다. 하열을 일으키기 위해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C는 몇 명의 임산부들이 끌려 나가, 낙태를 위한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다시 농포 집결소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 후 출산을 위한 준비된 방에서 4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들은 바구니에 담겨 비닐에 싸인 채 근처의 창고에 죽을 때까지 방치됐다.
  
  ▲“젖은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켰다” : 청진시 농포 집결소(2000). 증언여성 D D는 8개월 된 태아 3명이 낙태되고 7명의 아이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다.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을 바닥에 뒤집어 눕혀놓았다. 어떤 아기는 즉시 사망했고, 어떤 아기는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이틀이 지난 후에도 생존해 있는 아기들은 경비대원들이 데려다가 젖은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켰다. 다른 방의 문에 서 있던 女수감자들은 방바닥에 눕혀져 있는 아기들을 볼 수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이 중국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산모들이 아기들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들어야 된다고 말하곤 했다
  
  ▲“강제낙태 후 다음날 강제노동에 투입했다” : 온성 노동단련대(2001년). 증언여성 D(38) 10명의 임산부가 강제낙태를 당한 후 바로 다음날 강제노동에 투입되는 것을 목격했다. 
   
  ■ 북한민주화운동본부 ‘2010 탈북자처벌 실태조사’ 
  
  ▲《OO구류장에서 보위원이 배 나온 여자를 불러냈어요. 제 옆에서 배를 차기 시작하는데, 가슴이 답답해지고 정말 저도 같이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요. 결국 그 여자는 거품 물고 쓰러졌고 일어나지 못하자 밤 10시경 군의가 와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 이후로 여자를 보지 못했어요(탈북자 신 모씨 증언)》 
  
  ▲《중국에서 임신해 잡혀온 여자들도 있었는데 벽에 그 4명을 세워놓고 안전원들이 배를 마구 발로 찼습니다. 한 번에 애가 떨어지면 그나마 낫지요. 2명은 낙태되었는데 나머지 2명은 그러지 못해 병원에 데려갔습니다...그렇게 강제 낙태시키고도 그 다음날 바로 노동을 시킵니다.(탈북자 이 모씨 증언)》 
   
  ■ 2010년 7월 경찰청 ‘살맛나는 대한민국입니다’에 나오는 탈북자 이영옥氏의 증언 
  
  ▲《하루 밤중으로 불려나간 그 언니가 서너 시간 만에 들어왔는데 자꾸 울기만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 인민병원으로 가서 중절 주사를 배에다 맞고 왔다는 것이다...24시간 후에 그 아기는 죽어서 나왔다. 죽은 아기를 보는 것 같아 그 언니는 울며 흐느낀다...그 아기가 죽기까지 얼만 엄마마음이 아팠을까. 그 언니는 죽은 아이를 보며 한 없이한 없이 슬프게 울었고 함께 있던 그 감방 안의 여인네들이 다 울었다. 벌레보다 모한 우리 여성들의 운명,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바퀴벌레보다 더 못하게 취급하는 우리 북한여성들, 그 마음 아픈 상처, 흔적들이 말없이 흘러내리는 그 눈물에 여려 있다...알몸의 아기를 내보낼 수 없었던 그 언니는 시커멓게 때가 묻어있는 런닝을 벗어서 아기를 싸주었다. 그리고 고무대야에 담으려는 순간 급기야 참았던 설움과 분노를 쏟으며 아우성치며 울었다....하루 밤만 지나고 날이 밝아오면 그때서야 마룻바닥 짬새기로 숨어들어가는 빈대들은 그 언니의 자궁과 출산 후에 묻은 핏 자리를 마구 물어뜯어놓는다. 그러면 밤알만한 시뻘건 피부가 딱딱하니 부어올라 한없이 긁는다....우리가 당한 사실 하나하나가 북한의 여성들과 지금도 감금되어 이유 없이 죄 없이 죽어가는 그들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부어야 하 때라고 생각한다. 배고픔의 단 한 가지 이유로 강을 건넜다는 죄로 고문하고 때리며 여성들과 아동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어야 한다.》 
  
  ■ 2010년 7월 경찰청 발간 ‘살맛나는 대한민국입니다’ 탈북자
     황숙희氏의 2008년 여름 구류장 경험 
   
  ▲《구류장 안에선 죄인이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죽어도 시체조차 찾아가지 못하게 하며 구류장 창고 내에서 그대로 썩어서 여름이면 구더기가 나고 악취가 진동한다.(···)임산부까지도 발가벗기고 ‘야 바가지, 바가지’ 하며 놀리고 알몸의 임산배 배를 걷어찬다. ‘네년들은 조국을 버리고 중국에 갔기에 썩어야 한다’며 ‘맛을 단단히 보라’네. ‘다리를 벌리고 서라’고 호령질한다.(···)
  
  그러더니 동생 같은 새파란 총각들이 여자들 자궁 안에 손을 넣어 휘저어 놓았다. 너무 아파 고통스럽지만 소리 지를수록 ‘어디 죽어봐라’ 하며 더 아프게 쑤셔 넣는다. 여자로서 제일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이들의 행위 앞에서 말없이 반항 없이 당하고 서 있어야 했다. 모욕감, 수치감으로 창피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던 심정.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들이 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서 있는 여인들의 눈가에 눈물이 소리 없이 흐리고 가슴을 울먹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사방에서 여성들이 아프다고 악 악 소리 내고 아이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 지르는 여자들에게 또다시 몽둥이로 패고 발로 차며 뺨 때기를 사정없이 갈겨댔다. 
  
  ‘더러운 년들, 치사한 년들’...저질적인 말을 하며 자궁검사를 마치니 이젠 알몸상태로 토끼뜀을 시킨다. 여자들의 드러나 있는 가슴을 구경하며 뜀뛰기를 시키고 저희들끼리 히히덕 거리며 온갖 벌을 주더니 ‘어머니 조국의 고마움을 잃어버리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조국을 버리고 중국 갔었음을...가보니 아버지 장군님을 모신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제일이었음을 깨우쳤다’는 거짓말을 쓸 수밖에...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린다. 맞은 아픔보다도 사람으로 태어나 인간 아닌 대접을 받으며 이렇게 죽을 정도의 뭇매를 맞으며 사는 내 모습 꼴이 너무 가련해 서러움으로 인해 맘이 아팠다.》 
   
  ■ 통일연구원 출간 북한인권백서(2009년·2008년·2007년 판) 탈북여성 증언 
   
  ▲“영아를 조산시킨 뒤 죽이라고 명령하자 정신착란을 일으킨 여성” ▲“강제노역 중 지도원의 구타로 유산한 여성” ▲“강제로 약물을 주입해 6개월 된 태아를 죽인 경우” ▲“아이를 출산한 뒤 비닐로 덮어서 죽인 경우” ▲“태어난 영아에 독극물을 주사해 죽인 경우” ▲“임신여성을 운동장을 돌게 해 배를 발로 차서 낙태시킨 경우” 
  
  ■ 대한변호사협회 발간 ‘북한인권백서(2007)’ 탈북여성 증언
  
  ▲“아이를 비닐에 싸서 살해한 뒤 화장실에 버리게 하였다” ▲“온성 OOO에서 탈북여성 수감자의 출산한 아이를 비닐에 싸서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 ▲“청진 OOO에서 ‘중국 놈의 아이를 뱄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자마자 비닐에 싸서 질식사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 북한의 굶주리는 아이들의 사진과 영상을 들고 다니며 인도적 대북지원을 호소하는 수많은 인권운동가(?)들을 보아왔다. 그들은 청중의 감성을 잔뜩 자극시킨 뒤 돈 통을 돌려 북한에 대한 지원을 호소한다. 모아진 돈은 이러 저러 단체들을 거쳐 결국 김정은 정권에 보내진다. 이 같은 지원이 주민(住民)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직 정권(政權)의 무기개발과 사치품 수입에 사용됨에도 그들은 남한에 남아도는 쌀과 물자라도 보내라며 더욱 왕왕거린다. 그러나 정작 이 잘난 인권운동가들이 개, 돼지처럼 팔리는 탈북여성을 구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강제송환·강제낙태·영아살해 등 민족사에 일찍이 없었던 악마적 만행을 비판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오직 가난하고 굶주리는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조건 없는 “지원(支援)”의 궤변만 늘어놓는다. 
  
  ‘인도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붙인 독재(獨裁)와 살육(殺戮)의 변호사들은 지금도 목사, 교수, 박사, 온갖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전국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멋진 기도문을 외우며 외식(外飾)하는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21세기 한국에도 넘쳐나는 것이다. 
  
  한 탈북여성이 쓴 글을 통해 이들에 대한 충고를 대신한다. 
  
  《세상에서 우리 탈북자들보다 더한 고통과 불행을 겪는 사람들은 없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하나의 거대한 감옥에서 굶어죽고 맞아죽고 얼어 죽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물건처럼 팔려 다니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다....
우리 모두는 단결하여 힘을 모아 독재정권을 하루빨리 몰아내고
북한주민들에게 희망과 자유를 안겨주어야 한다.
역사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며 또 심판할 것이다.
진정한 애국자는 나라의 통일과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