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대전 카이스트서 초청 강연..5백 여명 참석"과학인들, 소통하면 재능 열배, 백배 빛나"카이스트 자살 사건에 "인문학적 소양 더 강조해야"
  • 카이스트 교수였던 안철수 대선후보가 10일, 1년 반만에 카이스트 무대에 올랐다.

    연단에 오른 그는 마이크를 잡고서도 조용히 학생들을 바라봤다. 미소를 지은 채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너무 좋아서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정말 그리운 카이스트 학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날 오후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초청 강연 '과학기술과의 소통으로 다음 세대를 열어갑니다'엔 5백 여명의 학생들이 참석, 안 후보의 인기를 실감케했다.

    감회에 젖은 듯 안 후보는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하기 전, 카이스트가 있는 대전에서의 '에피소드'로 운을 뗏다.

    "대전시에서 체육대회를 했는데 성화봉송자로 뛰어 달라고 했다. 저는 뛰다가 넘어져서 불을 꺼뜨릴까봐 도망친 적이 있다."

  • ▲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10일 오전 대전 유성구 대학로 카이스트 창의학습관 터만홀에서 '과학기술과의 소통으로 다음세대를 열어갑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10일 오전 대전 유성구 대학로 카이스트 창의학습관 터만홀에서 '과학기술과의 소통으로 다음세대를 열어갑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과학기술과의 소통으로 다음 세대를 열어갑니다'

    "과학기술과 소통이라는 것이 문과, 이과처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카이스트 학생이 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과학인들이 소통에 재능이 있으면 그 재능은 열배, 백배 빛난다. 또 이공계인은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소통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10일, 안철수 후보의 카이스트 강연회 中

    #1. 전문가와 대중가의 소통 = 의사이자 프로그래머였던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경험담을 설명하며 "전문가가 자신의 분야를 대중에게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의대를 다닐 때 한 의사가 TV에서 의학 상식을 쉽게 설명해 스타가 된 사례에 빗대어 말했다. "전문가들이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분야의 일을 대중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의무도 있다"고 했다. 그때 경험은 IT 분야로 넘어온 뒤에도 이어졌다.

    "IT 분야 사람들은 다 상식이라고 착각하는데 대중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대중에게 IT가 가진 개념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학생들에 "일반 대중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도 전문가의 역할이고 그것이 소통이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2. 전문가와 전문가의 소통 = 안 후보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소통을 '융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각각의 분야가 학문적으로 많은 지식을 축적했지만, 이를 가지고서는 복잡한 자연현상을 해결하지 못한다며 '융합'의 필요성을 3가지로 설명했다.

    "마치 한 눈만 보고 사물을 바라보면, 2차원으로 보이고 전체가 안 보인다. 두 눈 뜨고 보면 3차원으로 보인다."

    "손만 대면 딸 수 있는 사과를 다 따버리고 나니 남은 것은 사다리를 타고 가야 하는 어려운 영역만 남았다. 학문의 영역이 있다면 학문과 학문이 맞닿는 가장자리만 비어있는 것이다."

    "바람빠진 풍선에 펜으로 그물 무늬를 긋고 불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선인데 선 사이가 늘어나서 중간에 빈 영역이 생긴다. 예전에 인간이 가진 학문적 깊이가 작아서 구분해도 눈에 안 띄었지만 점차 커져 구분 안 되는 영역이 생겼다."

    이어 안 후보는 빌 게이츠에게 좋은 융합 결과가 나오기 위한 비법을 전해들었다며 이를 소개했다.

    "빌게이츠는 여러 분야 사람들을 모아 놓은 다음 하나의 책을 선정, 모두 읽고 오게 한다고 했다. 같은 책을 읽게 하면 용어가 같아지고 흐름이 같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학, 연구소, 회사와의 소통도 많이 필요하다"며 버클리 헨리 교수의 '오픈 이노베이션(내·외부 아이디어를 모두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기술 혁신 방안)'을 설명했다.

    "아이디어부터 결과물까지가 깔대기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 그 아이디어 중 성공 가능한 것을 골라서 해 보면 마지막에 결과물이 나온다. 그것을 클로즈드 이노베이션이라고 한다.

    반면에 오픈 이노베이션은 구멍 뚫린 깔때기다. 외부에서 혁신적 아이디어가 들락날락하는 구조다. 그런 식으로 거의 끝까지 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캠프 정책네트워크인 '내일'도 이와 같은 '개방형 네트워크'라고 소개했다. 

    "내일에서는 철학, 방향성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공약들은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을 받아들여 흡수하는 것이다.

    이 방향성에 맞는지, 실현 가능한지, 다른 이해 관계들과는 충돌이 날 수 밖에 없는데 우선 순위를 정하고 충돌 나는 것에 대해 정하는 것이 내일의 역할이다."

    #3. 조직 내 소통 = 안 후보는 과거 미국에서 '벤처 캐피탈'을 둘러본 경험을 설명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사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전문가가 직접 자신의 분야가 어떻게 흘러갈지 비전을 갖고 투자해 결정이 빠르고, 성공확률도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에 "한국은 돈을 가진 사람이 전문가를 고용하면, 그 전문가가 리포트를 쓴다. 돈을 가진 사람은 전문성이 없으니 그 한 장을 읽고 감으로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 가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사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믿어온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계가 사라질 수 있다. 정부가 미리 의사 결정을 내리고 전체적으로 조율을 해야 한다."

    #4. 안 후보는 학생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벤처 창업에 있어 "회사의 성과는 '기술력 X 마케팅 능력'"이라며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사업을 할 때 "올인하면 안 된다. 점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단계를 나누고, 한 단계를 성공했을 때 그 다음 단계를 밟아나가라"고 조언했다.

    ■ 성황리에 마쳤지만 아쉬움도 커

    이날 강연은 학생들의 환호에서 시작, 환호로 끝났다. 질의응답도 기자들을 제외하고 온전히 학생들만이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입구에 들어선 학생들마다 "기자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툴툴댔다. 기자석과 지정석이 앞줄부터 전체 좌석의 1/3 가량을 차지하는 점을 지적하며 볼멘소리를 낸 것이다.

    "우리 학생들을 위한 강의인지, 정치하러 온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 카이스트 학생

    아울러 안 후보는 강연 뒤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재적했을 때 벌어졌던 '카이스트 자살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카이스트가 스트레스가 심한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무한 경쟁까지 시키면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학교를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학생의 죄가 아니다. 또 경쟁에서 떨어진다고 탈락시키기 보단 다른 전공을 택할 수 있도록 잘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앞서 지난 2일 KAIST 학생전용 게시판에 ‘불의에 쌩까기, 그리고 안철수’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 안철수 후보의 처신 논쟁이 불거졌다.

    "안철수 씨는 자기 책에서 경쟁위주 교육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하면서 정확히 그 방향으로 KAIST가 돌진할 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안 후보는 지난 3일 "몸 담고 있는 조직에 대해서 발전을 건의하는 건 좋은데, 떠나기로 한 마당에 떠날 조직에 대해 비판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