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량한 단일화 구걸!
    '2013 체제론'으론 2013집권 못한다

     

    강규형 (명지대기록대학원 교수, 역사학)



  • ▲ 강규형 명지대 교수ⓒ
    ▲ 강규형 명지대 교수ⓒ

    지난 4월 총선에서 야권이 추구한 것은 야권 연대의 결성과 그것을 통한 '2013년 체제'로의 전환이었다. 이 연대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뿐 아니라 무단 방북한 부의장 노수희를 통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운운하며 조화를 바친 범민련 남측본부 같은 골수 종북(從北) 등을 아우르는 '잡탕 연대'였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 폐기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들 뒤의 자문 기구는 백낙청 교수가 주도하는 소위 '원로원탁회의'였고 여기서 '2013년 체제론'이 개진됐다. 그 안에는 복지·환경 등의 내용도 있지만 핵심은 한미동맹 해체, 북한 인권문제 제기 반대, 북한 핵문제의 통일 후 해결 등을 요구하며 세계 체제와 등을 돌린 폐쇄적이고 민중민주주의적인 '남북국가연합' 체제로 전환하자는 급진적인 주장이다.

    이것은 상상력의 부족을 보여준 놀랍도록 구태의연한 발상이었다. "야당의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들은 색깔 공세를 각오하고 천안함(사건이 조작이라는) 문제를 들고 나와야 한다"는 백 교수의 주장도 맥을 같이한다.

    총선 압승이 눈앞에 보였을 때 야권 연대는 날 선 송곳니를 드러내며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정권 탈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안이하고 원칙 없는 낡은 틀 안에 안주했기에 그들은 패배했고, 그 결과 야권 연대2013년 체제론이 흔들리고 있다.

    2013년 체제론은 우파가 향후 계속 집권할 것이라는 이전의 '2008년 체제론'만큼이나 허망하다. 민주당은 자신의 후보를 대선에 내보낼 수 있을지조차 모른 채 이미 붕괴된 진보당과의 연대 대신에 안철수 교수와 새로운 연대를 애원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총선 후 민주당의 대표대행이었던 문성근씨는 범좌파 통합 추진 단체인 '백만민란(民亂)'의 설립자이기도 했다. 지난 총선 당시 부산광역시 북강서을 지역구 TV 토론회에서 자유선진당 조영환 후보가 "'백만민란'의 주제가를 지은 윤민석은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이라는 노래도 만들었다"고 하자 문씨는 "그랬어요?"라고 반문하며 "그런 사실은 몰랐다. 확인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에 대한 답변은 없다. 윤씨는 민주당가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에서 집권을 바라는가?

    요즘 민주당의 로고를 바꾸느니 마느니 하는데 당가부터 먼저 바꿔야 하지 않을까. 또한 정강·정책의 서문 첫 문장에 '촛불 민심'을 들먹이는 정당이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민주당에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바른말을 하며 새로운 '미스터 쓴소리'로 부각된 황주홍 의원이 충언(忠言)하듯이 내적 쇄신과 방향 전환을 통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진보당은 어떤가.

    고도 산업화를 통해 많은 도시 노동자를 배출한 한국은 좌파 정당을 하기 쉬운 나라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건전한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했으면 30%대 지지는 쉽게 확보했을 것이다. 더 잘했으면 독일 사민당과 같은 수권 정당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습관적인 종북·친북(親北) 성향 때문에 민노당과 그 후신인 진보당은 무너졌다.

    비교적 건전한 좌파 인사들조차 눈앞의 이익인 총선·대선에 눈이 멀어 종북주의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쉬운 길을 가려 했고, 그 결과 진보 정당 정립의 길은 더 멀어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강하고 건전한 진보 정당을 만들고 싶었으면, 훨씬 더 긴 호흡으로 갔어야 했다.

    한국의 좌파 정당은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고 개방적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친미(親美) 친서방 정책을 포용한 서독 사민당의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綱領)과 같은 수준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사민당은 이 혁신적인 정책 전환 덕분에 결국 집권에 성공했다.

    백낙청 교수는 '2013년 체제 만들기' 출간 간담회에서 "만약 총선이 여당 승리로 끝난다면 이 책을 절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다. 총선에 패하고도 아직 판매 중인 이 책뿐만 아니라 그 논리 자체를 절판해야 한다.

    야권은 2013년 체제론이라는 허무맹랑한 관념을 극복해야 2013년의 집권 또는 미래의 집권이 가능하다는 역설(逆說)에 처해 있다.

    야권의 연대 대상인 안철수 교수도 2013년 체제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밝혀야 한다.

    그의 책에 있는 '채찍만 써서 남북 갈등이 심화됐다'거나 '(천안함 폭침에서) 이견을 무시하는 정부 태도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은 2013년 체제론을 주장하는 자들이나 얘기할 만한 낡디낡은 화법이다.

    대통령직은 대중의 감동을 쉽게 (어떤 때는 값싸게) 이끌어낼 수 있는 '무릎팍도사''힐링캠프'가 아니다. 더 내공을 키워 더 균형 잡힌 사회관을 가지고 대권 경쟁에 임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일보, 2012.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