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도 없던 사람 발언 인용 보도, 이미 대법원 판결도 끝난 논란같은 관용어 두고 李 대통령과 김정은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는?
  • 임기 초반부터 논란을 빚어온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에 좌파 매체들이 들고 일어섰다.

    지난 2008년 7월 홋카이도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다.

    요미우리신문의 보도로 시작된 이 논란은 법정 소송까지 가는 홍역 끝에 ‘사실 무근’으로 결론지어졌지만, 최근 우리나라 좌파 매체들이 같은 문제에 대해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를 인용해 보도하면서 또다시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독도 문제를 계속 점화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이들 좌파 매체들이 동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논란이 시작된 2008년 7월, 요미우리 신문은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어로 표기하겠다’는 후쿠다 야스오 당시 일본 총리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곧바로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반박했고, 일본 정부도 이때는 외교 차원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요리우리 측도 기사를 삭제했다.

    하지만 다음 해 요미우리는 “이 대통령의 독도 관련 발언은 사실”이라며 또다시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일본의 '똑같은 문제 계속 제기하기'에 청와대는 더욱 강경한 반박과 함께 이번에는 요미우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법정 공방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은 지난해 1월 백모씨 등 1886명의 국민소송단이 요미우리신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하고 이 대통령이 “기다려달라”고 말한 사실은 없다고 판결했다.

  • ▲ <경향신문> 등 좌파매체가 인용 보도한 위키리크스 문서. 이들 매체는 이 문서를 통해 당시 강영훈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후쿠다 총리에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캡쳐화면
    ▲ <경향신문> 등 좌파매체가 인용 보도한 위키리크스 문서. 이들 매체는 이 문서를 통해 당시 강영훈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후쿠다 총리에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캡쳐화면

    올해 2월 이번에는 <경향신문>이 이 대통령의 독도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 매체는 지난 20일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밝힌 미 외교전문을 통해 당시 강영훈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후쿠다 총리에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이 인용한 발언 전문을 살펴보면 강 서기관은 당시 상황을 particularly after Lee directly appealed to PM Fukuda to ‘hold back’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hold back’의 해석 논란이다. 이를 연이어 보도한 <경향>, <한겨레>, <미디어오늘> 등 좌파 매체는 이 어구를 “기다려 달라”고 해석했다.

    관용적으로 “기다려 달라”는 말은 'hold on'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old back'의 경우는 자제, 억제를 하다는 의미가 깊다. 이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 교과서 표시에 대해 “자제하라”고 말한 셈이다.

    번역상 hold back의 경우 ‘기다려 달라’는 의미도 어느 정도 내포하는 것도 사실이어서 논란의 소지는 있다. 하지만 <한겨레>가 지난해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보도했던 사진 기사를 살펴보면 이번 보도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한겨레>는 김정일 사망 당시, 아들 김정은 사진과 함께 “New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closes his mouth tightly and tries to hold back his tears as he watches father Kim Jong-il’s body displayed at the Kumsusan Memorial Palace in Pyongyang”라고 보도했다.

    해석하자면 김정일 사망에 김정은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물을 자제하고 있다는 얘기다. 같은 hold back 을 두고 이 대통령의 발언은 ‘기다려 달라’, 김정은에게는 ‘자제 하다’로 해석한 셈이다.

  • ▲ 지난해 김정일 사망 당시 <한겨레> 영문판이 보도한 사진 기사. 이 기사에서 <한겨레>는 hold back을 자제하다로 사용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에 관련해서는 '기다려 달라'로 해석했다. ⓒ 캡쳐화면
    ▲ 지난해 김정일 사망 당시 <한겨레> 영문판이 보도한 사진 기사. 이 기사에서 <한겨레>는 hold back을 자제하다로 사용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에 관련해서는 '기다려 달라'로 해석했다. ⓒ 캡쳐화면

    더 큰 문제는 위키리크스 문서에 나온 강 서기관이 당시 한-일 정상회담의 현장에도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위키리크스에 거명된 서기관은 당시 정상회담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그런 말을 전해들을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 대사관 직원을 만나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했다. “더 이상 얘기할게 없다”며 억지 공세에 반감도 드러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법원 판결까지 났고 당시 현장에도 없던 사람의 말을 인용한 문서를 그대로 보도하는 의중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독도에 관련한 일본의 전략이 계쏙 이슈화시키고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그런 전략에 우리나라 언론이 놀아나는게 아닌가 걱정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