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권영진 “대통령이 어떤 정파에 속하기보다는 중립적인 입장 취해야”
  • “재창당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버리고 가자.”

    다름 아닌 친이(친이명박)계였다.

    한나라당 내 최대 세력으로 활동해왔던 친이계 내에서 ‘대통령 탈당론’이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제18대 국회 입성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혜택을 받은 친이계 의원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의 선긋기에 나선 것이다.

    12일 오전 CBS 라디오에 출연한 권영진 의원은 당의 재창당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새로운 당에 입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탈당하는 것에 대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과거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함께 정무부시장을 지냈었다.

    그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어떤 정파에 속하기보다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선거를 관리하고 국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것은 한나라당의 유불리 차원을 떠난 문제”라고 이 대통령의 탈당을 촉구했다.

    권 의원은 “국민들에게 왜 한나라당이 싫으냐고 여쭤보면 제일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한나라당은 이명박당이고, 실패한 이명박 정치를 반복하고 있는 당’이라고 한다”며 이 대통령이 민심이반의 최대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 ▲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쇄신파 회동이 끝난 뒤 권영진(좌), 황영철 의원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쇄신파 회동이 끝난 뒤 권영진(좌), 황영철 의원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친이계 장제원 의원도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단절이 아니고 조용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당, 단절이라는 표현 대신 정리라고 언급했지만 이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취지는 마찬가지였다.
     
    당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지낸 원희룡 의원도 “결별할 거 결별하고 반성해야 한다. 헌집에서 새집 갈 때 짐을 다 가져 가야 하느냐. 먼저 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버려야 한다. 정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을 버리고 갈 ‘짐’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는 역대 정권 임기 말에 집권당이 인기 없는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던 것과 사실상 맥을 같이한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당의 당적을 포기했다. 청와대는 탈당 요구 발언이 이어져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권영진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신당에 참여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은 재창당을 하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들어있다. 다만 대통령에 관한 일이라 조심스럽고, 아무도 안 꺼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한 친이 직계 의원은 “대통령 때문에 국회에 들어오고 혜택을 받은 의원들이 이 대통령과의 결별을 언급하는 것을 들으니 착잡하다”고 말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정책을 통한 자연스러운 차별화는 불가피하지만 탈당 요구를 비롯한 인위적인 단절에 대해선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범친이계가 먼저 나서 이 대통령과의 선을 긋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는 표정이다.

    유승민 최고위원은 1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이 이제는 이 대통령과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할 때가 됐다”면서 “당이 살고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 의원들의 탈당 요구가 이어지자 현재 청와대는 직접 반응을 삼가며 사태를 주시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