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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8.24 주민투표의 연장전이었다. 무상급식 확대 반대를 둘러싼 대결에서 오세훈전시장이 시장직을 걸면서 만들어진 보궐선거였다. 지난 두 번의 8.24 주민투표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과정을 보면 한국의 보수우파와 한나라당에 던져진 중요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보수우파와 보수정당의 정당성, 방향성 그리고 실천성의 문제였다.
첫째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정당성에 대한 부정이다. 한나라당의 존재에 대한 부정은 이미 무상급식 확대여부를 둘러싼 8.24 주민투표 때부터 나타났다. 모든 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을 할 것이냐 하위소득 가정 70% 학생에게만 무상급식을 할 것이냐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한나라당은 미적거리며 나서지 않았다. 뒤늦게 끌려들어가듯 형식적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오히려 민노당은 ‘나쁜 투표, 착한 거부’를 내걸고 적극적 투표참여 반대에 나섰다. 서울은 물론 나라의 중대 정책문제가 될 사안이었지만 한나라당은 나서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25.7%인 216만명이 참여했다. 그 때 이미 216만명은 한나라당의 비겁함과 모호함에 분노했고 그 분노의 잔영은 10.26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서울시장 후보선출과 선거과정에서 한나라당은 더욱 커다란 정당성의 위기를 겪었다. 무엇보다 안철수의 등장과 박원순 후보의 야권후보 확정과정에서 나타난 한나라당의 처신의 가관이었다. 사전 기획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안철수가 서울시장후보로 떠오르며 표적으로 삼은 대상은 명백히 한나라당이었다. 안철수원장이 한나라당을 반역사적 세력이고 응징의 대상이라고 공격하는데도 한나당당은 제대로 된 대응 한번 못했다. 오히려 추가 공격만 않기만을 바라는 전전긍긍의 모습이었다. 안철수가 진보좌파 단일후보를 지원하겠다는 데도 본인이 직접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고며 좋아했고 안철수가 명시적으로 박원순후보를 지지하지 않기를 비는 수준이었다. 한나라당은 정당으로서의 정당성을 입증시키지 못했고, 결국 안철수가 지지한 박원순에 무력하게 패배했다.
10.26 선거결과가 던진 두 번째 과제는 한국 사회가 가야할 방향성의 위기다. 그것은 민주당조차 건너뛰고 진보좌파의 승리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안철수와 박원순은 물론 좌파단체인 참여연대와 문재인, 조국, 공지영, 이외수, 김제동 등은 모두 민주당을 넘어 진보좌파적 경향성을 공유하는 세력이다. 박원순의 승리는 민주당은 물론 우리 사회전반을 좌파 가치확산의 계기를 만들 것이고 예정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좌파 정책과 세력의 확대로 몰아갈 것이 명약관화하다. 시장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주당과 좌파 야당이 한-미FTA 비준 거부를 공동 결정하고 FTA비준은 내년 총선 후로 연기하겠다는 합의도 박원순 승리가 만들어내 사회적 방향의 하나다. 야권 단일후보에 의한 선거승리의 경험은 결국 민주당과 민노당과 국민참여당 등 좌파정당 연대와 단일 대선후보를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10.26 선거는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에게 진 가장 큰 차의 패배였다. 컴퓨터연구자 안철수와 시민활동가 박원순의 등장, 그리고 좌파 문화운동가들의 연합은 한나라당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박원순후보가 무려 7.2%차이라는 승리를 낳았다. 한나라당의 선거운동과 박근혜도 적극 지원에도 불구하고 절대지지율은 187만표, 23%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의 전당력을 기울인 참여와 유력대권후보까지 가세한 대대적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상복지 확대반대 주민투표에 못미치는 지지율을 받았다. 지난 8.24일 ‘나쁜 투표, 착한 거부’라는 상황에서 무상복지 반대에 나선 지지자보다 오히려 29만명이 한나라당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 29만명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문제의 핵이다.
문제의 본질은 한나라당이 가고자하는 방향성을 국민에게 알게 하고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무상복지의 무차별적 확대라는 포플리즘 문제는 저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겠는데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나 나경원후보를 지지해야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좌파정책에 대해서는 저지할 필요성을 느껴 행동할 수 있지만 한나라당의 방향성과 정책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선거만 끝나면 좌클릭으로 가야한다거나 중도라며 민노당과 민주당이 가는 길을 뒤따라 걷는다면 굳이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민주당과 민노당의 길이 맞다면 차라리 그 정당을 지지하는게 맞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보수가치와 자유가치가 무엇이고 왜, 그 정책만이 나라를 번영시키고 개인의 행복을 확대시킬 수 있는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단지 좌파세력으로 가서는 큰 일난다는 것만 갖고는 보수의 지지를 받을 수 없고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10.26 서울시장 선거는 보수세력에게 실천력의 문제를 던졌다. 좌파단체처럼 평택 미군기지 반대나 제주 강정마을의 군항건설 반대에 나서라는 것은 아니다. 민노당처럼 불법폭력에 나서라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처럼 부산의 한진중공업 해고저지투쟁이나 FTA 반대투쟁에 나서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보수정당은 보수가치에 맞는 투쟁력과 실천력을 보여야 한다. 자기 도덕성과 자기 헌신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진정성 투쟁에서 지는 것이다. 간절함이 진정성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실천력을 통해 국민 감동으로 다가온다. 실제 그렇든, 그렇지 않든 한나라당은 윗사람만 바라보는 정치고 감투와 돈만 바라보고 하는 정치라는 국민 비판을 씻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이라면 내년의 총선과 대선의 중요성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문제는 국가문제나 보수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리더십의 기본축을 담당하고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의 문제일 뿐이다. 잘 보이기, 구색 갖추기, 좌우합작, 중도강화, 좌클릭으로는 결코 갈 수 없는 영역이 정당성과 방향성, 그리고 실천성의 문제다. 남따라가면 지는 길이고 간절함과 진정성을 보여줄 수 없다. 정당성과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고는 실천력이 나올 수 없다. 모호성은 힘도, 지지세력도 형성시킬 수 없다. 모호함이 역사를 만들 수는 없다. 보수우파적 대안가치와 대안세력임을 분명히 하는 것만이 나라가 갈 길을 여는 길이자, 보수정당의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