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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권후보 1순위로 꼽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외교관 및 대북인식을 엿볼 수 있는 글이 23일 나왔다. 박 전 대표는 현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이같은 정책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 왔다.
박 전 대표는 대북 정책으로 ‘균형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외교‧안보 분야 ‘브랜드화’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2009년 5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강연한 이후로 대북정책을 직접 피력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지난 3월 복지정책 발표 때 공청회 방식을 빌린 것과는 달리, 미국 외교안보전문지인 포린어페어스 (Foreign Affairs)에 기고하는 형식을 택했다. ‘말’ 보다는 ‘문서’로 정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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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5일 현충원에서 거행된 고 육영수 여사 37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 ⓒ 연합뉴스
정치권은 박 전 대표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관계와 대북정책에 이처럼 공을 들이는 연유로 ‘학습효과’를 꼽는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대선 한나라당 예비후보 시절, 지지율에서 이명박 후보를 앞지르고 있었으나 ‘북핵 위기’가 터진 이후 이 후보에게 당 대선후보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여성으로서 안보관이 취약할 것이라는 여론의 ‘우려’가 뼈아팠다.
이를 염두에 둔 듯, 박 전 대표는 ‘새로운 한반도를 향하여’라는 제하의 이번 기고문에서 자신의 몸에 밴 ‘안보관’으로 운을 뗐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나는 어머니를 잃었다. 당시 퍼스트 레이디였던 어머니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암살자의 총탄에 희생되셨다. 그날은 나에게는 물론 모든 한국인에게 비극적인 날이었다. 당시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슬픔이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고 평화가 정착되기를 원했고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해 왔다.”
박 전 대표는 이 글을 통해 본인 스스로 투철한 안보관을 가질 수밖에 없던 ‘슬픈 태동’을 말했다. 동시에 대북정책에 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균형정책’과 ‘신뢰외교’ 두 키워드로 자신의 대북정책, 외교관을 설명했다. 저작권의 문제로 글의 일부만 발췌한다.
“이제는 새로운 정책, 즉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이 필요한 시점이다. 균형정책은 국민 대다수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권이 바뀌거나 예기치 못한 국내외적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기본틀이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균형은 단순히 강경과 유화의 중간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균형정책은 남북한 간 ‘안보’와 ‘교류협력’ 사이의 균형, 그리고 ‘남북대화’와 ‘국제공조’ 사이의 균형을 의미한다. 단호한 입장이 요구될 때는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고, 동시에 협상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매우 개방적인 접근방법이다.
예를 들어, 만약 북한이 또 다시 군사도발을 감행한다면, 한국은 북한이 도발의 대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반대로 만약 북한이 남북한 및 국제사회와 맺은 지금까지의 약속들을 지키려는 진정한 협력의 자세를 보인다면, 한국은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시간이 흐르면서 균형정책은 신뢰외교를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균형정책을 실천하기 위해서 한국은 먼저 북한의 점증하는 폭력적 행동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강력하고 신뢰할만한 억지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군사적 도발과 핵 위협으로는 오직 가혹한 대가만을 치룰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이 비록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현재와 같이 도발이 반복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접근이 과거보다 더욱 분명하게 강조되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균형정책에서 북한이 도발할 경우, ‘즉각적 대응’을 강조한다. 북한의 폭력적 행동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억지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북이 협력의 자세를 보인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한국은 보여야 한다는 뜻도 보였다. 큰 테두리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승계, 발전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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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전 대표는 “이제는 새로운 정책, 즉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 연합뉴스
“특히,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하기 위해서 한국은 국제사회와의 협조체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국은 핵으로 무장한 북한을 용인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북한의 핵무장은 매우 심각한 위협이다.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핵 기술 및 관련 물질을 해외에 이전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뢰할만한 억지, 끊임없는 설득, 그리고 더욱 효율적인 협상 전략 등을 적절히 조합하여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무기 없이도 생존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만약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한국은 동맹인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주요 파트너들과 협의해서 모든 가능한 정책수단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군사주의와 핵개발에 단호히 대처해야 하지만, 동시에 북한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신뢰는 상호 이득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축되는 법이다.”
박 전 대표는 북핵 억제책으로 국제사회와의 협조체제 강화를 주장했다. 이를 위해 신뢰할만한 억지, 끊임없는 설득, 효율적인 협상 전략 등을 필수 조건으로 봤다.
북한의 군사주의 및 핵개발에 단호한 대처와 동시에 북한의 경제협력 증진을 위한 ‘기회제공’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기에는 2002년 ‘평양특사 박근혜’의 경험이 녹아있다.
“예를 들어 경제협력 증진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 투명한 인도주의적 지원, 그리고 무역과 투자에 있어서 새로운 기회의 창출 등이 좋은 수단이 된다. 지난 2002년, 나는 평양에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유라시아 철도 프로젝트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유라시아 철도 프로젝트는 6․25전쟁 이후 단절된 한반도 종단철도를 다시 연결하고 이를 시베리아 횡단철도 및 중국 횡단철도와 연결하는 사업이다. 만일 철도가 연결되면 이는 남북한 공동 발전과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횡단철도가 중국의 동북 3성 및 러시아 극동지방으로 연결된다면 이들 지역의 경제발전을 촉진할 것이고, 한반도를 역내 무역의 중심기지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이후 조성된 긴장으로 인해 추가적 논의는 미뤄지고 있지만, 만약 북핵 문제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는 경우 남북한간의 신뢰안보 구축을 위한 수단으로서 철도연결 프로젝트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 전 대표의 균형정책은 신뢰외교를 바탕으로 한다. 국가 간 외교 관계에 있어서 ‘신뢰’는 첫 번째로 꼽히는 만큼 박 전 대표의 새로운 이론은 아니다.
다만 현실정치에서 신뢰를 특히 중시 여기는 박 전 대표의 성향이 외교에도 그대로 묻어나온다. 특히, 그가 정한 두가지 신뢰외교 원칙이 ‘약속 정치’와 ‘파기 대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국의 속담처럼,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마찬가지로 남북한 사이의 평화 역시 공동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반세기가 넘도록 북한은 국제적 규범을 노골적으로 무시해 왔다. 한국은 당연히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 또한 열어놓아야 한다.
바로 현재 남북한 사이의 신뢰가 최저 수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한국이 신뢰를 새롭게 재구축할 기회라는 점을 의미한다. 한반도를 끊임없는 갈등의 공간에서 신뢰의 공간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적 규범에 근거하여 남북한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를 이행하게 만드는 ‘신뢰외교(Trustpolitik)’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신뢰외교는 검증이 전제가 되지 않은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신뢰를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지금까지 북한이 저지른 수많은 위반사항을 망각하고, 다시 새로운 인센티브로 보상해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신뢰외교는 두 개의 원칙에 기초한다. 첫째는 최소한의 신뢰 구축을 위해 북한은 한국 및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평화를 파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기 위해서 신뢰외교는 단지 정치적 편의에 의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검증할 수 있는 행동에 근거하여 다음 단계로 하나씩 넘어가면서 적용되어야 한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국가들 사이에서 신뢰를 구축한 경험은 과거에도 있었다.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은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을 극복하고 관계를 정상화 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역시 신뢰구축 과정을 거쳐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하였고, 이는 올해 초 발생한 이집트의 체제전환에도 불구하고 전체 중동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유럽 국가들 또한 반세기에 걸친 불신과 전쟁을 극복하고 훗날 유럽통합으로 발전해 나가는 기반을 닦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