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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님은 떠났지만 제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8일(현지시각) 제93회 PGA 챔피언십 출전차 애틀랜타에 온 최경주는 삶의 정신적 지주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취재기자에게 "정상적인 게임이 안 될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놓는 등 `탱크'란 애칭이 무색하게 심신이 많이 지쳐 보였다.
그는 "목사님은 내게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목이 메인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최경주는 지난 2일 오전 하 목사가 소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하고 한 걸음에 귀국길에 올라 다음날 새벽 입관식까지 고인의 곁을 지켰다.
그러곤 미국으로 다시 날아온 게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개막을 불과 하루 앞둔 3일이었다. 그는 "시합을 하는 건지 꿈속을 헤매는 건지 분간이 안됐다"고 했다. 결국 4라운드 합계 6오버파로 59위에 그쳤다.
그는 "시합은 잘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사님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니 너무 아쉽고 슬프다"고 말했다.
최경주가 하 목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컴팩 클래식에서 첫 PGA 우승을 차지해, 95년부터 다니던 온누리교회에 그의 이름 석자가 알려지면서다.
그 뒤로 하 목사가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두 사람은 `기도'를 끈으로 시간을 함께 했다. 최경주는 "3주 전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최경주재단 후원금 모금 행사에 가수 윤복희 권사가 오시도록 섭외를 부탁해 흔쾌히 승낙을 받았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대회 직전 한국을 다녀온 최경주의 `의리'는 PGA 안팎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은 최경주에게 다가가 "미안하다", "안타깝다"고 조의를 표하고 있다.
최경주의 `백전노장' 캐디인 앤디 프로저는 기자와 만나 "다들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PGA에서 최경주처럼 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고 했다.
최경주는 아직도 충격이 크지만 첫 메이저 우승의 집념은 접지 않은 듯 했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치면 우승도 하는 게 골프"라면서 "나이가 들수록 몸은 힘들어지지만 생각하는 것은 더 커지고 넓어진다. 그것이 골퍼의 인생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이날 섭씨 40도와 습도 100%에 가까운 찜통 더위 속에서 퍼팅 감각을 되찾는데 열중했다.
최경주는 "10년 전 이곳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에 출전했기 때문에 코스는 낯설지 않다"며 "목사님 조언대로 항상 낮은 곳에서 배운다는 겸손한 자세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