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위 인선 두고 강원도·재계·스포츠계 물밑 신경전후보자 하마평 연일 보도‥국제감각·소통능력 갖춰야
  • 평창은 두번의 고배를 마셨다.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와 2007년 7월 과테말라에서 치러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였다. 2전3기, 세번째 도전에서 평창은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를 거뒀다. 

    이제 남은 과제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다. 성공을 위한 기본 전제는 무엇일까. 다들 이런 저런 전문가적인 조언을 한다. 그런 조언들 속에 빠지지 않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을 누가 맡느나는 문제다.

    두번의 고배를 마신 평창, 그래서 세번째 도전은 달랐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는 대한탁구협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유치 위원장으로 긴급 수혈했다. 조 회장의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한다는 승부수였다.

    조회장은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특명을 부여 받고 2년 전 특별 사면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대한체육회를 이끌고 있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전면에 내세워 각국의 IOC 위원들을 개별 설득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결과는 주효했다. 재계 거물들의 '눈높이 서비스'에 감동 받은 IOC 위원들은 평창으로 다시금 눈을 돌렸다. 매너리즘에 빠진 뮌헨 대신 패기와 열의로 가득찬 평창에 하나둘 마음을 돌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조 유치위원장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평창 유치 결정 뒤 "IOC 총회 직전 모나코 군주인 알베르 대공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여러 IOC 위원들의 분위기가 달랐다"고 회고했다.

    "개최지 투표 이틀 전에 이같은 표심이 몸으로 느껴졌고 개최지 투표가 1차에서 끝났을 때 확실히 이겼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재계 CEO 긴급수혈, IOC 위원 표심 사로잡아

    이들 CEO '삼각날개' 외에 피겨퀸 김연아의 막판 합류는 유치위의 활동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논리적인 호소에 세련된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평창은 어느 도시보다도 매력적이고 잠재력 넘치는 '빙상 도시'로 거듭났다.

    재계-스포츠계-정계가 혼연일치돼 일궈낸 놀라운 성과에 대해 국내 스포츠계는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한 빙상계 인사는 "겨울스포츠 부문에서 그동안 '변방의 나라'로 치부됐던 대한민국이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이후 전 세계 빙상 강국이 주목하는 총아로 떠올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전3기 유치의 감격에만 머물 수는 없는 법. IOC 위원들을 감동시킨 프레젠테이션을 현실로 승화시키는 체게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유치위 관계자도 "이미 유치 성공으로 들뜬 마음은 가라앉은지 오래며 올림픽조직위원회 출범을 위한 준비에 분주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회 개최까지 6년 7개월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펼쳐야하는 만큼 탄탄한 조직 구성이 가장 급선무"라는 말도 덧붙였다.

    IOC 규정상 개최 도시는 5개월 내에 조직위원회 구성을 완료해야 한다. 평창 유치위는 3개월 내에 완벽한 조직 구성을 끝내겠다는 사전 계획서를 IOC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빠른 시일 내에 올림픽 지원 특별법 제정과 조직위원회 구성을 완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2018년까지 5,500억원을 투자하는 '드라이브 더 드림2'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정 장관은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조직위원장 인선에 대해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와 환경, 경제 올림픽을 잘 이해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분이어야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문광부는 조직위원회의 법인 설립 승인 권한을 갖고 있고, 대회 개최때까지 막대한 운영비를 조직위 측에 지원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따라서 외향적으로는 정부 주도로 조직위 구성이 이뤄질 공산이 커보인다. 재정 여건 상 강원도의 독자적인 준비가 힘들다는 상황도 정부 측의 강력한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원도 "개최 도시로서 '대회 준비' 주도적으로 나설 것"

    강원도가 노심초사하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유치위 구성 당시부터 여러차례 소외감을 피력했던 강원도는 조직위 인선에서도 밀릴 경우 자칫 대회 주도권을 '외부 세력'에 넘겨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초 이광재 강원도지사의 지사직 상실로 유치활동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던 것도 강원도에게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유치위 인력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고도 '주류'에서 밀려났다는 판단을 한 강원도는 조직위 구성 만큼은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문순 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창 유치 도전에서 강원도가 소외되는 일이 있어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가 완전히 주도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주체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적으로 강원도가 주체인 만큼 조직위 구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논리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전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조직위원회는 700~800여명 규모로 구성될 조짐이다.

    먼저 조직위가 의사결정기구인 집행위원회를 만들면 집행위에서 조직위원장을 선출하게끔 돼 있다. 이 모든 절차는 앞으로 3개월 내에 이뤄질 전망이다.

    조직위는 올림픽 개막 이후 자원봉사자들을 포함, 4만여명의 거대 인력을 관장하게 된다. 또 재원 조달, 인력 수급 등 올림픽 개최를 위한 모든 사항을 총괄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조직위의 수장인 조직위원장 자리를 놓고 벌써부터 물밑 작업이 뜨겁다는 게 유치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후보군에는 이번 평창 유치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 조양호 유치위원장을 비롯, 이건희 삼성회장,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외에도 강원도 출신인사들인, 평창유치위원장을 지낸 한승수 전 총리(유치특별고문)와 김진선 전 지사(유치특임대사) 역시 조직위원장 후보로 손꼽히는 분위기다.

    ◆"정계인사 투입,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격"

    문제는 현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사 외에도 정부 측에서 깜짝 낙하산 인사가 내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

    실제로 역대 스포츠대회 조직위원장들을 살펴보면 스포츠 전문 분야가 아닌, 정통 관료 출신 중에서 임명된 경우도 여럿 있었다.

    일각에선 공천 탈락자나 전관예우 차원의 고위급 인사가 평창 조직위원장 자리를 꿰찰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체육계 인사는 이에 대해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정계인사가 투입되는 건,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격"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국민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조직위 인선에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파격적인 인사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까지 나온 하마평을 종합하면 조양호 유치위원장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고, 그 뒤를 이어 김진선 전 강원지사가 유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분위기다.

    김진선 특임대사는 강원도지사 출신이고 평창 유치전 초기,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김 전 지사는 자신이 조직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과 관련, "그런 생각은 하고 있지도 않다"며 위원장 경쟁에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유치 과정에서 알게 된 올림픽 메커니즘이나 지식 등을 가지고 대회가 잘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지사의 소극적인 태도는 최문순 현 강원지사에게 불리한 여건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김 전 지사가 조직위 핵심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조직위 핵심 구성원 역시 강원도 내부 인력이 아닌, 체육계나 재계 등 외부 인사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조양호 유치위원장 "스포츠인보다 경영전문가가 적합"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조양호 유치위원장은 조직위 구성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 위원장은 평창 유치 성공 후 다수의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조직위 구성에 대한 복안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조직위원회는 정부에서 결정하게 되겠지만 앞으로 7년 동안 IOC와 협상을 벌이며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만큼, 조직위원장은 국제매니지먼트 감각이 있어야 하고 경영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스포츠 전문가보다는 경영전문가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분히 현 대한체육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의식한 발언이다.

    그는 리더십은 물론, 스폰서들과의 협상 능력, 서비스에 대한 국제감각, 매니지먼트 기술 등을 평창 조직위원장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았다.

    현재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기업 인사가 이건희 삼성 회장과 박용성 회장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같은 조직위원장 '자질'은 조 위원장 자신을 일컫는 말이라는 분석이다.

    자칫 오만하게 비쳐질 수도 있는 이러한 발언은 그동안 그가 걸어온 행보를 돌이켜 보면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지난 2009년 9월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금껏 그룹 경영은 뒷전으로 미루고 평창 유치전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2년 간 50차례의 해외 출장을 소화한 조 회장은 지구를 열여섯바퀴 돈 것과 맞먹는 64만km를 비행하는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한때 평창과 경쟁상대로 일했던 유명 컨설턴트를 초청, 아군으로 만드는 용병술을 발휘했다. 각종 빙상대회는 물론 밴쿠버동계올림픽, IOC 총회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 평창의 우수성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측 "IOC와 소통 중요, 체육인사가 맡아야"

    조 회장과 함께 평창 조직위원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아직까지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대신 대한체육회를 통해 조직위원장에 대한 욕심을 감추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4 인천아시안게임과 2002 부산아시안게임의 초대 조직위원장을 모두 대한체육회장이 맡았던 점을 들었다. 박 회장이 평창 조직위원장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조직위원장으로서 정부는 물론 IOC와도 수시로 접촉해야 하는 만큼 국가올림픽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대한체육회 회장이 맡는 것이 대회 준비에 가장 합당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조직위원장 선임에는 여러가지 복안들이 있을 것이다. 결정까지 말들도 많을 것이다. 서로의 수장을 조직위원장에 앉히려는 세력들 속에서 수장의 의지와는 달리 주변인사들에 의한 음해성 소문들이 나돌 수도 있다.

    그럴 수 있기에 새삼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2전3기의 눈물겨운 도전끝에 우리가 어떻게 평창 유치를 따 냈는지를.

    그건 단합이었다. 정부, 재계, 스포츠계, 지방자치단체를 필두로 모든 구성원이 '평창유치'라는 오매불망 소원을 이루기 위해 힘껏 뭉쳤다. 꿈을 이루려는 하나의 목표 아래서는 각각 구성원간 이질적인 요소는 의미가 없었다.

    다시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뭉칠 때다.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할 때다.

    그런 마음으로 조직위원장 인선을 하고 서로 밀어준다면, 평창은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아시아의 보석'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