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문민정부중도실용정부는 문민정부 닮아가나
  • 1953년7월23일 화천지구에서 전사(戰死)한 박호우 병장의 묘 앞에서

    대한민국 국토는 한 치도 피를 흘리지 않고 지켜낸 곳이 없다는 백선엽(白善燁) 장군의 말이 생각 났다

    趙甲濟 


    오늘 오전 국립현충원에 갔다. 대한민국전몰군경(戰歿軍警)유족회(회장 崔海根)가 주최한 참배 뒤의 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일찍 도착하여 사병 墓域(묘역)을 둘러보았다. 1950년 9월16일 영천에서, 그해 8월17일 포항 지구에서 전사(戰死)한 사병의 묘비가 눈에 뜨였다. 9월16일이면 인천상륙 작전과 함께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北進)을 개시한 때이다. 전사한 사병은 전세(戰勢)가 好轉(호전)되는 순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해 8월 중순 포항에선 혈전(血戰)이 벌어졌다. 학도병들이 싸운 곳이 이 전선이었다. 포항 전선이 뚫리면 공산군은 경주, 울산을 거쳐 부산으로 진격할 참이었다. 이때 죽은 병사는 조국의 앞날과 가족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목숨을 바친 것이다.
     
     <26356. 1953년7월23일 화천지구에서 전사(戰死). 육군병장 박호우의 묘>
     
     7월23일이면 휴전(7월27일) 나흘 전이다. 아들의 전사(戰死) 통보를 받은 부모는 얼마나 원통하였을까? 나흘만 버티면 죽지 않았을 터인데...
     
     1953년 7월 중순 금화지구에서 전사한 사병의 墓碑(묘비)도 있었다.
     <25972. 1953년 7월14일 금화지구에서 전사(戰死). 육군상병 박희준의 묘>
     
     휴전을 앞두고 중공군은 국군이 지키던 이 전선에 총공세를 펼쳤다. 그해 6월18일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한 데 대한 보복작전이었다. 국군의 전선이 돌파당하여 10km 가량 밀려나기도 하였다. 이(李)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을 압박, 한미(韓美)상호방위조약을 얻어내기 위한 승부수였다. 여기 잠든 박호우 병장이 흘린 피는 반공포로 석방의 대가(代價)였고, 한미동맹을 구축하는 데 제물로 뿌려진 셈이다.
     
     대한민국 국토는 한 치도 피를 흘리지 않고 지켜낸 곳이 없다는 백선엽(白善燁) 장군의 말이 생각 났다.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데 육교에 걸린 표어가 눈에 들어왔다.
     
     <기억해요 아픈 역사, 잊지 마요 보훈정신>
     
     여고생 취향으로 쓰여진 감상적 구호이다. 대한민국의 건국(建國)과 호국은 '아픈 역사'가 아니라 공산침략에 맞서 자유를 지킨 '영광의 역사'이다.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는 정부가 과연 김정일 정권을 타도, 자유통일하라는 헌법의 명령을 수행할 용기와 의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겠는가? 김영삼 정부 때 국방부가 만든 6.25 포스터가 생각났다.
     
     <형제의 가슴에 총을 쏜> 운운하는 글이 실렸다. 공산군의 남침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행동을 형제끼리 총질을 한 수준으로 격하시킨 게 혼이 빠진 문민(文民)정부였다.
     
     <조국 위해 흘린 피, 자유통일로 갚아주자>라는 구호는 왜 쓰지 못하나? 중도실용 정부는 이른바 문민(文民)정부를 닮아가면서 국민정신을 타락시키더니 군인정신마저 망가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