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 넘어 사래긴 밭을 
     
    묘지기이나 마름이 얻어서 부쳐 먹는 논⋅밭을 ‘사래’라고 한답니다. ‘사래 긴 밭’은 반드시 때를 따라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추수 때가 되면 곡식을 거두어야 하는 일터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일터가 곧 우리들의 ‘사래 긴 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라는 도시에 있는 KIMEP라는 대학이 러시아어로 강의하지 않고 전적으로 영어로 강의하는 유일한 사립대학인데 강의 요청이 있어 인천공항에서 7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알마티까지 갔습니다. 늙은 스승이 먼 길을 떠난다니까 가까운 제자들도 몇 사람 모여 일행이 아홉이나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조상이 중앙아시아에서 오래 머물다 그곳을 출발, 몽골을 거쳐 만주 땅에 머물고 살다가 마침내 한반도로 남하하여 정착하였다고 이미 배운 바 있었으므로 그 곳 자연사 박물관에 가서 선사시대의 여러 가지 유물들을 관찰하면서 감회가 남달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말의 언어학적 체계가 우랄⋅알타이 계라는 것도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지역을 방문하여 그런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한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카자흐스탄의 원주민들은 우리와 조상이 같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그들이 소련 땅에 강제로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어가 공용어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카자흐스탄 원래의 언어는 우리들의 문법과 비슷하다는 것도 확실하다고 언어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그들은 틀림없이 몽골족이고 갓난아기의 궁둥이에는 ‘몽골 반점’이라는 푸른 점이 찍혀 있을 겁니다

    현재 KIMEP 대학의 총장인 방찬영 박사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그의 경제담당 고문으로 일하다가 이 대학을 인수하였는데 그는 연세대학 출신으로, 콜로라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카자흐스탄이라는 신천지에 모험하여, 본디 공산당 간부 양성기관이던 이 대학을 시장경제의 원리⋅원칙에 따라, 인재를 양성하는 사립대학으로 재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방 총장의 업적은 이미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한반도의 12배 가까운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고 석유⋅가스를 비롯한 천연지하자원은 세계 굴지의 나라인데 인구가 겨우 1645만 명밖에 안 되니 이 작은 인구를 가지고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탄식하면서 방 총장에게 “한국에서 한 100만 명 쯤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답니다. 나는 나자르바예프의 그 말에서 큰 힌트를 받았습니다.

    한국 땅에서, 아득한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살던 그 땅으로, 1년에 10만 명씩 10년 꾸준히 이민을 가면, 그 땅은 다시 우리 땅이 될 것이고, 우리는 성공하여 고향 땅을 찾아 돌아가는 중앙아시아의 아들⋅딸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넓은 땅에 가서 농사짓고 장사하고 공장 세우고 열심히 일하면 우리가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주저할 것 없습니다.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갈지 않고 그대로 둘 것입니까. 꿈이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카자흐스탄의 넓은 땅에 한국인의 꽃동산을 빨리 가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