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상회담' 메시지..대화분위기 조성정부 반응 시큰둥..'찻잔속 태풍' 지적도
  • (서울=연합뉴스)  = 지미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미묘한 흐름에 맞닥뜨리고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8일 카터 일행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조건없는 6자회담 재개에 나서겠다는 '친서 메시지'를 우리 정부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한미중을 중심으로 6자회담 관련국들이 '대화재개 프로세스'에 시동을 걸려는 현 정세흐름 속에서 상당한 의미와 무게감으로 다가서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친서 메시지라는 공식 형태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용의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메시지는 무엇보다도 대화국면으로 나아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주목하는 시각이 나온다.

    남북은 물론 북일, 북미 등 다양한 양자관계를 대화트랙에 되돌려놓고 6자회담도 정상화하겠다는 최고 통치권자의 뜻이 공식화됐다는 분석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식량난과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앞두고 후계구도를 안착화하려면 결국 대외관계를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와 맞물려 주목할 대목은 최근 한반도 현안들에 대한 북한의 태도에 일정한 변화가 확인된 점이다.

    우선 남북 비핵화 회담에 대해 수용의사를 표명한 것이 주목된다. 카터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 당국자들이 과거에는 핵문제를 반드시 미국하고만 논의하겠다고 했으나 이번에는 핵문제든 다른 문제든 남한 정부와 직접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가 제안하고 미중이 동의한 '3단계 재개안'(남북 비핵화회담→북미대화→6자회담)에 대해 북한도 동의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또 우리 정부가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해 일정한 기류변화를 보이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한 군부 인사들이 두 사건에 대해 사과하거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민간인이 사망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는 게 카터 전대통령의 설명이다.

    북한은 그동안 "천안함 사건은 특대형 모략극이고 연평도 포격은 남측이 연평도를 도발의 근원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카터 일행을 통해 소개된 북한의 이 같은 태도변화는 6자회담 재개를 겨냥한 대화 흐름을 살려나가는 '분위기 조성'의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대화국면을 향해 전략적 협력을 꾀하고 있는 미중으로서는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나온다.

    그러나 카터 일행을 통한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메시지 전달이 현재 6자회담 재개흐름의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현 정세대응의 중요한 키를 쥔 우리 정부가 북한의 이 같은 우회적 메시지 전달을 '진정성있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에게 전달할 메지시가 있다면 직접 전달해야지 제3자를 통해 전달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직접적으로 남북 비핵화 회담에 대한 반응을 보이고 천안함ㆍ연평도에 대한 책임있는 태도표명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카터 일행이 전한 메시지의 내용이 이렇다 할 파괴력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당국자는 "정상회담 얘기는 새로운 게 아니지 않느냐"며 "그동안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표명해온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의 이 같은 우회적 메시지 전달이 현재 우리 정부 주도로 가고 있는 6자회담 재개의 틀을 흐트러뜨려 놓으려는 포석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특히 '조건없는 6자회담'을 제안한 것은 북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응 등 우리 정부가 주문하는 비핵화 선행조치를 생략하고 어물쩍 대화국면으로 넘어가겠다는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카터 방북 카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카터 일행이 미국의 메시지를 들고 오지 않아 '전략적 효용가치'가 떨어지지만 국제적으로 명망이 높은 전직 국가수반들이라는 점에서 직접 면담하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에서 활용을 꾀했다는 얘기다.

    또 대북 식량지원 문제의 경우 이들 국가수반이 북한의 선전전략에 철저히 이용당한 측면이 크다는 비판론이 나온다.

    카터 전대통령이 "식량지원 문제는 군사적ㆍ정치적 이유와 연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식량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밝힌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평화 메신저'를 자처하며 평양 방문을 감행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행보가 '찻잔 속 태풍'으로 마무리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카터 일행은 김 위원장과의 직접 면담에 실패한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 면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남북한 최고지도자로부터 외면당하는 '불청객'이 된 모양새다.

    이에 따라 '공'은 여전히 북한에 넘어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제안하고 미중의 동의한 남북 비핵화 회담에 대해 어떻게 공식 반응을 보이느냐가 정세흐름의 관건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