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국민 대부분이 소망하는 통일은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통일 비용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가 없어 아쉬웠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계기로 통일 비용 조달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통일은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도 그동안 통일 논의 과정을 보면 미흡한 점이 많았다.

    통일 비용을 정확히 추계할 필요가 있다

  • ▲ 최종찬 전건설부장관.
    ▲ 최종찬 전건설부장관.

    지금까지 많은 기관이 통일 비용을 추계하였으나, 대부분 거시경제 모형에 따라 추계해온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북한의 1인당 GDP를 어느 수준까지 올리려면 얼마의 투자가 필요한가 하는 식이다.
    추계 결과 편차도 커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정확한 통일 비용 추계를 위해 도로, 철도, 주택, 교육 등 각 분야별로 예측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를 동원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동안은 이런 작업과정에서 혹시 북한을 자극하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시도를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합리적인 통일 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방안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의 경우 매년 100조 원 이상을 통일 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독일에 비해 남북한의 인구 격차가 적은 반면, 소득 격차는 커 상대적으로 통일비용 부담은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서독 인구는 동독의 4배인데 비해 남한은 북한의 2배인 반면, 동독의 1인당 GDP는 서독의 38%인데 비해 북한은 남한의 6%이다.

    미래의 막대한 자금수요에 대비하는 방식과 관련,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평상시 통일세와 같은 세금을 거둬 비축하는 방식이고, 또 다른 방안은 재정건전성(조세부담율과 국가부채율을 낮게 유지)을 높여 유사시 재정지원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매년 통일세를 거둬 비축하는 방식의 장단점을 검토해 보자. 민간 기업은 매년 얼마씩 자금을 비축해도 국민 경제의 차원에서 별 영향이 없으나, 국가가 거액의 자금을 비축할 경우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예컨대, 매년 통일세로 10조원을 거둘 경우, 이 자금을 통일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사시 유동성이 확보되어야 하므로 금융자산 등 수익자산으로 운영해야할 것이다. 만일 100% 해외에 투자한다면 기업이나 개인이 사용할 재원을 해외로 유출시킴으로써 그만큼 수요 자체를 위축시킬 것이다.

    국내에서 주식을 산다면 기업의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하는 장점이 있더라도 민간 부문으로부터 자금회수로 인한 수요 감소를 모두 상쇄하지는 못할 것이다. 평상시 세금을 거두어 그 해에 사용하는 경우, 경기 위축 효과는 없다고 볼 수 있으나, 통일 비용의 사전조달은 “현재의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매년 통일세를 거둔다는 뜻은 매년 거시경제측면에서 그만큼 경기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최근 통일세 논의를 보면 이점을 간과하는 것 같다.

    통일논의과정에 경제부처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최근과 같이 재정에서 경기를 부양할 필요가 있을 때는 한편으로 적자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다른 편으로는 통일세를 통해 경기를 위축시키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평상시 통일 비용조달은 통일 후 증세시 조세저항을 줄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 통일전 경제적 기반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따라서 통일 비용의 원활한 조달을 위해서는 평시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막대한 통일 비용의 조달은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어렵다. 독일의 경험을 보면 사전에 통일 비용을 비축한 것은 물론이고 통일 후에도 증세, 국채발행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 되었다. 따라서 통일 후 증세나 국채발행을 위해서는 평상시 조세부담률과 국가 부채율을 가급적 낮게 유지하여 미래에 증세할 수 있는 여력을 두는 게 중요하다. 급속한 노령화로 인한 복지 재정수요와 각종 연기금의 적자가 예상 되는 상황에서 통일 비용까지 추가된다면 재정적자와 국가 부채는 더욱 급속히 증가할 것이다. 일본은 통일 변수가 없는데도 노령화와 경기부양 등으로 국가 부채율이 92년 GDP의 68%에서 최근에는 200%를 상회하고 있으며, 독일도 통일이후 각종 증세에도 불구하고 국가 부채비율이 40%에서 67%로 크게 늘어났다.

    그동안 통일정책은 안보, 외교 문제로만 인식되어 경제부처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통일 비용 조달은 통일 정책의 핵심적인 과제일 뿐만 아니라 경제운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일세 논의를 위해서는 통일 비용의 추계, 통일세의 조달 방법과 경제적 영향 분석 등이 필요한데, 이와 같은 업무는 대부분 경제부처의 소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통일세 태스크 포스’가 통일부 내에 설치되는 것은 적절한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통일 정책은 경제정책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논의과정부터 경제부처가 적극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종찬 /한국선진화포럼 이사, 전 건설교통부 장관>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