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피격 사태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할 것인가? 그 교훈은 무엇인가? 무엇을 자성하고 개탄해야 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군(軍)에 대한 감사를 언급했다. 그러나 과연 군(軍)만이 감사를 받아야 하는가? 감사를 받아야 할 사항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데 있지 않을까?
     우선 세상을 보는 눈에 문제가 있었다. 바로 자학(自虐)사관의 해악이다. 김일성 김정일보다 대한민국 63년사를 더 나무라는 사관이 그것이다. 이 해독이 풋내기 초짜 불만세대 뿐 아니라 국가 공무원들 사이에까지 번져 나갔다. 심지어는 나라의 질서를 보위해야 할 부문의 공무원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문약(文弱)의 병(病)도 자탄(自歎)해야 한다. 세상이 온통 띵까띵까 판이고, 기율, 기강, 상무(尙武), 극기(克己), 용감(勇敢), 한 나라로서의 자존심, 정당한 적개심, 분노, 전의(戰意), 영웅적 기상(氣像), 원칙주의, 대장부 정신, 올곧음의 덕목이 실종됐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류(類)의 ‘문민(文民) 장수’도 이 나라 지도층에선 씨가 말랐다. 전쟁 나면 도망칠 궁리부터 한다는 게 이 나라 다수 청년들이라고 어떤 조사는 밝혔다.

     철학의 빈곤과 속류 경제주의도 문제다. 경제를 중요시 하는 것하고, '경제주의(economism)'는 같은 것이 아니다. 경제학부터가 철학의 뿌리에서 나왔다. 아담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도 경제를 논하기 전에 철학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철학 없는 “돈이면 다다”가 ‘경제’임을 자처하는 풍조가 일었다. 자식 교육도, 국가경영도, 남북 관계도, 그저 돈으로 되배질을 하면 된다고 하는 해괴한 날라리 유행가가 판을 쳤다. 그 얄팍한 속류 경제주의가 이번에 김정일의 유사종교한테 된통 한 방 맞은 셈이다. 천안함 사태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나를 죽이려는 적(敵)과, 나를 구출해 줄 동지가 누구인지를 식별하지 못하는 정치적 색맹증이 마치 최첨단 하이테크인양 행세하는 무지(無知) 또한 자괴할 일이다. 세상에 적이 없다면야 그보다 더 좋은 이상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한반도가 과연 그런 땅인가? 김정일은 동족이지 적이 아니라고? 그래서 주적(主敵) 개념을 삭제 했다고? 김정일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수구반동 냉전세력이라고? 천안함이 피격됐어도 대통령부터 눈물만 짜야지, (아직은) 응징의 응자(字)도 거론해선 안 된다고? 이런 밸 없고 쓸개 빠진 세태야말로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누가, 심지어는 김정일까지도, 제 자존심조차 지키지 못하는 나라와 국민과 그 지도층을 어려워 할 것인가? 

     공격을 받고도 공격한 자로 지목받는 상대방을 향해 의심을 하는 것조차 ‘비(非)실용적’ ‘비(非)중도적’ 이념 집착 취급을 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천안함 사태를 대하는 ‘중도실용주의’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