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겨울 한 소녀가 태어났다. 소녀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이미 쥐병(급성 페스트)에 걸린 상태였다. 쥐병은 고열, 두통에 이어 의식이 흐려지게 돼 죽는 무서운 병이었다. 어머니는 남편이 죽는 게 두려웠다. 이들은 중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 가족이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딸을 45만원에 내놓았다. 55만원 정도인 주사만 맞으면 남편은 나을 수 있었다. 그때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북한인권국제연대 문국한 대표를 만났다. 문 대표는 당시 북한 인권활동가도 아닌 단순한 사업가였다. 그런 그가 45만원을 선뜻 내놓고 3년간 이 가족이 중국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2001년 중국 공안에 잡혀 이들 모두 북송됐다. 이 가족은 다시 북한을 탈출했다. 삶의 희망을 찾고 싶어서였다.

  • ▲ 2살 때 중국 선양의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을 시도하다 중국 공안에 붙잡힌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진 앞에 선 11살의 김한미양 ⓒ 뉴데일리
    ▲ 2살 때 중국 선양의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을 시도하다 중국 공안에 붙잡힌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진 앞에 선 11살의 김한미양 ⓒ 뉴데일리

    한미 가족은 탈북 후 2002년 5월 중국 선양의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을 시도하다 중국 공안에 붙잡였다. 당시 한미양은 두 살이었다. 이때 중국 공안에 끌려가는 어머니를 철장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진으로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주인공이 바로 한미다.

    한미 양은 지난 2006년에는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도 만나고 왔다. 북한인권주간 마지막 날인 4월 28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초대로 백악관을 방문했다. 한미양은 4년 전 그날을 정확히 기억했다. “그 순간엔 떨렸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저를 예뻐해 주셨다”고 떠올렸다.

    부시 대통령은 한미양을 보자마자 번쩍 안아들고 옆자리에 앉혔다. 그런 부시 대통령에게 함미양은 볼에 ‘뽀뽀’를 선물하기도 했다.

    한미양은 사람을 참 잘 따랐다. 어릴적 아픔은 하나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수학이 어렵고 국어와 체육이 재미있다는 한미는 영락없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다. 한미의 꿈은 가수다. 무대 위에 올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노래하고 싶다. 단돈 45만원에 팔릴 뻔 했던 작은 소녀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