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형에 처한 것은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화폐개혁 실패로 악화된 민심을 되돌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이 화폐개혁 이후 두 달도 안된 1월 중순 박 전 부장을 전격 해임, 구속한데 이어 다시 두 달만에 총살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을 보면, 현재 북한의 민심이 얼마나 흉흉하고 북한 당국이 이를 어느 정도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극명히 드러난다.

    북한 당국은 당초 ‘구권 100원 대 신권 1원’ 비율로 화폐교환을 단행, 이른바 ‘시장세력’을 제거함으로써 민심을 잡고 국가계획경제도 복원하려 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그 연장선에서 ‘김정은 후계체제’의 조기 안정화를 겨냥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삶과 직결돼 있는 ‘시장의 위력’을 간과한 채 화폐개혁에 이어 시장폐쇄, 외화사용 금지 등의 ‘반시장 조치’를 잇따라 취한한 것이 결국 자충수가 됐다.

    ‘시장’에 역행하는 일련의 조치들로 주요 물자의 유통경색과 식량난이 걷잡을 수 없이 심화돼, 변방의 오지는 물론 신의주, 청진 같은 주요 도시에서까지 다수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아직 심각성은 덜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을 연상시킬 만한 상황을 만든 셈이다.

    실정의 여파는 상당히 심각해, 최근 들어서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 지도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심지어 보안원(경찰)을 주민들이 폭행하는 일까지 심심찮게 터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견상 박남기가 화폐개혁의 정책 책임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총살한 배경에는 다른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런 북한내 ‘반체제’ 기류 때문이다.

    다시 말해 ‘1인 통치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쏠릴 주민들의 ‘비난 화살’을 박남기에게 분산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박남기가 총살당했다는 소문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진 것으로 알려진 부분도 북한 당국의 의도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통상 북한내 정보 유통이 빠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문의 급속한 확산’이 사실이라면 이 또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문제연구소의 장용석 연구실장은 “지난 1월 북한 당국이 박남기 부장을 해임했을 때 이미 정치적 책임은 물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박 부장을 총살형에 처한 것은 그만큼 화폐개혁 이후 민심이 나빠져 희생양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번처럼 민심 수습을 목적으로 정책 실패의 ‘희생양’을 처형한 일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1997년 서관희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를 평양에서 공개총살한 것인데, 당시 북한 당국은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인 1994년부터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돼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자 정책 책임자인 서관희를 처형하는 카드를 선택했다.

    또 남한의 현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등 대남 정책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최승철 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총살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