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그리고 ‘정치화 된 세종시 논란’은 영 따로 가는 것 같다. 그 둘은 이미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다. 이 쯤 되면 필자의 지난 번 글 ‘마지막 순간의 호소’는 순진한(어리석은) 센티멘탈리즘에 불과할 것 같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진영은 어찌 할 것인가?
    세종시 문제 자체 아닌, 친이(親李)-친박(親朴)의 권력투쟁에는 너무 깊숙이 빨려들어가지 말았으면 한다. 세종시 자체와 친이-친박 문제를 구분해서 대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물론 있을 수 있다. 사실상 구분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종시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도, 박근혜 대표를 궁지에 몰아 넣는 것도 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진영에 이롭지 않다. MB 진영과 박근혜 진영은 서로 그렇게 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양쪽 캠프에 매이지 않은 대한민국 진영은 세종시에 대한 의견 여하간에, 적어도 당분간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어느 한 쪽에 캠프 사람들처럼 너무 심하게 기울지는 말았으면 한다. 수정안에 찬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초연한 위치에서, 원안 고수에 찬성하지 않는다 해도 그 역시 초연한 자리에서 그리 했으면 한다.
    이유는? 세종시 한 곳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가 쪼개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진영은 대한민국 헌법 수호세력으로서의 가치집단으로 일관해야지, 누구와 누구의 적나라한 권력투쟁의 한 쪽 캠프처럼 계열화 되어서는 안 될 줄 안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한민국 자산이고 박근혜 대표도 대한민국 자산이다.
    이 분들을 아껴야 한다. 아끼는 방법이 바로, 그 분들의 위성(衛星) 궤도에 흡인되기 보다는 그냥 대한민국 가치집단으로서의 한 급(級) 위에 고즈넉이, 고고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에 대한 각자의 견해는 분명하게, 그러나 젊잖게 표명하더라도 말이다.
    이 말은 너무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정치는 매순간의 선택인데 어떻게 그렇게 초연할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은 파국을 촉진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성찰이다. 선택보다는, 또는 선택을 하는 그 순간에도, 성찰이 더 절실한 때가 있는 것이다. 권력투쟁에 끼어들어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쪼개진 대한민국, 두 개의 대한민국, 그리고 '김대중-노무현-좌파'계열의 3파전을 의미한다. 지금부터 굳이 그리로 가야 하겠는가? '김대중-노무현-좌파' 계열. 지금 아마 신바람 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