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하나
    침묵 속에서 한 남자가 차도로 뛰어 나왔다.
    “유신 독재 물러가라.”
    쥐어짜낸 듯한 함성이었다.
    함성을 신호로 풍경이었던 사람들이 그를 순식간에 둘러쌌다.
    그리고 노래를 시작했다.
    “긴 밤 지새우고...”
    김민기의 ‘아침이슬’이었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복경찰이며 경찰 기동대가 군중을 덮쳤다.
    경찰봉이 난무하고 ‘사과탄’이라고 불리던 최루탄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눈물을 흘리며 도망친 곳이 무교동 낙지골목. 해산되면 모이기로 한 그 곳엔 ‘출전’했던 동료들의 반만이 모였다. 다음날, 학생처장이 호출했다.
    “제적당하느니 차라리 군에 다녀와라.” 거의 명령조로 권했다.

    #장면 둘
    부마사태로 부대 분위기가 어수선한 속에서 뜻밖에 토요일 외출이 허락됐다.
    군복에 칼 주름을 잡아놓고 막 잠을 청하려는데 비상이 걸렸다.
    완전군장을 하고 밤새 대기하던 새벽 ‘박 대통령 유고’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며칠 뒤 동작동으로 향하는 그의 운구행렬을 경비하는 대열에 서서 국화로 뒤덮인 영구차를 지켜봐야 했다.
    허무했다. 그렇게 미워하던 사람이 저 차에 실려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제적된 동료들, 차가운 감방에서 옥살이를 하는 학우들은 지금 그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까 궁금했다.      

  • ▲ 과일을 깍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 뉴데일리
    ▲ 과일을 깍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 뉴데일리

    유신 말기 대학을 다닌 기자가 간직한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다.
    장기집권과 독재.
    이 단어들은 박 대통령의 수식어였고, 함께 그 시절 젊은이들의 고뇌였다.
    몇 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그 시절 젊은이들은 뒤늦은 반성을 해야 했다.
    “아! 그 때 그건 아니었다.”라고.
    맞다. 정말 그건 아니었다.
    ‘유신 독재 물러가라’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무덤에 침을 뱉는 건 정말 아니었다.
    한국 정치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악순환을 끝없이 반복한다.
    물러난 사람은 예외 없이 도마에 오르고 난도질 당한다.
    난도질 한 사람 역시 뒤를 이은 이에게 같은 꼴을 당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어른이 없고, 자랑스러운 역사도 없다.
    더 큰 문제는 한 시대의 공과를 바르게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자세가 없다.
    시대의 흐름에 모두 외눈박이로 몸을 맡긴다.
    이런 나라는 절대 바로 가지 못 한다.
    극단적으로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망한다. 망하게 돼 있다.
    정당도 정치인도 그 끝이 있듯이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것은 망상이다.

    다행이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바로 보자는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짧게나마 언급을 했다.
    ‘이승만 바로 알리기 운동’을 하는 한 지인은 기자에게 “이제야 나라꼴이 되어가는 느낌”이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승만 기념관이며 동상 건립에 대한 얘기도 활발하다.

    그리고 상암동 한 구석에 삽질 한번 못 하고 버려진 박정희 기념관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DJ에게 사기당해 추진 중에 무산된 박정희 기념관을 다시 세우자”는 얘기다.
    박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길러냈던 KIST 과학자들이 나섰다.
    KIST 퇴직 동문 모임 '연우회'가 박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단을 23일 발족한다.
    KIST 안에 부지 2100㎡를 확보했다.
    330㎡ 규모 기념관과 해외 석학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짓는다.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억 원 모금 운동도 벌일 계획이다.
    오는 26일 박 대통령 서거 30주기를 맞아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 ▲ ‘朴正熙의 결정적 순간들’ ⓒ 뉴데일리
    ▲ ‘朴正熙의 결정적 순간들’ ⓒ 뉴데일리

    도서출판 기파랑에선 30주기를 맞아 ‘朴正熙의 결정적 순간들’이란 책을 펴냈다. ‘62년 생애의 62개 장면’이란 부제가 붙었다.
    출판사는 기획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30년이라는 세월의 마디를 넘기면서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박대통령의 생애를 '인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 돌이켜보기로 했다.
    독보적인 '박정희 연구가'인 저자(조갑제)가 그 동안의 성과를 꼼꼼하게 정리한 이 책은 62세를 일기로 타계한 박 대통령의 일생을 62개의 테마로 나눠 체계화했다. 모두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출생에서부터 학창시절, 교사 생활, 군인의 길, 대통령 시절 등이 편년체로 알기 쉽고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인간 박정희'의 진면목이 다시 한 번 독자들, 특히 과거사를 어둡게만 배워온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기를 기대한다“라고.

    안병훈 기파랑 대표는 “요즈음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은 박 대통령의 진면목을 전혀 모르거나 엉뚱하게 왜곡된 어두운 이미지로만 기억하는 실정”이라며 ‘이 책이 그 같은 후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중국인들은 우물물을 마시면서 우물을 파준 사람을 기린다는 뜻의 ‘飮水思源’이라는 말을 곧잘 쓴다”며 “오늘의 한국인들이야말로 가난의 구렁에서 나라를 건져낸 박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저자 조갑제씨는 “가난과 망국과 전란의 시대를 살면서 마음속 깊이 뭉쳐 두었던 恨의 덩어리를 뇌관으로 삼아 잠자던 민족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던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라며 “총탄에 가슴을 뚫리고도 체념한 듯 담담하게 최후를 맞은 그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 혁명가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30주기를 맞아 기파랑이 말하듯 독재자 박정희만 알던 청소년들이 국민들에게 부강한 한국을 선물한 농촌 출신 대통령의 온전한 모습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외눈으로 보는 세상은 이지러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걷는 걸음은 바른 길을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