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들 오랜만이구나.
    다정한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들아.
    누이도 머리에 서리가 내렸구나. 여덟 살 꼬마였던 누이여. 밤이면 뒷간 가기 무서워 이 오빠를 얼마나 성가시게 했더냐. 무릎에 앉힌 아이는 손자구나. 내 사랑까지 얹어서 곱고 밝게 자라게 해다오.
    벌써 58년이 지났구나. 선운산 계곡에서 적의 총탄에 이 몸 눕힌 것이.
    전쟁의 포성이 온 나라를 뒤덮던 1951년 8월 25일.
    이곳 고창은 국군이 수복했다지만 빨치산과 인민군 패잔병들의 발악으로 치열한 게릴라전이 치러지던 곳이었다.
    국군은 경찰에게 치안을 인계하고 북진했다. 하지만 몇 명 안 되는 경찰이 지키기엔 선운산일대의 빨치산은 너무 강했다.
    경찰서에 고압선을 두르고 밤을 지새야 했던 나날들.
    퇴로가 막힌 패잔병들과 빨치산들은 자식이 보는 앞에서 죽창으로 아버지를 찔러 죽였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남편을 총살하기도 했다.
    이곳 고창에서 그들의 학살로 숨진 이들은 차마 헤아릴 수 없다.

  • ▲ 선운산작전 고창중고등학생 희생자 추모비. ⓒ 뉴데일리
    ▲ 선운산작전 고창중고등학생 희생자 추모비. ⓒ 뉴데일리

    그래서 우리가 나섰다.
    고창중 1학년이던 정택진, 민병욱. 2학년 이운교, 3학년 김봉수 유종익, 그리고 4학년이던 박금석 등 16명이었다.
    책을 잡아야할 우리가 총을 잡았다.
    우리가 지켜야할 소중한 자유와 민주를 위해.
    총을 잡고 마주 대한 어둠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왜 안 그랬겠느냐. 의기는 장했지만 그때 우리는 고작 열여섯, 열일곱의 어린 나이였다.
    밤안개 깊은 날엔 엄마 품이 그리워 몰래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총알 장전하는 법대 제대로 못 배운 채 우리는 전장 아닌 전장에 나섰다. 

     

    그리고 58년 전 바로 오늘, 우리는 빨치산이 출몰한 선운산 계곡으로 달려갔다.
    M1소총은 너무 무거웠다. 우리 키보다 조금 작은 그 총을 끌고, 우리는 녹음 짙푸른 선운산 계곡을 적을 찾아 누볐다.
    그리고 시작된 전투. 인민군 정규군 패잔병이며 빨치산과 마주한 우리는 용감하게 싸웠다.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위해.
    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겨우 소총 격발법만 익힌 우리와 달리 적은 승냥이처럼 빠르고 여우처럼 민첩했다.
    우리 여섯은 하나 하나 쓰러져갔다.
    가슴으로 선혈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선운사 동백꽃처럼 붉은 선혈이.
    우리는 그렇게 계곡에 몸을 눕혔다.
    ‘어머니’를 부르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벌써 58년이 지났구나.
    잊혀진 우리를 기억해줘서 고맙다.
    58년만의 첫 추모제이지만 탓하지 않으마.
    왜 그간 찾지 않았냐고 따져 묻지 않으마.
    우리가 지켜 물려준 대한민국의 발전한 모습에 우리의 희생은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하마.
    단 하나 당부할 것은 이 대한민국을 잘 지켜달라는 것이다.
    다시는 우리 같은 희생이 없도록.
    누이야. 손자가 보채는구나. 어서 일어나라.
    이렇게 찾아와줘서 정말 고맙구나.  
     

  • ▲ 백한기 6.25남침피해유족회 회장 ⓒ 뉴데일리
    ▲ 백한기 6.25남침피해유족회 회장 ⓒ 뉴데일리

    지난 24일 전북 고창군 고창읍 고창중고 교정에서 ‘선운산작전 고창중고등학생 희생자 추모식’이 열렸다. 1951년 8월25일 학도병으로 참전해 선운산 계곡 빨치산을 쫓다 숨진 6명의 용사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행사를 주관한 백한기 6.25남침피해유족회 회장은 고창 출신. 전쟁 중 중고생들로 백골유격대를 조직해 고창 일대 빨치산 소탕에 혁혁한 전과를 올린 바 있다.

    백 회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58년 동안 그 누구도 이분들을 위로하자고 나선 적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라며 “이제부터라도 이 분들의 의거를 널리 알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바른 국가관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58년이 지나도록 이 분들에게 변변한 추모제 한번 못 치렀던 것은 정말 된 일”이라며 “내년부터는 보다 많은 군민이 참석하는 자리로 마련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