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대학 교수의 이른바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행위가 되레 사회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대학교수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박효종 서울대 교수 등은 현 시국에서 릴레이 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일부 교수의 시국선언이 지성인으로서의 대표성이나 불편부당의 정신을 심각하고 훼손하고 있다며 그 부당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9일 오전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기로 했다.

    윤 교수 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칭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이란 모임을 결성하기로 했다. 모임엔 안세영(서강대) 김영호(성신여대) 조성환(경기대) 이명희(공주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일부 교수의 시국선언을 보는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을 통해 일부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국민에게 혼란과 갈등,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윤 교수 등은 “4.19 민주혁명이나 6.10 민주항쟁 때는 명백한 선거부정이나 강압통치가 있었지만 지금 시국이 과연 그렇게 절박한 상황인가”라고 반문하고 “현 정부가 잘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 방식을 통해 따지고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밝혔다.

    또 이들은 “시국선언문에 담긴 내용이 균형감각을 잃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문제를 시대의 요구인 양 포장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윤 교수 등은 “일부 교수의 시국선언문이 한국 민주주의 후퇴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 점에 동의할 수 없다”며 “자유의 남용에까지 이른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후퇴가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성은 불편부당성과 겸손함을 가질 때 비로소 지성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소수 교수의 의견을 대학 교수 전체 의견처럼 비치게 하는 것은 지성인으로서의 태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서 “시국선언 교수들에게 공개적 학술토론회를 열어 공론의 장에서 대화를 나누자”고 제의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일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바라보는 우리의 견해

    지금 한국사회는 난국에 처해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험난한 고통을 강요하고 있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도 안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사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내외의 엄중한 상황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마음을 합쳐 위기돌파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일부 대학교수들이 ‘릴레이식’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혼란과 분열,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사태를 깊이 우려하며 유감으로 생각한다. 지금이야말로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뒤를 돌아보고 엄중한 자기반성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할 때이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는 대학교수들이 비판적 지성을 가진 지식인으로 사회와 정치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책무를 지니고 있으며, 과거에도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일부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태도인가 하는 점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과거 4․19민주혁명이나 6․10 민주항쟁 때는 명백한 선거부정과 강압적인 통치방식에 대해 항거해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공감대가 있었고, 또 이를 위해 촌각을 다투어야하는 절박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정치권이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 약속한 대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여당은 웰빙 체질을 벗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으며,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국회보다 광장으로 달려 나가려 하고 있다. 이 모두 국민들의 여망을 저버리는 실망스러운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 정책에 비판을 하고자 한다면 정상적인 방식을 통해 따지고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가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우리는 시국선언문들에 담겨있는 내용이 균형 감각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한다. 한국사회 다수의 사람들이 이념적 입장을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여와 야 등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시각과 견해가 첨예하게 달라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마치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시대적 요구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은 비판적 지성으로서 공정하고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셋째, 일부 교수들은 시국선언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언론과 방송이 정부․여당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또한 지식인들이 개별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써도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절처럼 탄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가하면 경찰은 물매를 맞으면서도 폴리스라인을 넘는 일부 과격폭력시위에도 인내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과연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자유는 방종과는 다른 것이다. 자율과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쇠파이프와 화염병까지 등장하는 불법․폭력을 동반하는 집회․시위마저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자유의 남용에 이른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사회의 평화, 나아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일방적 내용을 담은 시국선언이란 형식을 통해 자기의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화하기보다는 공론의 장에서 건설적 대화와 학문적 소통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에 우리는 적절한 시점에서 공개적 학술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정중하게 제안하는 바이다.

    지성은 지성다운 태도를 가질 때 의미가 있다.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면 소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지성도 마찬가지다. 지성이 불편부당성과 겸손함을 가질 때, 비로소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들만이 공감하는 정파적 내용을 일방적으로 시국선언이라는 형식을 빌어 발표하는 것은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사회적 공감대가 없어 쟁점이 되고 토론의 주제가 될 만한 사안들을 굳이 선언문형식으로 발표하여 국민들을 격동케 하는 것은 지성의 바른 표출이라고 볼 수 없으며,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본다. 또 각 대학공동체의 전체 구성원이 아닌 소수 교수들의 의견을 ‘00대학교수 일동’이라고 하면서 그 대학교수 전체의 의견처럼 사회에 비치게 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국민 모두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통합과 안정이 필요한 시기이다. 모든 이들의 중지를 모아 작금 우리가 처한 심각한 내우외환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때, 자신들만의 정파적인 견해를 정론인 것처럼 강변함으로써 사회에 혼란을 조성한다면 이는 무책임한 비지성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남 탓’을 하기보다 스스로의 잘못은 없었는지 차분히 성찰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을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2009년 6월 9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