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숙, 오르그뜨가 도망갔어요."


    고시원 옆 ○○베이커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빵과 우유를 시켜놓고 내가 어쩐 일이냐고 물었을 때 대뜸 성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성규의 말을 듣고 나는 의아했다. 도무지 성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였다.

     "오르그뜨가 도망갔다고? 오르그뜨가 뭔데. 사람이야? 가축이야?"
     "오르그뜨는 제 아내예요. 제 아내 이름이 오르그뜨에요."

    그제서야 나는 성규의 말을 이해했다. 더불어 나는 성규가 왜 이렇게 불쑥 서울로 올라왔는지,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그러니까 네 와이프가 도망갔다는 거야?"
     "네."

     성규의 와이프는 몽골 여자였다. 물론 결혼식에 가지 않았으니까 다 집안식구들을 통해서 전해듣거나 주워들은 얘기였다. 몽골 여자를 데려오는데, 한 일천여만원쯤이 들었었다고 했다. 일천만원이란 생각하기에 따라 거금일 수도 있고 별 것 아닌 돈일 수도 있었다. 평생 살 여자를 데려오는데 일천만원이라면 큰 돈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겠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보면, 그건 지극히 적은 돈이라고 하는 게 옳은 일이겠다. 그 얘기를 듣고 농담조로 와이프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몽골 여자를 데려오는데 일천만원이라, 나한테도 이건 별로 큰 부담은 아닐 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와이프가 대뜸 그랬다.

    그래서, 큰 부담이 아니라서, 몽골 여자와 다시 결혼이라도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 뭐야.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젊은 몽골 여자와 다시 한번 결혼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와이프 앞에서 대놓고 내 솔직한 심정까지를 드러내보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얘기가 그렇다는 거지, 누가 몽골 여자랑 다시 결혼하고 싶다고 했어. 한번 하는 결혼도 이렇게 버거운데.
     하지만 와이프는 나의 욕망을 훤히 꿰뚫어보는 듯 했다. 다음에 이어지는 와이프의 말을 들어보면, 짐작이 갔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정말이지 속물들이야. 당신도 마찬가지고. 당신은 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결혼했는데, 그게 다 내 착각이었던 거야.  와이프의 말에 나는 십분 공감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속물들이라는 와이프의 말은 내가 아는 한, 대체로는 진실이었다. 그래서 와이프의 말에 맞짱구를 쳐주고 싶었다.

    도대체 바랄 걸 바라야지, 나한테 그런 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그러나 나는 맞짱구치지 않고, 침묵했다. 결코 와이프에게 점수를 딸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가서였다. 

    오르그뜨가 그 몽골 여자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스물 두 살로 성규보다 열 두살이 어렸고, 생김새도 상당한 미인이라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성규가 나름대로는 장가를 잘 가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열 두 살이면 띠동갑인데, 그런 어린 여자에게 장가가는데 누가 있어 잘못 간다고 하겠는가.

    성규가 몽골 여자와 결혼한 것은 물론 한국 여자를 구하지 못해서였다. 젊어서는 상당히 많은 여자와 연애를 하기도 했는데, 정작 결혼할 때가 되어서 여자가 없다는 것은 얄궂은 일이었다. 성규의 아이러니였다. 그러나 이는 성규의 아이러니라고만 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성규가 농사를 지으면서 면서기를 나가는, 착실한 삶을 살기로 작정한 탓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한국 여자들은 죽어라고 시골로, 농촌으로 시집가는 것을 싫어하고 마다했다.

    한국여자들이 죽어라고, 결사적으로 시골로 시집가는 것을 싫어하고 마다하는데, 시골서 살기로 작정한 성규같은 농촌총각이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는 가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성규는 하다 하다 못해 결국 몽골 여자를 와이프로 들이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었다. 시골의 다른 농촌 총각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왜 도망갔는데?"
    "모르겠어요."

    성규의 어눌한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나의 질문이 어처구니없다는 걸 실감했다. 성규의 와이프가 도망간 건 트렌드였다. 묻지 않아도 대강, 아니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농촌 총각들이 몽골이나 베트남 중국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우크라이나 등등의 처녀와 같이 외국 아가씨와 결혼하는 게 트렌드인 것처럼 말이다. 트렌드의 이유를 묻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래도 짚히는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을 거 아냐."
    "어쩌면...남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달 전화요금이 백이십만원이 넘게 나오곤 했는데, 그게 몽골에 있는 식구와 연락하느라 그런 줄 알고만 있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이에요. 남자와 연락하느라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래요."
    "남자라면..."
    "몽골 남자 말예요. 몽골에서 남자가 있었던 것 같고, 남자가 한국으로 나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남자를 만나러 도망간 게 아닌가....대강 그런 짐작을 하고 있어요."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의 처자들 중 상당수가 얼마 살지 않고 도망가버리곤 한다는 소문을 간혹 들었었다. 이유는 천차만별이겠지만, 대체로는 한국에 나올 때부터 그런 속심을 작정하고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성규의 경우도 그와같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 했다.

    지난 사월에 결혼해 지금이 십일월 초순인데, 불과 육개월여 밖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럴 가능성 밖에는 상정키 어려울 일이었다. 성규가 더럽게도 똥을 밟은 경우인 듯 했다. 여자를 잘못 골랐다는 것이었다. 스물 두 살에 상당한 미인이라는 찬사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찬사가 아니라 오히려 독일 수 있었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온 거냐? 와이프를 찾을려고."
    "네."
    "와이프가 서울로 도망왔대?"
    "그건 잘 모르지만, 도망왔다면 그래도 가장 큰 도시인 서울이 아닐까 싶어서요. 그리고 무슨 소식을 들어도 서울이 가장 빠르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하구요."
    "하긴, 잠수를 타기엔 서울이 가장 좋은 곳이긴 하니까."

    그래, 나라도 성규의 처지였다면 가장 먼저 서울을 찾았을 것이었다. 와이프가 실제로 서울로 도망쳤든 서울이 아닌 다른 어디로 도망쳤든 무엇보다도 서울을 찾을 수 밖에는 없는 일이었다. 서울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 가서 와이프를 찾는단 말인가.

    서울은 정보의 중심지였고 물류의 시작지점이요 종착지점이었다. 지금 어디에 있든 도망친 와이프는 결국은 서울로 흘러들어오게 되어 있다고 보아야했다. 그러니까 서울에 와 있는 게 도망간 와이프를 찾기에는 가장 확률이 높고 적절한 일이었다. 성규가 서울에 잘못 온 것은 아니었다.

    "근데, 나는 왜 찾아왔는데."
    "당숙 도움을 좀 빌까 해서요."
    "내 도움?"
    "네."

    성규의 그 말을 듣고 나는 몹시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조카가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그게 뭐 그리 기분이 상할 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말 그대로 진짜 모르는 소리였다.

    성규는 평소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내가 놀고먹는 놈팽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 나를 무시하고 있던 성규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평소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의 연장이라는 것이었다. 연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내가 먹고 노는 놈팽이이니 그 넘쳐나는 시간을 자신의 아내찾기를 위해 좀 할애해 달라는, 그런 의도가 뒤에 깔린 도움 요청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도움 요청이란 뻔뻔한 것이었다. 내가 성규의 도움 요청에 응해 성규를 도와준다 하더라도, 전혀 고맙다는 소리를 못 들을 일이었다. 어차피 남아도는 시간인데, 그 시간을 좀 빌렸기로서니 나에게 고마워할 게 뭐 있느냐는 식일 터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도움을 좀 빌리고 싶다는 성규의 말 속에서 그런 응큼한 내면이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상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성규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글쎄, 도와줄 수 있으면 나도 좋긴 하겠는데, 요즘 내가 몹시 바빠서 말이야. 크게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거든."

    성규의 응큼한 부탁을 거절하자 하는 의도에서 한 말이긴 하지만, 나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크게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써 보자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던 거니까. 제대로 써지질 않아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만 죽이고 있었긴 하지만.

    "당숙이 소설을 쓴다 하니까 오르그뜨가 아주 호기심을 보였었어요.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요."
    "왜 호기심을 가져? 소설을 쓰는 게 뭐 신기한 일인가?"
    "몽골에서 오르그뜨도 글을 쓰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음악가나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했으니까요."
    "?...."
    "당숙이 설득하면 오르그뜨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싶어서요....그래서 당숙을 찾아온 건데...."
    "?...."
    "죄송해요. 괜히 바쁘신데....이런 안좋은 소식을 갖고 찾아온 것도 죄송하구요...."

    성규가 떠나갔다. 몹시 풀이 죽은 모습을 하고, 떠나갔다.

    성규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가.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느낌은 사실이 아니었다. 성규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삶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기운이 없고 비틀거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망가져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와이프가 도망가버린 성규는 부끄럽고 또 슬플 수 밖에 없는 남편이겠지만, 당숙 앞에서 눈물을 감출 수 있을 만큼은 예의가 있는 조카이기도 했던 것이다.

    내가 성규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조카의 아내찾기에 동참해 도와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내 생활 자체가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가 있다고 해서 심적으로도 여유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요즈음 나는, 심적으로는 몹시 시간에 쫓기고 있었고 여유는 커녕 분주함에 시달리고 있는 텃수였다. 집을 나온 것도, 알다시피 그렇게, 분주함에 시달리다 못해 나온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헌데, 그렇게 성규를 보내놓고 나서는 자꾸 성규가 안중에 떠올라왔다. 내가 너무 잔인하게 성규를 내친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감정의 농도가 짙어졌고,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면서는 거의 강박관념처럼 되어갔다.

    성규에게 너무 매몰차게 군 게 아닐까. 이런 감정이 자꾸 파고들어오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성규가 나를 무시해서 나를 찾아오고 그런 부탁, 도움을 요청해왔다는 것은 사실 지나친 발상이었다. 솔직히 그건 내 자격지심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지, 성규가 나를 무시했다면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고 그런 어려운 부탁을 청하지도 않았을 일이었다. 실상 그건 어려운 부탁이었고, 그런 어려운 부탁이란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에게가 아니고는 하기 어려운 부탁이었다.

    성규가 내게 믿는 구석을 갖고 있으리라곤 물론 의문이었다. 아마 그와같지는 않을 터였다. 성규가 무엇 때문에 내게 믿는 구석을 갖는단 말인가. 볼 거라곤 방울 두 개 밖에 없는 나같은 당숙에게 말이다.

    하지만 성규가 마지막에 뱉어놓고 간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성규가 그의 와이프가 몽골에서 음악가나 작가가 되고 싶어했고, 나를 만나보고 싶어했고, 나라면 자기 와이프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는 성규의 그 말이었다.

    성규의 그 말을 떠올리면, 성규는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진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해서 나를 찾아온 거라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으로 나의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을 문전박대해서 보내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하는 짓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성규는 남도 아니고 나의 조카가 아니냔 말이다.

    아내가 도망가 버린 일은 큰 일이었다. 남자로써는 아주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남자라면, 어떻게든 원상복귀시켜야 할 일임에 틀림없었다.

    남자로써 치명적인 곤경에 빠진 남자를 돕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남도 그럴진데, 그 대상이 성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성규를 그렇게 박대해 돌려보낸 게 후회가 되기 시작하고, 성규를 돕는 게 잘 하는 짓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가고 있었다.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는 일은 몹시 귀찮은 일이 아닐까 싶고, 그런 귀찮다는 우려가 떠오르면 성규를  매몰차게 돌려보낸 게 잘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후회가 일고 시간이 갈수록 그것의 강도가 짙어지고 깊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어이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불유쾌한 밤을 보내고 말았다.

    새벽에 나는 일찌감치 눈을 떴고, 불유쾌한 감정에 이끌려 핸드폰을 들고 성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성규에게 전화를 건 것은 이 불유쾌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싶어서였다.

    너무 이른 새벽이어서인지 성규는 상당히 오래도록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상당한 지체가 있은 후에야 성규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다. 당숙."
    "네, 당숙."
    "어디냐?" "모텔이에요. 서울역 근처에 있는 모텔이요."
    "나한테로 와라."
    "네?"
    "네 도망간 몽골 아내를 같이 한번 찾아보자고. 그러니 나한테로 오라는 거야."
    "?...."

     성규가 좀 당황한 듯 싶었다. 잠시 소리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당숙.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지금 당장 오라는 소리가 아니고, 푹 자고, 아침밥을 먹고 그리고서 천천히 오라는 거야. 딴 데로 새지 말고."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숙. 그러니까...."

    성규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했다. 술기운도 좀 있는 듯 했다. 혀가 꼬인 듯한, 다소 불명확한 발음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