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나 ⓒ 뉴데일리
    ▲ 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나 ⓒ 뉴데일리

    오늘날, 자유주의는 시민의 사회적 삶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한다. 경제적, 정치적 선택의 기본적인 원칙으로 작동하는가 하면, 국민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적 선택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의 이념적 선택으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시민의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시장원칙이나 자유경쟁원칙 등, 자유주의의 경제적 측면은 대부분 잘 이해하고 있으나, 정작 자유주의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형성되었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아마도 다양한 이념적 주장이 자유주의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비판하고 이용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특히 자본주의나 세계화 등 자유주의와 연계된 사고나 이념들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이 지난 반세기 동안 유별나게 활발했다는 사실도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킨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같은 기간에, 반드시 마르크스주의자나 마오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프로이트나 니체, 레비스트로스 등에서 영감을 얻은 인문학적 지식인들이 좌파 성향의 뛰어난 연구서들을 쏟아냈고, 그것이 지식인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것도 그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자유주의는 좌파적 사고에 대립하는 이념적 선택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태생적으로 우파적 사고는 아니다. 예를 들어서 전 세기까지만 해도, 영·미에서는 자유주의를 좌파 특유의 진보적 사고로 간주했는가 하면, 오늘날에도 자유주의는 우파 전형의 전통적 보수주의에 각을 세우는 대립적 이념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특히, 좌파들이 열렬히 주장하는 기회균등이나 보편적 인간의 평등 개념에 대해서 자유주의자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이쯤 되면, 평범한 시민으로서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는 증폭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사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소위 지식인 집단이 자유주의적 사고를 본격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자유주의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유주의의 결실을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향유하는 일반 시민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몇몇 열성적인 자유주의자들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을 키워왔다는 얘기인데, 이것은 참 이상한 현상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반미 감정이 유별나고, 지극히 자본화된 사회에 살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남다르며, 빈·부차에 대한 반감이 신경증적으로 표출되는 이유를 그간의 어두운 역사적 배경에 비추어 생각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사회·경제적 삶을 조절하는 원칙으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보편적 반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혹시, 거기에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거기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이유를, 이 책의 저자 레이몽 부동은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날카롭게 해부한다. 사실, 레이몽 부동이 한국의 독자에게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는 (1990년에 그의 《무질서의 사회학적 위치》가 번역·출간된 이래로)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자유주의에 대한 일반의 거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레이몽 부동은 알랭 투렌, 피에르 부르디외와 함께 현대 프랑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들 가운데 하나다. 앞의 두 사람의 저작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내에 소개되고 있고, 나름대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에, 레이몽 부동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지극히 낯선 이름이다. 짐작컨대, 그는 ‘자유주의자’이고 소위 우파적 사고를 하는 사회학자이기에, 강단에 있는 지식 생산자나 언론사의 지식 중개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지식인 집단의 이념적 성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레이몽 부동은 지식인 집단이 자유주의를 기피하는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들이 이념적 기반으로 삼았던 마르크스나 프로이트, 니체 등 ‘의혹의 스승들’로부터 어떤 ‘설명의 도식’을 도출했고, 유럽의 좌파 인문학자들의 이론이 어떻게 신대륙까지 퍼져나갔으며, 정치·교육·사회·경제 분야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설명한다. 좌파 사회학자들에 대한 비판은 물론, 문화주의자들, 구조주의자들, 레비 스트로스, 푸코, 부르디외, 가타리 등에 대한 비판적 언급도 흥미롭다. 특히, 수요가 공급을 상회하여 폭발적으로 확대된 시장에 ‘유사 명작’들을 내놓는 작가와 화가들에 대한 비판도 신랄하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04년의 일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참 묘한 인상을 받는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개입 수준, 사교육과 공교육, 노동쟁의와 노·사 대립, 여성차별, 빈·부차, 범죄에 대한 국가의 대처방법, 소수집단, 지식인과 비평가들의 이념 편향, 언론사들의 성향 등의 주제를 통해서 오늘날 한국 사회도 프랑스 사회와 똑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하는 유럽과 미국 등의 실제 사례들이 현재 한국사회의 모순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은 이미 동일한 문제를 두고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쳤고, 거기서 얻은 경험과 교훈을 참고하여 우리의 미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조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파랑 펴냄, 179쪽,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