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배우나 개그맨이 사투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은 대개 메인이 아닌 보조적 역할이고,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필연성을 가진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KBS 드라마 '내 사랑 금지옥엽', SBS 드라마 '타짜', MBC 드라마 '에덴의 동쪽' 등은 시대 상황 또는 캐릭터 성격과 연관해 사투리를 구사하는 배역을 활용했다. 그런데 사투리를 사용하는 배역이 대체로 무식한 역할이거나 극중 중요도가 비교적 적은 존재였다.

    강원도 태백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에덴의 동쪽’ 드라마에서 이미숙을 비롯해 전미선 유동근 등 중견연기자들은 사투리 연기를 했다. 반면에 주인공 송승헌과 연정훈은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내 사랑 금지옥엽’의 경우 유일하게 섬마을 처녀 김도리역을 맡은 홍아름이 사투리를 구사했다. 그리고 '타짜'는 극 전개상 한예슬이 도시적인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드라마 도중 사투리 구사를 배제했다.

    드라마에서 사투리를 사용한다는 의미는 지적이지 못하고 세련된 것과 거리가 멀며 거친 이미지로 나타났다. 더욱이 개그프로그램 등에서 사투리가 사용되면서 사투리 사용은 희화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도록 만들었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방영되는 ‘그려 안그려’, ‘대포동 예술극단’, '대화가 필요해-신봉선', '복숭아학당-허경환' 등의 프로그램과 인물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요즘 두드러진 게 아니라 예전부터 영화를 비롯해 TV 드라마에서도 흔했다. 특히 영화 ‘친구’ 또는 ‘황산벌’로 통해 확산된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 “거시기가 거시기 하죠” 등의 유행어는 사투리가 더욱 조폭적이고 희극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것을 부추겼다.

    이같이 드라마나 영화 사투리를 사용하는 배역은 지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됐다. 아무리 드라마에서 극적 구성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사투리를 왜곡하는 모습은 사투리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부르게 된다.

    언어와 문화 측면에서도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역어를 무시하는 의미는 곧 그 지역문화를 그릇되게 바라보는 결과를 낳게 된다. 물론 전통문화 혹은 우리 문화 정체성의 위기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다소 비약적인 논리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화 추세에 따라 영어 사용이 빈번해지고 상대적으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있는 시점에 사투리를 비하하는 태도는 오히려 이런 위기를 더 부추기는 결과로 작용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표준어의 정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이런 정책에 따라 사람들은 표준어 사용이 사투리 사용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현재 표준어는 교육 정책에 힘입어 충분히 그 권력을 누리고 있다. 

    방송 등의 매체는 지역어가 생존하고 표준어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줘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강력한 법조항을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만, 법이나 언어 사용이 쉽게 변하지 않기에 지금이라도 매체를 다루는 사람이 최소한 지역어에 대한 비하적인 태도를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표준어와 사투리는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더욱이 언어는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라 그 속에는 인간의 온갖 경험과 역사, 세계관이 녹아 있다. 대중문화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런 점을 알고 앞으로 지역어 사용에 보다 신중하고 치밀한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