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보수진영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미국 쇠고기 수입재개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출범 석달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이명박 정부에게 '우군'이 없다. 과거 정권에서 국가보안법 존폐, 한미 FTA협상 찬반 등을 놓고 '얼치기 진보'에 맞서 길거리에 나섰던 '움직이는 보수'의 모습을 지금 찾기 힘들다.  ·

    인터넷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압도적 승리 분위기 속에 보수세력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우위를 점했던 것도 잠시, 현재의 상태는 지난 2002년 대선때나 노무현 탄핵 당시로 돌아간 양상이다. 흔히 하는 말로 진보세력에 '게임이 안되는' 수준이다. 악성 루머와 유언비어가 기승을 부리며 미국 쇠고기 수입재개 반대 움직임이 '반(反)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이명박 탄핵' 지지 참여가 100만을 넘어섰다. 보수정권 탄생 후 보수진영이 약해진 모순된 형국이다.

    ◇ "뒷짐지고 있는 보수진영" =
    한 여권관계자는 "현 정권에서 쇠고기 수입재개로 인한 비판여론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보수진영이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정권의 성공을 누구보다 절실히 바라고 기대하고 있을 보수진영이 이번 쇠고기 논란에서 뒷짐지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한다"며 "정권의 '우파 끌어안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보수진영 대표적 조직인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지난달 한미 FTA 협상 타결을 환영하는 제성호 대변인의 구두논평 이후 쇠고기 논란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공식논평으로는 6일 KBS가 쇠고기 수입 재개 논란을 희화하하면서 이 대통령을 폄하한 한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 전부다. 보수성향의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는 이날 "'광우병 괴담'이 치밀하게 조직화된 특정 정치세력과 미디어 다음 등 좌익포털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며 일부 포털사이트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수준에 그쳤다.

    과거 정권에서 헌법수호를 외치며 거리시위에 직접 나섰던 보수단체들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그대로 읽힌다. 대령연합회 신영철 회장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쇠고기 수입 재개 논란과 관련해 "정부차원에서 적절히 대응해야할 일"이라며 거리를 뒀다. 신 회장은 "수입반대론자들의 주장 가운데 상당부분이 왜곡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이 많다. 또 현상황에서 재협상 요구는 국제통상 관례에 따라서도 무리"라고 지적하면서도 "그렇다고 보수진영에서 나서서 대응할 단계는 아니며 앞으로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쇠고기 논란을 틈타 진보진영이 새롭게 단결하고 살 길을 모색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날 참여연대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와 인터넷단체등 1500여개는 '광우병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출범식을 가졌다. 여기에는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 "보수정권이 보수세력을 홀대한 결과" = 새 정권이 정권교체를 위해 뛰어온 보수시민운동 진영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한 여권관계자는 "좌우균형도 중요하지만 새롭게 탄생한 정권이 보수진영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면서 "정권 출범 이후 돌아선 인사도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용이라는 미명으로 좌우개념이 없는 인사를 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진영의 박탈감은 커졌다"며 "정권 스스로 자기편을 홀대한 격"이라고 말했다.

    강경 보수단체를 주도한 한 인사는 "지금이 우파가 나서야할 때가 아니냐는 주위 요구가 없지 않지만 회원들이 의욕을 상실한 상태로 보는게 맞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수호를 위해 소리높였던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이 과거 정권이 아닌 새 정권에서 불법시위를 했다며 실형을 받았다"면서 "이 마당에 누가 나서서 도울 마음이 들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한 인사는 "노무현 정권 5년동안 한나라당이 아니라 보수 시민단체들이 좌파정권과의 투쟁에서 일선에 섰지만 정권교체후 이들에게 보상은 커녕 보수라는 낙인이 찍힐까봐 오히려 멀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면서 "지난 총선의 공천과정만 보더라도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에서 조차 좌파정권하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몸으로 싸워온 우파 인사들은 거의 배제되고 국가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고민 한 번 안해본 사람들이 소위 전문성이라는 미명하에 대거 공천되었고 청와대 등 국가 요직에서도 우파투사들은 철저하게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나 현재 민주당 등 진보진영 정파의 '제 식구 챙기기'와 비교하는 시각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보수진영 인사는 "과거 정권이 이념적 코드 맞추기로 물의를 빚었지만 네편 내편은 확실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념도 실리도 없는 인선"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다수의 보수인사들이 '보수라서 손해'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며 "'멋내기'에 치중한 인선을 하다보니 위기상황을 맞아 방어해줄 '우리편'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명박 정부가 보수 정부인 것은 맞지만 이념적으로 분명한 정체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지적했다.

    ◇ "인터넷을 모르는 청와대도 한몫" = '정부가 미친 소를 수입하려한다' '광우병은 공기로도 전염된다' '이명박 정부가 이틈을 타 대운하를 파고 있다' '상수도 민영화로 월 수십만원 수도료를 내야한다' 등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른 주장이 인터넷망을 타고 판을 치지만 이를 바로 잡거나 대응할 동력도 부족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터넷 여론의 편향성을 시정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구체적으로 뾰족한 방안은 없다"고 털어놨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인터넷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한 관계자는 "과거 정권에서는 인터넷 여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 이에 대한 대응속도도 빨랐지만 지금은 전문가조차 부족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국회의원 당선자는 "쇠고기 협상 이후 진행될 여러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마련이 없었다"며 "정부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기에 인터넷 여론을 살피고 대응했더라면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왜곡된 비난여론이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무관심이 초래한 결과"라고 말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진보좌파 진영이 인터넷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인터넷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며 정권의 지지기반으로 삼았던데 비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실세들은 대선과정에서 인터넷을 잠시 활용한 뒤 인터넷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가 보수우파 인터넷 진영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주춤했던 진보진영의 움직임은 활발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우리가 이명박을 탄핵할 수 있는 건 5월 한달 뿐"이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노사모 홈페이지에는 "이명박 아저씨 나 머리에 구멍 나 죽고 싶지 않아요!!!"라는 자극적 제목을 단 글이 메인화면에 걸려있다. 이들은 "중·고등학생들이 들고 일어나면 버틸 능력이 있던 정권은 없었다" "10대들의 유쾌한 반란"이라며 어린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부추겼다.